모든 살레시오 회원의 마음을 깨어나게 하기 위해서 돈 보스코로부터 다시 시작하기
카리스마적 정체성과 사목적 열성인
나에게 영혼을 주고 나머지는 다 가져가라
(Da mihi animas, cetera tolle)
친애하는 형제여러분,
여러분들에게 이 편지를 쓰면서 아프리카-마다가스칼 관구군의 총 평의원이었던 발렌틴 데 파블로(Valentin De Pableo) 신부님께 대한 믿음과 감사의 마음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갑작스럽고 예기치 않았던 그분의 죽음은 우리를 놀라게 했고 인간적으로 우리를 당황스럽게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가까이서 그분의 죽음을 애도하고 생전에 그분이 하신 일을 증거해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주님께 발렌틴 신부님이 살레시오 사제이며 선교사로서의 성소를 살 수 있도록 그분을 선물로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분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생전 마지막 며칠 동안 그분은 총회의 주제 선택을 위한 총평의회의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하느님 곁에 계시는 지금 그분은 총회의 성공과 아프리카-마다가스칼 관구군과 우리 모두를 위해 기도해주실 것입니다.
1. 제 26차 총회 소집
발도코에 살고 있는 모든 아이들과 협력자들과 은인들을 한자리에 모으시곤 했던 우리의 사랑하는 아버지시며 창립자이신 돈 보스코의 영명축일에 여러분들에게 그분의 이름으로 이 편지를 쓰게 되어 기쁩니다. 이 편지를 통해서 수도회 회헌 150조의 규범에 의거하여 제 26차 총회를 소집하고자합니다. 총회는 �다양성 안에서 본회의 일치를 나타내는 으뜸가는 표징이다�회헌 146조). 우리는 �시대와 장소의 필요에 민감하고 복음과 창설자의 카리스마에 충실�회헌 146조)하고 있는가를 성찰하기 위해서 함께 모이게 될 것입니다. 이 순간에 돈 보스코는 틀림없이 우리와 함께 계실 것입니다.
저는 수도회 생활의 새로운 성령강림의 사건으로 총회를 바라보도록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수도회는 총회를 통하여 �주님의 성령에 의하여 인도되도록 자신을 내맡김으로써 역사의 일정한 시점에서 교회에 보다 나은 봉사를 하기 위하여 하느님의 뜻을 알려고 노력한다."(회헌 146조). 성령의 위대하심은 땅의 얼굴을 새롭게 하시고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줄 아는 그분의 권능 안에서 드러납니다(시편 104,30 참조). 역사의 다양한 순간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영은 돈 보스코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새롭게 하실 줄 알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이 세상을 만들던 태초에 물 위를 감돌고 있었습니다(창세 1,2 참조). 하느님의 영이 생명의 숨결을 인간에게 불어 넣어주셨을 때 인간은 생명을 받았습니다(창세 2,7 참조). 성령께서는 약속의 땅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고향과 친척들을 떠나도록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철저한 신뢰를 둔 믿음으로 하느님께 순명하여 응답하도록 그를 이끄셨습니다(창세 12,1-4 참조). 그분은 시나이 산 위에서 생명의 말씀으로서 십계명의 선물을 모세에게 주셨습니다(출애 20,1-18 참조).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 백성의 해방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예언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을 점유하셨습니다(사도 2,17 참조).
하느님의 영은 동정 마리아를 보호하셨고 그녀를 하느님의 아들의 어머니가 되게 하셨습니다(루가 1,35 참조). 그분은 세례 때에 예수님께 기름을 발라주셨고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도록 이끄셨습니다(마르 1,10-15 참조). 하느님의 영은 불의 혀 모양으로 사도들 위에 내려왔고 그들을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증거자로 바꾸어 놓았습니다(사도 2,17 참조).
하느님의 영은 오늘도 인간의 삶과 존엄성을 촉진시키도록 계속해서 고무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영은 사람의 정신과 마음을 하느님과 그리스도께 열리도록 인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영은 강요하면서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 확신에 가득차서 일하게 하고 영감에 순응하도록 요구하시는 부드러운 손님이십니다.
다음 총회는 우리 수도회의 역사 안에서 스물여섯 번째를 맞이하게 됩니다. 다음 총회는 하느님과 청소년들에게 역동적인 충실성을 가지고 중대한 임무 안에서 이전의 총회와 함께 계속되는 것입니다. 제 26차 총회는 로마 총본부의 살레시아눔(Salesianum)에서 개최될 것입니다. 총회는 2008년 2월 24일 일요일에 우리 카리스마의 요람으로 우리의 집과 아버지를 찾도록 초대하고 우리 정신의 원천을 건져 올리도록 초대하는 토리노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는 도움이신 마리아 대성당에서 성체성사를 거행하고 우리 카리스마의 영감과 역동성의 원천인 살레시오 성지를 방문하면서 총회를 시작하고자합니다. 그리고나서 총회의 장소인 로마로 향해 출발할 것입니다.
저는 총회 준비와 진행을 동반할 책임자로 양성 총평의원인 프란체스코 체레다 신부를 총회준비 위원장에 임명했습니다.
�나에게 영혼을 달라�(회헌 4조 참조)는 총평의원들과 함께 제가 제 26차 총회를 위해서 선택한 주제입니다. 이 주제는 합동평의회에서 자주 요청되었고 저와 총평의원들이 마음에 염두에 두고 있는 주제입니다. 이것은 돈 보스코의 영적이며 사목적인 계획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주제 안에는 살레시오 회원의 카리스마적인 신원과 사목적 열성이 집약되어 있습니다.
이 주제는 매우 폭넓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제 26차 총회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복음화의 긴박성, 살레시오 봉헌생활로 초대하는 부르심의 필요성, 복음적 가난을 사는 요구, 사명의 새로운 경계를 향해서 나아가려는 도전의식이라는 네 가지 분야에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1.1. 주제를 선택하게 된 동기
저는 오래 전부터 오늘날 우리 수도회가 �나에게 영혼을 달라�는 열성을 가지고 모든 형제들의 마음이 다시 깨어날 필요가 있다는 확신을 마음 한편에 점점 키워왔습니다. 이와 같은 확신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과 젊은이들의 필요에 응답하고 오늘날 우리에게 다가오는 도전들을 용기와 능력을 가지고 직면하도록 영감과 동기와 힘을 부여할 것입니다.
�나에게 영혼을 주고 나머지는 가져가라�는 모토를 우리의 것으로 삼으면서 우리는 돈 보스코의 영적이며 사목적인 계획과 �하느님의 영광과 영혼 구원"을 위해 지칠 줄 모르고 일하셨던 이유를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카리스마의 기원, 우리 사명의 목적, 우리 수도회의 미래를 찾아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미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2015년에 맞이하게 될 돈 보스코 탄생 200주년은 돈 보스코를 우리와 젊은이들 가운데로 돌아오도록 �돈 보스코 오소서!�를 부르는 초대가 될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것은 살레시오 회원들이 돈 보스코와 젊은이들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자극제가 될 것입니다: �돈 보스코에게 돌아갑시다! 젊은이들에게 돌아갑시다!� 돈 보스코와 청소년들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즉, 돈 보스코는 우리의 아버지요 모범이십니다. 청소년들은 �하느님을 만나는�(회헌 95조 참고) 장소이며 “우리 사명의 고향”입니다.
“나에게 영혼을 주고 나머지는 다 가져가라!”는 표현은 수하고 있으며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면서 주님의 이름 때문에 받게 되는 도전 안에서 모든 형태의 사리사욕을 포기하고 모든 이의 짐을 짊어지는 사람으로부터 하느님을 향해 드리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기도이기 때문에 우리는 사명이 단지 독창적이고 사목적인 활동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사명은 사목적으로 수행해야 할 과제라기보다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사명은 활동 속의 기도를 통해서 실현됩니다. 이 안에 활동주의를 극복하고 "활동하는 가운데 소진”되어 버릴 위험을 극복하기 위한 근거가 있습니다.
돈 보스코의 계획은 성부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생명을 바치는 가운데 십자가 위에서�목마르다�요한 19,28)고 하시는 표현을 우리 마음에 메아리치게 합니다. 예수님의 이 기도를 자신의 기도로 삼는 사람은 �마지막 순간까지�그분의 사목적 열성을 나누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 각자가 영혼에 대한 우리의 목마름에 생명을 불어넣고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나의 생명까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고 아이들에게 말씀하신 돈 보스코의 약속을 쇄신시켜주는 호소가 되게 합니다. 이 때문에 살레시안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찔린 옆구리로부터 영감을 받습니다.
돈 보스코의 모토는 열개의 다이아몬드 꿈에서 표현된 것처럼 살레시오 영성과 고행의 종합입니다. 여기서 두 개의 상호 보완적인 전망이 교차하게 됩니다. 하나는 대담함, 용기, 믿음, 희망, 사명에의 전적인 투신을 드러내는 살레시오 회원의 눈에 보이게 드러나는 얼굴이며, 다른 하나는 순명, 청빈 정결이라는 삶의 형태로 예수님을 따르도록 그를 인도하는 마음 깊은 곳에서 생기는 확신으로부터 건설되는 내적 실재인 봉헌생활을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에 숨어 있는 것입니다.
1.2. 주제 선정을 위해 진행된 과정들
제 26차 총회의 주제 선정을 위해서 우리는 각 관구들에서 살았던 것을 토대로 출발하고 싶었습니다. 합동평의회를 준비하면서 최근 몇 년간 실현한 굵직한 일들, 가장 중요한 도전들, 미래에 직면하게 될 자원들, 현재 만나고 있는 어려움들을 개별화시키면서 각 관구들은 제 25차 총회가 얼마나 동화되었는가를 평가하고 미래에 대한 몇 가지 전망을 제시하도록 초대받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합동평의회는 우리에게 다양한 상황을 가지고 있는 수도회의 상태, 수도회의 강점과 약점, 수도회가 가지고 있는 기회와 도전들을 알려주었다는 의미에서 제 26차 총회를 준비하는 첫 번째 단계가 되었습니다.
살레시안의 삶을 살고 있고 청소년들을 위한 사명을 실현하며 살아가는 형제회원들의 마음을 기쁨과 열정으로 불타오르게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나에게 영혼을 주고 나머지는 다 가져가라�는 열정을 상기시켰습니다. 동시에 다른 강조점을 가지고 복음과, 성소계발, 청빈과 새로운 영역이라는 공통점을 갖는 주제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2005년 12월과 2006년 1월에 있었던 총평의원이 전원 참석한 총평의회가 끝날 때 모든 평의원은 제 26차 총회에 대한 자신들의 제안을 저에게 제출했습니다. 여기에서도 다양한 동기와 강조점들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주제는 돈 보스코의 카리스마, 살레시오 회원의 신원, 사목적 열성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언급이었습니다. 이와 함께 오늘날의 복음화 문제, 봉헌된 살레시오 생활에 대한 부르심, 청빈, 살레시오 사명에 대한 새로운 지평, 양성과 커뮤니케이션과 같은 특수 주제들도 나타났습니다.
주제 선택을 위한 과정은 지난 4월 3일부터 12일까지 총평의회 특별회합에서 행해진 공동 식별을 하면서 끝나게 되었습니다. 이미 위에서 언급된 주제가 결과로 채택되었습니다.
1.3. 주제선택의 근본적인 목적
제 26차 총회의 근본적인 목적은 �나에게 영혼을 주고 나머지는 가져라가�는 열정으로 모든 형제회원들의 마음을 깨우면서 돈 보스코에게로 돌아가는 우리의 카리스마적 신원의식을 강화시키는 것입니다.
이 목적은 돈 보스코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더 심화시키고 아버지요 스승이신 그분과 우리를 일치시키면서 우리의 임무를 쇄신시키고 그의 위대한 확신에 영감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 회헌, 특히 살레시오 정신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회헌 2장을 읽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하느님의 영광과 영혼 구원�의 실현이라는 임무를 가지고 자신의 삶에 동기를 부여하고 일치시키도록 도와주면서 모든 형제들의 마음 안에 영적이며 사목적인 열정의 불을 붙이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임박한 돈 보스코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2015년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나라 안에서 그의 카리스마 혹은 우리 창립자이며 아버지인 그분의 정신과 사명을 육화시키도록 부름받은 수도회에게는 은총의 해가 될 것입니다. 이 기념사업은 거의 제 26차 총회의 목적을 형성시킵니다.
제 26차 총회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 돈 보스코를 더 잘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즉, 돈 보스코에 대해서 연구하고 그분을 사랑하고 모범으로 삼아 따르고 그분께 간절히 청하는 것이 필요합니다(회헌 21조). 우리는 그분을 삶의 스승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영성에서 자녀와 제자로서 영적 갈증을 해소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성소의 길을 충실히 걸어가도록 제시하는 창립자로서, 직접적으로는 돈 보스코와 살레시오 역사가 우리에게 전해준 회헌을 만드신 분으로서, 복음과 그리스도를 따르는 카리스마적인 눈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으로서 그분을 인식해야 합니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돈 보스코와 우리를 일치시키는 생생한 결합을 파괴하는 더 큰 위험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분이 돌아가신지 한 세기가 넘었습니다. 돈 보스코와 직접적인 만남을 가졌고 가까이서 그분을 알았던 살레시오 회원들의 세대가 이제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창립자로부터 시대적이고 지리적이며 문화적인 격차가 점차 증가하고 있습니다. 돈 보스코와 그의 정신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말하기를 어려워하고 심지어는 그의 모습을 담은 단순한 사진까지도 걸어 놓지 않음으로써 영적인 분위기와 심리적인 친근함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전해졌던 것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창립자로부터 멀어지고 그의 정신과의 유대가 약해질수록 카리스마적 신원의 색이 바래버리게 마련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원천을 새로운 생명으로 소생시키지 못한다면 미래가 없는 위험과 살레시오 회원으로서 누리는 시민의 권리를 얻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정체성의 위기보다 더한 것은 우리 살레시오 회원들이 오늘 체험하고 있는 믿을 수 있는 가능성(Credibilit�의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 사면초가의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우리는 마치 최악의 �현재상태(Status quo)"를 살고 있는 듯합니다. 의도적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변화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복음적인 가치의 효과를 확신하면서 우리는 청소년들에게 희망의 표징이 되어야 하지만 그들의 마음으로 다가가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이 청소년들의 삶을 건설하는데 별 의미가 없다고 여기는 태도에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청소년들의 세계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으며 여지를 두고 말한다면 그들이 삶에 대해서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의 손짓이나 몸짓 그리고 의사소통이 청소년들에게 그리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순교까지도 감내하는 증거와 자기희생을 무릅쓰고 투신하는 삶의 이면에서, 살레시오회의 생활은 �평범해져 가는 영성 생활과 점차 중산화 되어가고 소비주의 사고방식의 함정�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수도회 전통은 �영적 유언�이라는 문헌에서 돈보스코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회원 개인과 그들의 방이나 집에서 편안함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우리 수도회는 쇠퇴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 우리 가운데 편리함이나 안락함을 추구하기 시작할 때 우리의 충실한 수도회는 끝장나게 될 것입니다.�
성소자들의 감소와 성소의 나약함은 저로 하여금 많은 회원들이 아마도 우리 사명의 사회적이고 교육적이며 복음적인 유익함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우리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거나 쇄신할 줄 모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일에 대한 우리의 투신이 그들의 포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마도 그들이 항상 보다 절박한 상황에 둘러싸여 있다고 느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더욱더 우리의 살레시안적 자질을 향상시켜 청소년들에게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돈 보스코께서 자신의 삶의 형태, 사목적이며 교육학적인 유산, 예방교육과 영성을 발전시킨 것은 청소년들 가운데 계셨기 때문입니다. 돈 보스코의 사명은 하나였습니다. 특별한 이유 때문에 그들과 물리적인 접촉을 할 수 없었을 때도, 그분의 행동이 직접적으로 청소년들을 위해 봉사하지 않았을 때조차도 그분은 항상 청소년들과 함께 그리고 청소년들을 위해서만 일하셨습니다. 이 때문에 미래지향적인 전망이 없는 교회 당국자들의 압력 앞에서도 그분은 온 세상의 청소년들을 위한 창립자의 카리스마를 강인하게 지킬 수 있었습니다. 살레시오 사명은 청소년들에게 우선권을 부여합니다. 초창기에 그가 보여준 우선권은 하느님의 선물이었지만 이것은 이제 우리의 지성과 마음에 이 우선권을 받아들이고 발전시키며 완성하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참된 살레시오 회원은 청소년들의 분야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살레시오 회원이 된다는 것은 청소년들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살레시오 회원의 심장은 청소년들의 심장이 박동치는 바로 그곳에서 박동칩니다. 살레시오 회원은 청소년들을 위해서 살고 청소년들의 문제는 곧 회원들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청소년들은 살레시오 회원들의 삶의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그는 청소년들을 위해서 일하고 공부하며 애정과 자유시간을 모두 바칩니다. 살레시오 회원은 청소년들에 대해서 근본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이론적인 지식을 겸비한 사람들입니다. 살레시오 회원은 청소년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를 발견함으로써 시대의 요청에 적합한 청소년 사목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살레시오 교육학을 심화시키야 합니다. 에디지오 비가노 신부가 염원했던 쇄신된 예방교육을 연구하고 실현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것을 연구하고 적용하는 사람들은 예방교육의 절대적인 원칙들을 발전시키고, 원리와 개념과 지침들을 현대화시키고, 그의 근본적인 생각들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예방교육의 근거가 되는 사상은 하느님께 보다 큰 영광, 영혼 구원, 생생한 신앙, 견고한 희망, 사목적 사랑, 착한 신자와 정직한 시민, �기쁨, 공부와 신심�이라는 세 단어, 건강, 학문과 성덕이라는 3S, 신심, 도덕성, 문화, 복음화와 문명화가 있습니다.
동시에 위대한 지침에 대해서 말할 수 있습니다. 즉, 두려워하기 전에 사랑받도록 할 것; 이성, 종교, 친절한 사랑; 아버지, 형제, 친구; 특별히 레크레이션을 하는 동안 형성되는 친밀함; 마음을 사로잡는 것; 학생들의 선익을 위해서 축성된 교육자; 마음껏 뛰어 놀고 떠들어대는 폭넓은 자유.
모든 것은 결정적인 변화의 시기에 인문과학이 비판적 성찰을 하고 있는 가장 폭넓고 전대미문의 상황과 문제를 겪으며 살도록 부름받은 새로운 젊은이들을 위해서 다시 읽혀져야 합니다.
돈 보스코의 영성을 알고, 내적으로 심화시키며 사는 것이 시급합니다. 돈 보스코의 생애에 대한 외적인 측면들, 그가 했던 활동과 교육방법에 대한 지식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을 토대로 그의 행위와 활동을 풍요롭게 하는 원천에는 우리가 종종 잊어버리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다. 즉, 그것은 바로 하느님과 그가 맺은 �친밀함�이라 부를 수 있는 심오한 영적 체험이라는 것입니다. 그에게 호소하고 그를 모방하고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서 그분을 따르고 젊은이들이 그분을 만나게 하기 위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것이 어쩌면 이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돈 보스코가 했던 영적 체험과 아주 동일한 체험에 이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아마도 돈 보스코에 대해 깊이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돈 보스코는 모든 것을 일에 걸었던 사람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내적 차원의 발전과정을 설명해주지도 않으셨고 그의 영적 체험에 대한 명백한 성찰거리들을 남겨놓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영적 일기를 쓰지도 않았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어떤 해석도 남겨놓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청소년들의 전기를 쓰거나 자신의 생애에 있었던 사건들을 서술하면서 살레시오 정신을 전해주는 것을 더 좋아하셨습니다. 그렇다고 그분의 영성이 활동적인 사목이지 관상적인 사목에 투신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습니다. 그의 영성은 이론적 영성과 대중적 영성 사이의 중재를 이룬 사목이었습니다.
그의 영성의 중심에는 청소년들, 특히 보다 가난하고 버림받은 청소년들에게 구세주이신 그리스도를 모범으로 하고 어머니시며 스승이신 마리아의 학교에서 그들의 전인적인 구원을 위해서 종교적이며 사도적인 봉헌에 모든 것을 집중시킴으로써 개인적 성소를 벗어난 적이 없는 삶을 통해서 알고, 사랑하고 봉사할 하느님 한 분만이 계셨습니다. 예를 들면 그의 서간들에서 가장 자주 표현되는 주어는 하느님이었고 가장 자주 등장하는 동사는 �하다�라는 것 다음으로 �기도하다�라는 말이었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습니다.
돈 보스코가 했던 영적 체험의 뿌리는 �나에게 영혼을 주고 나머지는 가져가라�Da mihi animas cetera tolle), 즉 영혼 구원에 대한 열망 이외는 어떤 의미도 없다는 것이 모토 안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14,21 (사람들은 나에게 돌려주고 재물은 그대가 가지시오)의 인용은 그가 성서적 표현에 적합하고, 우의적이며 짧은 기도를 하는 의미를 주듯이 돈 보스코 안에서 독특한 특징을 갖게 합니다. 영혼들이라는 말은 사람을 지칭하며 구체적으로는 결정적인 구원의 전망 안에서 보게 되는 그와 관계를 맺고 있던 청소년들을 지칭합니다. 나머지는 가져가라는 말은 자기 소멸과 하느님과의 융합으로 이끌지 못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초연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돈 보스코에게 초연은 가장 절대적인 자유와 사도직의 요구에 자신을 투신하기 위해 필요한 영혼의 상태입니다.
1.4 다른 과제들
제안된 주제의 심화 이외에도 제 26차 총회는 다른 특별한 과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과제들 중에 첫 번째는 2008-2014년 동안을 통치할 총장과 총평의원들의 선출입니다.
그리고 제 25차 총회에서 행해진 몇몇 요청들과 같은 총회에 의해서 도입된 몇 가지 변화에 대한 성취여부와 평가가 있습니다. 총회 문헌 112와 115항에서 제시하고 있는 노선에 때라 우리 살레시오 사명을 위한 각 부서들의 조직적이며 구조적인 측면에 대해 재숙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25차 총회는 유럽의 세 관구군(124, 126, 129 항 참조)에 대한 배치를 성찰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회헌을 바꾼 후에 부총장(제25차 총회, 133)에게 살레시오 가족을 맡기는 것에 대해 평가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끝으로 현재 문제시 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응답을 주려는 목적으로 지역 공동체 경리(회헌 154조)의 모습과 역할에 대해서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 제 26차 총회의 배경
삶의 역사성과 육화의 원리는 역사적인 조건을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고, 살레시오 생활과 사명일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것들에 대한 도전과 가능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짧게나마 제 26차 총회가 카리스마적인 신원과 사도적인 열성의 전망 안에서 펼치게 될 배경을 짧게나마 설명하고자 합니다.
2.1 청소년들의 요구와 기대
돈 보스코는 사제로 서품된 직 후 가파소 신부의 훌륭한 영적지도와 함께 토리노의 콘비토 신학원에서 사목적 양성을 마치자 토리노의 거리를 누비고 다녔습니다. 그는 상점들, 건축 자재 창고, 시장, 감옥 등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는 많은 청소년들의 상황과 그들의 불행과 그들이 무엇을 바라는가를 직접적으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그로 하여금 어느 누군가가 그들을 돌보고, 도와주고, 그들의 구원에 대해서 염려해야 한다는 절박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이것으로부터 돈 보스코가 자신의 성소를 실현하게 될 오라토리오에 대한 생각이 나오게 됩니다. 청소년들의 외침은 �나에게 영혼을 주고 나머지는 가져가라�는 그의 사목계획의 무조건적인 열성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만일 오늘 우리가 우리의 성소적 신원을 심화시키고 쇄신시키기 위해서 돈 보스코에게로 되돌아가고자 한다면 우리도 청소년들로부터 출발해야 하고, 그들이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이해해야 하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그들 안에서 들어야 합니다.
청소년들은 서로 다른 배경 안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그들은 삶, 사랑과 자유에 대한 위대한 가치에 민감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살아가는 가운데 많은 어려움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그들이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동시에 그들이 만나게 될 장애와 위협들을 모른 체할 수 없습니다.
삶: 요구와 위협
청소년들은 질적으로 향상된 삶을 추구합니다. 그들은 충만하게 삶을 살려는 원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의미 있는 삶의 모범을 찾습니다. 자율적이고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수용으로부터 출발하여 자신의 삶을 건설하려고 열망합니다. 그들은 개인이 중심이 되는 사고방식, 인간 원리, 평화와 정의, 관용과 연대와 같은 새로운 가치들에 대한 요구를 느낍니다. 그들은 광신적이고 단편화된 세상에 균형과 조화를 발견하기 위해 영성과 초월을 찾습니다. 그들은 주관적이며, 진지하고 비제도적인 종교를 원합니다. 그들은 삶의 의미를 연구하면서 그들의 말을 잘 들어주고 이해하며 그들을 인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어른들이 그들의 살을 동반해주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적인 체계에 의해서 만들어진 가난의 상황은 많은 청소년들을 생존을 위한 투쟁의 삶으로 내몰았습니다. 전 세계 청소년의 18%에 해당하는 2억 이상의 청소년들이 하루에 1달러 미만의 돈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약 5억 1500만의 청소년들이 2 달러 미만으로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2002년에 세계적으로는 1억 7500만으로 추정되는 이주민들이 있었는데 이중에 2600만 명이 청소년들이었습니다. 실업, 노동력 착취,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교육제도는 미래에 대한 청소년들의 전망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8800만의 젊은이들이 실직의 상태에 있습니다. 1억 3천만의 청소년들이 어떤 교육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폭력의 문화는 학대와 궁핍에 반응하며 살아가게 합니다. 마약, 테러, 전쟁, 어린 군인들, 인종학살 등이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비행의 수준은 개발도상국들 안에서 극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청소년 범죄는 종종 알코올과 마약 남용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청소년 범죄는 기아와 가난 그리고 실직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죽음의 문화를 만들고 생명의 의미를 상실시키는 낙태, 자살, 안락사, 고문은 생명과 생명의 존엄성에 위협을 가하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1년에 15세와 19세 사이의 청소년들 중 5백만 명이 낙태를 하고 있습니다. 만일 신앙과 삶이라는 이분법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인적인 삶도 청소년들에게 유효하지 못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사랑: 필요와 위협
청소년들의 감수성, 커뮤니케이션 형태와 표현 형태, 그들의 언어, 그들의 생활유형은 어른들의 그것과 비교해서 매우 다르게 변화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육체와 이미지를 중심에 두고 있고, 성(性)과 애정적 세계에 대한 가치,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케이션과 관계에 개방된 새로운 언어표현들이 신기술의 발전에 의해서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들은 그들을 불안하게 하고, 자신에 대해 신뢰를 두지 못하고 안정되고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만드는 정서적 공허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정, 애정과 동료애에 대한 새로운 관계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어른과 청소년들 사이의 의미 있는 관계를 맺어야 할 필요성이 있는 데 이것은 경청과 환대를 요구합니다. 무엇보다도 청소년들 사이에서 다양한 형태와 다양한 방법으로 벌어지는 사회봉사와 자원봉사 체험, 반세계화 운동, 환경주의자, 평화주의자 등과 같은 사적인 생활공간과 공적인 생활 사이에 놓여있는 긴밀하고도 즉각적인 사회성, 소속과 근접성에 개방되어 있고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서 사회 안에서 새로운 형태의 투신과 참여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피상적이고 소유적인 사랑을 촉진하고 점점 더 일순간의 쾌락을 만족시키고 몸을 상업화하며 성적인 착취를 일삼고 있으며 청소년들 중 1400만 명 이상이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하고, 부부 관계가 불안정하게 되어가는 위협적인 문화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AIDS는 중병을 일으키고 공포심을 불러일으킵니다. HIV로부터 새롭게 감염된 사람의 50%가 청소년들입니다. 청소년들 중 약 1000만 명이 AIDS에 감염되었고 이들 중 620만이 아프리카 남부 사하라 지역에 살고 있고 220만이 아시아에 있습니다. 현재 1500만의 청소년들이 18년 이내에 AIDS로 인해 고아가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들 중 약 1200만 명이 아프리카 사하라 남부에 살고 있습니다. 2010년에 그 숫자는 1800만으로 증가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청소년들을 위해서 의미 있는 윤리적 제안을 제시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자유: 필요와 위협
청소년들은 자신의 신원을 건설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그들은 엄청난 양의 지식과 경험들을 소유하고 있으나 의미 있는 기준의 결핍으로 인해 매우 단편적이고 방향 감각을 잃어버린 채 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자신의 신원을 연구하고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때 그들을 불확실하고 허약하게 만듭니다. 그들은 더 큰 행복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행복하게 된다는 것은 젊은이들이 그들의 마음에 품는 가장 큰 꿈이며 계획입니다. 우리는 세계화된 사회가 동질화되어가는 성향을 극복하고 모든 이데올로기와 교의(敎義) 위에 생생한 경험을 통해서 얻게 되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 다르게 될 권리가 있음을 주장합니다. 그들은 사회적인 생활, 일과 정치적인 생활에서 인정받고 주인공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들에 의한 문화적인 조작은 피상적이고 소비적이며 쾌락적인 문화를 선호하게 합니다. 이와 같이 청소년들의 신원을 건설하는데 강력한 조건으로 등장하는 무비판적 수용으로서의 순응주의(conformism), 즉각적인 해결책을 찾는데 급급한 실용주의, 모든 가치로부터 해방된 자유를 추구하는 상대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정신과 같은 태도는 장애가 됩니다.
2.2 사회적이며 문화적인 도전들
우리는 수도회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문화와 사회 안에서 청소년들에게 카리스마적 정체성과 청소년에 대한 사명을 살고 있다는 것을 망각할 수 없습니다. 문화와의 관계와 중대한 사회적인 문제는 우리의 효과적인 현존을 통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다양한 배경 안에서 도출되는 몇몇 공통적인 측면들을 분명히 하려고 합니다.
근본적인 경향
먼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변화를 특징짓고 있는 두 가지의 극단적인 경향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 다름을 무시하면서 서구 모델을 모방하려는 문화적으로 동질화되어 가는 경향이 존재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점점 더 대립으로 이끄는, 예를 들면 이슬람과 서구 사이에, 세속화된 사회와 그리스도교 간에 벌어지는 종교적인 뿌리에 대한 강한 문화적 반발이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사회와 문화의 많은 측면들에 스며들어 있는 기술적 진보로 인해 증진된 세계화의 현상에 대해 숙고해야 합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개인과 민족들의 서로 다른 인간적 가치들을 지배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시장경제체제 위에 뿌리를 둔 신자유주의 모델이 어디에나 확산되어 있습니다. 문화적인 관점에서 볼 때 민족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이며 정치적인 차이를 점차로 말살시키면서 서구 모델을 향한 문화적 동질화 과정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끝으로 충격적인 수단으로서의 사회 커뮤니케이션, 정보 혁명은 미디어에 의해서 지배된 문화와 정보 사회를 통해서 관습, 부(富)를 나누고 일을 시작하는데 엄청난 변화가 초래되고 있습니다.
사회 문화적인 수준에서 다가오는 도전들
가난, 기아와 저개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부유하고 평화로운 나라로 이주하는 강력한 인간 이동의 경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같은 현상의 또 다른 측면은 여러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도시화 또는 국내 이주입니다. 소외, 미성년자들의 노동, 매춘관광, 거지신세, 거리의 청소년들, 청소년 범죄, 어린 병사, 유아 사망이라는 비극적인 모습 안에 어린이들과 미성년자들에 대한 착취가 행해지는 도전과 더불어 가난과 배고픔, 질병과 저개발에 대한 계속적인 도전이 있습니다. 소비에 바탕을 둔 사회의 전망이 견고해지고 있고 부자 나라이든 개발도상국가이든 어디든지 소비주의 사고방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생명과 죽음이라는 역설적인 문화는 생명과학과 우생학(優生學)의 발전과 함께 서로 충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인간과 민족들의 발전과 정보 기술과 커뮤니케이션 사이에 불균형이 존재합니다. 현세와 인간에 대한 상대적인 전망으로부터 발생하는 개인주의 문화가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인간학적 전망으로부터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횡포�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 윤리적 상대주의에 기반을 둔 인간 가치의 새로운 형식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널리 퍼져있는 심리적이며 수동적인 약점도 약한 사고라는 표현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계속적인 관습의 변화와 지배적인 양식과 모델의 영향 때문에 가치 전달에 대한 교육 문제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점차 확산되고 있는 세속화 현상은 하느님을 배제한 다양한 형태의 인본주의를 격찬하고 있고 모든 종교적 신념의 표현을 개인적인 것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가족, 생명, 사랑, 성이라는 주제 안에서 다원주의, 거룩함에 대한 새로운 의미, 전통적인 교육의 위기,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마약은 도발적인 도전이 됩니다. 종교적 근본주의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과 서로 다른 신앙 사이의 상호간의 대화에 결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성과 종교 집단의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서 신흥 종교 운동(New religious movements )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신흥종교의 난립현상과 소위 �뉴 에이지�운동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수도회가 직면한 문화적인 도전들
도전들은 일반적으로 외부 세계로부터만 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도전 중 어떤 것은 수도회의 내부로부터 오기도 하며 수도회의 어떤 지역에서는 형제들의 고령화 현상이나 다양한 차원에서 통치기능의 약화, 주변 사람들의 빈곤과 결핍의 환경에 비해서 살레시오 회원들의 생활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아 불일치를 보이는 것과 같은 다양한 유형의 도전들이 있습니다.
자신들의 태도와 삶의 모델을 가지고 있는 청소년 문화가 형제 회원들의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인 생활에 여러 가지 충격적인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살레시오 회원이 갖는 일반적인 사고와 행동의 관점으로부터 매우 벗어날 수 있는 청소년 세계를 대면하기 어려워하고, 교육과 복음화 사이에 생기는 서로 다른 강조점, 인간적 발전에 대해 우리 사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다양한 감수성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강하게 세속화된 환경에서는 복음화 활동과 인간을 구원하시는 구세주 그리스도를 분명하게 제안함으로써 특별한 의미를 주게 되는데 이것이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여기저기에서 영적인 피상성, 막연하게 조직된 사목구조, 청소년 세계와 동떨어진 사목, 카리스마의 토착화에 대한 문제, 돈 보스코와 그의 사업에 대해 부족한 지식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2.3 오늘날 교회의 지침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입각하여 베네딕토 16세께서 "교회와 오늘날 세계화된 사회 사이에 새로운 환경과 관련된 것들이 특별히 드러나고 있다"고 최근에 천명하신 가르침과 같이 우리는 오늘 봉헌생활(1996)이라는 사도적 권고, 새천년기(2001)라는 사도적 서한, 그리스도에게서 새롭게 출발(2002)라는 가르침,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라는 회칙 안에서 위대한 교회의 가르침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스도로부터 새롭게 출발하기: 개인적인 계획으로서의 성화
그리스도로부터 새롭게 출발한다는 것은 봉헌생활이 특별히 그분을 따르는 것이며 "예수님의 생활양식과 행동방식에 대한 살아있는 기념"이라는 것을 천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삶의 중심이며 모든 활동의 지속적인 원천이 되신 그리스도께 대한 특별한 사랑의 친교를 뜻한다.” “첫 제자들도 갈릴래아에서 그리스도에게서 출발하였으며, 역사상 모든 신분과 문화의 사람들도 부르심을 입어 성령으로 봉헌되어 그리스도에게서 출발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가족과 고향을 떠나 무조건 그분을 따랐으며, 두루 다니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좋은 일을 하는 도구가 되었다”(사도 10,38 참조).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히브 13,8) 제 3천년기 교회의 사목계획이십니다. 즉, “참된 대화와 효과적인 의사 소통을 위해서 시대와 문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러한 계획은 시대와 문화가 변하여도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살레시오 회원들도 교회 내의 다른 공동체 혹은 다른 그룹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에 대한 선포가 사람들에게 다다르고,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게 하며, 사회와 문화 속에 복음의 가치들을 심는 데 깊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적합한 사목지침 안에 그와 같은 계획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 저 또한 “모든 사목 계획은 성덕을 중심으로 세워져야 한다”고 주저 없이 말씀드립니다. 이것이 “사목 계획의 토대”입니다. 무엇보다도 사목계획의 토대는 우리의 성덕입니다! 총장의 직무를 시작할 때부터 저는 여러분들에게 이것을 말씀드렸고 저의 첫 번째 편지도 성덕에 대해서 쓴 것입니다. 저는 오늘 보다 큰 확신을 가지고 절박하게 이것을 반복합니다. 성덕이란 “우리가 청소년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회헌 25조)입니다. 성덕은 “우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용기를 내어 제안해야 할 가장 높은 목표입니다. 우리가 성덕의 정상에 설 때만 청소년들은 용기 있는 삶을 선택하고 미래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발견하며 봉헌생활의 성소를 특별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성화에 대한 공동체의 매력적인 모델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우리는 청소년들 안에 “성화에 대한 진정한 갈망, 항상 더욱더 열렬히 기도하는 분위기 속에서, 그리고 회개와 개인적인 쇄신을 향한 강한 열망, 이웃 사람들 특히 가난한 이웃을 연대성 안에서 받아들이는 환대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키고 지지해야 할 것입니다. 참된 교육자인 우리는 사람들의 요구에 적당히 응답할 수 있고 영성 생활의 전문적인 인도자가 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며 우리 공동체가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나누며, 전례 거행과 기도의 가르침 그리고 영적 동반과 영적 지도를 위한 장소”가 되도록 “참되고 고유한 성덕의 교육학”을 제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 우선적 사명으로서의 복음화
부활 직후에 예루살렘에서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금지시켰을 때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사도 4,20)고 대답했습니다. 우리 살레시오 회원들은 “그리스도교 사회”의 조건이 점차 쇠락해가는 옛날에 복음화가 이루어졌고 기쁨으로 첫 번째 복음화를 받아들인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처음의 정열을 되살리고, 오순절에 뒤이은 사도들의 복음 선포 열정이 넘쳐나게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1고린 9,16) 하고 외쳤던 바오로 사도의 불타는 신념을 우리 안에 되살려야 합니다.”
베네딕토 16세께서는 쾰른에서 열린 세계청소년대회를 마치면서 청소년들에게 “그리스도를 발견한 사람은 그분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커다란 기쁨을 자기만 가지고 있을 수 없습니다. 이 기쁨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오늘날 세상의 많은 지역에서 하느님을 잊어버리는 이상한 현상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마치 그분 없이도 모든 것이 똑같이 진행될 거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런 삶을 사는 모든 사람들은 좌절감을 맛보며 그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교황님은 로마의 수도자들에게 “여러분의 첫 번째이며 최상의 열망은 다른 어떤 사람이나 어떤 것보다도 온 마음과 온 영혼과 온 힘을 다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사랑하는 것을 증거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봉헌된 사람으로서 여러분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두러워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숨겨진 보물을 얻으려고 모든 것을 버린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드러내도록 힘쓰십시오(...) 교회는 여러분의 증거를 필요로 합니다. 교회는 용기와 창의력을 가지고 오늘날의 도전들을 직면하는 봉헌생활을 필요로 합니다.”
방금 시작된 새천년기에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도전은 “교회를 친교의 집과 학교로 만드는 것”입니다. 봉헌 생활에 맡겨진 새로운 복음화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도록 인도하는 온 세상을 위한 표징이며 강력한 힘”인 친교를 증거하는 일이며, “인종간의 증오와 무분별한 폭력으로 찢겨진 오늘의 세계에서 마음을 터놓고 사랑의 대화를 계속함으로써 먼저 그들의 내적 생활 안에서, 나아가 교회 공동체 안에서, 마침내 교회 밖으로까지” 친교의 영성을 사는 것입니다. 세계화 문제와 국수주의라는 우상의 회귀로 특징지어지는 이 시대에 우리 수도회도 국제적인 수도회이기 때문에 “생활의 증거로써 그리스도교적 형제애의 가치와 변혁을 가져오는 기쁜 소식의 힘을 선포하려고 파견되었고” “민족들, 인종들, 문화들 가운데 친교 의식을 증진하고 증언하도록 부름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공동체들은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보편성을 증언하는 동시에 통합과 토착화의 훈련장”이 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의 현존, 사업과 조직들 이상으로 교회는 우리의 현존, 우리의 봉헌생활, 그리스도를 따르는 근본적인 방식을 필요로 합니다. 베네딕토 교황님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억시키고 있습니다. “쾌락주의의 무분별한 발전 앞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 있는가를 아는 마음의 표현인 정결의 삶을 용기 있게 증거하도록 여러분에게 요청합니다. 돈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 앞에서 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봉사에 준비되고 소박한 삶을 살도록 결심한 여러분의 삶은 오직 하느님만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참된 풍요로움이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이 유일한 규범이 되도록 인도하는 개인주의와 상대주의 앞에서 조화로운 삶을 살도록 여러분을 자신을 맡길 수 있고 순명할 수 있는 여러분의 형제적인 삶은 하느님 안에서 여러분의 자아가 실현된다는 것을 확신하게 할 것입니다. 참된 행복의 문화인 복음적 권고의 문화가 그리스도인 백성의 삶 안에서 증거될 수 있도록 교회 안에서 성장하도록 어떻게 열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청소년들에게 되돌아가기: 그리스도 사랑의 징표로서의 현존
청소년들은 “하느님의 성령께서 교회를 위해서 주신 특별한 선물입니다.” 우리 살레시오 회원들은 예수님처럼 동정심 (마르코 6,34 참조)을 가지고 청소년들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마르코 6,34 참조) 하느님의 복음 외에 다른 어떤 것도 그들에게 주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이외의 어떤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마르코 6,37 참조). “그들에게 아무리 모호한 점들이 있을 수 있다 하더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는 참된 가치들을 추구하려는 깊은 열망을 표현하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참된 얼굴을 젊은이들에게 제시한다면, 그들은 그분께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질문에 대한 설득력 있는 답이심을 체험하게 될 것이고, 비록 그 메시지의 요구가 크고 십자가의 표지를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그분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것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처럼 우리도 젊은이들에게 그들도 엄청난 과제가 있다는 것을 제시하면서 새천년의 문턱에서 “새벽을 지키는 파수꾼”(이사 21,11-12 참조)이 되도록 신앙과 삶에 대해 근본적인 선택을 하도록 요청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스런 현존과 적당히 도전에 직면하는 계획을 통해 젊은이들의 복음화는 우리에게 오락이나 단순히 문화적인 교육, 문화적인 양성 혹은 초월에 대한 일반적인 개방을 표방하는 사목으로 전락해 버릴 위험이 있는 청소년 사목에 신앙에 대한 도약, 용기와 심오함을 다시 주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명의 대상자들에게 전하는 직접적인 호소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문제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이 처해 있는 상황과 문제”로부터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우리 사명의 “본향”이며 우리가 하느님을 체험하는 성전인 젊은이들에게 돌아가도록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Kerygma-martyria) 성사들을 거행하는 것(leiturgia) 외에도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사랑의 봉사(diakonia)를 제공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교육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다른 사람에게 맡겨도 되는 일종의 복지활동이 아니라 교회 본질의 한 부분이며 교회의 존재 자체를 드러내는 데에 필수적인 표현입니다.”
온 교회가 심각하게 직면하고 있는 진짜 도전은 성소 문제입니다. 우리는 “교회 생활에 대한 적극적인 책임의식을 고취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서 성소를 유발시키고자 합니다. 사제직무와 더불어 정식으로 제정된 직무든 단순히 승인된 직무든 다른 직무들도 여러 가지 요구들을 뒷받침하면서 전 공동체의 선익에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살레시오 회원들의 “으뜸가는 과제는 말과 모범으로써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의 이상을 용기있게 제시하고, 나아가 부름받은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의 충동에 응답하도록 뒷받침해 주는 것입니다.”
2.4 봉헌생활의 도전과 전망
봉헌생활의 도전
오늘날 봉헌생활은 엄청난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도전은 세속화, 상대주의와 세계화와 같은 외적인 도전들에 의존할 뿐만 아니라 내적인 도전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 좀 더 유용한 것처럼 보입니다.
봉헌생활에 대한 사도적 권고의 권위 있는 언급에도 불구하고 봉헌생활의 정체성이 항상 분명히 이해되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수도회 재창립에 대한 집요한 제안들은 교회 안에서 그의 현존 인식을 잃어버리게 할 위험이 있습니다. 게다가 새로운 형태의 봉헌생활에 대한 결여된 식별은 봉헌생활 자체에 대한 혼란스런 이미지를 제공합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의 성소에 대한 빈약한 신학은 수도생활의 정체성을 더욱 불확실하게 만듭니다.
봉헌생활은 자신의 예언과 믿을 수 있는 가능성을 표현하기 위한 길들을 항상 발견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명은 청빈과 복음화의 경계선 상에서 최고의 열정을 가지고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참된 복음화를 위한 근본적인 형태를 발견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형제적인 생활은 국제적인 문화와 세계화의 추세라는 새로운 요구 앞에서 친교의 삶을 증거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영성 생활은 아직도 살고 전달해야할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종종 위협으로 느껴는 도전은 봉헌생활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특히 지리적으로 어떤 특정한 지역에서 봉헌생활의 존속여부가 위기에 처해있다는 의구심으로부터 나오는 불확실성입니다. 숫자의 감소, 성소자들의 부재, 수도자들의 노령화 등은 수도회 안에서 미래에 대한 전망의 부재, 매우 부담스런 구조조정의 필요성과 새로운 문화적 균형에 대한 연구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 생동감이 결여되어 있고 성소의 나약함이 발견되며 고통스런 포기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은 동기결여와 의기소침과 무기력으로 이끌어갑니다. 이 같은 조건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고, 새로운 여정을 제공하며 리더십을 보장하는 희망의 전략을 인식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봉헌생활에 대한 전망
2004년 11월에 �그리스도에 대한 열정과 인간에 대한 열정�이라는 주제로 열린 봉헌생활에 대한 국제회의를 특별히 다시 한번 언급하면서 오늘날 봉헌생활에 대한 몇가지 전망을 개별화시킬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봉헌생활의 형태가 매력적이고 아름답다고 여기면서 그것을 위한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누어 줄 수 있는 기쁨, 강한 매력, 부드러운 가운데 드러나는 신선함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낙관주의를 만들어 내는 것이 이 봉헌생활의 매력입니다. 봉헌생활은 은총과 공감, 환상과 상상력을 끊임없이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봉헌생활은 강한 열정과 기대감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그와 같은 매력은 봉헌 생활이 가지고 있는 활력이 감지됨으로써 나타납니다. 이 같은 활력은 하느님께 대한 우선권,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삶, 그리스도와 복음적 권고를 중심에 두고 사는 삶, 성령께 순응하고 깊이 있는 영성생활, 사명을 이루기 위한 강한 열정과 형제적인 환대, 친교와 개인적이며 공동체적인 회개 안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봉헌생활 안에서 카리스마적 정체성을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동화되고 마음을 사로잡는 카리스마적 제안 없이 성소가 동화되는 과정은 어렵습니다. 비약한 카리스마적 제안은 명료하지 못한 정체성과 혼란을 야기시킵니다. 창립자의 카리스마로 돌아가는 것은 정체성에 대한 결정적인 요소들 중 하나입니다. 오늘날 사회학은 탁월한 문화,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연구, 소속감이 어떻게 여러 그룹의 수도자들의 신원을 발전시키도록 도움을 주는가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봉헌생활의 복음적 탁월성을 입증하고 우리 성소의 가시적이며 매력적인 증거와 공동체와 수도회에 대한 강한 소속감을 통하여 이와 같은 사회학적 지표들을 신학적이고 카리스마적인 가치로 만들 줄 아는 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우리의 봉헌 생활은 예언적이며 믿을 수 있는 표징이 되어야 합니다. 예언과 믿을 수 있는 능력의 형태들을 찾기 위한 연구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수도회의 차원에서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봉헌생활은 보다 단순하고 가난하며, 간소하고 본질적인 삶의 형태로 돌아가야 합니다. 가끔 커다란 부담을 안고 있으면서 봉사를 하지만 항상 하느님을 증거하지 못하는 구조를 보다 단순하게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봉헌생활은 대안적인 삶의 형태가 되어야 하고 새로운 문화에 대한 제안과 영감이 되어야 합니다. 봉헌생활은 사회와 교회가 속해있는 세상 앞에서 예언적 도전이 되어야 하며 비판적인 태도를 지녀야합니다.
열정적인 사람을 양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느님은 당신 백성에 대해 위대한 열정을 가지셨습니다. 봉헌생활은 온 마음을 다해 사랑에 빠진 하느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봉헌생활은 하느님에 대해 하느님처럼 사랑에 빠진 사람을 양성해야 합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사랑은 봉헌생활이 시작해야 할 출발점이 아니라 도달해야 할 목적지입니다. 성소여정에서 형제들을 확신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수도서원을 통해서 형제들이 받은 선물을 되살리고, 관대한 응답을 하도록 촉진시키고 성소적 충실히 성소를 살아가도록 지지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양성은 동기를 불러일으키며 의미의 지평을 제공하고 삶 전체를 통해서 성장 여정을 걷도록 제시하며 영의 식별에 마음을 열게 하고 성소를 지탱시켜줍니다.
2.5 수도회가 걸은 여정
수도회가 지금 완성하고 있는 여정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고무를 받은 봉헌생활에 대한 쇄신의 임무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의 살레시오 사명과 공동체 그리고 정체성에 대해 보다 많은 인식을 하도록 항상 이끌어왔던 총회 안에서 위대한 성찰과 지침이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별총회(CGS)의 폭넓은 분석과 지침들로부터 시작된 성찰은 교회의 여러 문헌들의 조명을 받아 보다 깊은 심화과정을 거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심화과정에서 오늘날 살레시오 가족과 평신도들과 연대해서 공동체적으로 실현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고유한 사명과 카리스마적 정체성에 견고하게 뿌리를 내린 살레시오 생활 계획의 초석이 되는 근거와 위대한 지평을 발견하게 됩니다.
특별총회의 지침을 다시 읽으면서 우리는 이미 수도회가 그 다음에 이루어진 총회들에서 다루었던 여정의 개요를 직접적으로 얻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의 정체성을 재발견하도록 도와주고, 하느님께서 능동적으로 현존하신다는 살아있는 느낌, 청소년과 백성들을 위한 사명, 공동체 건설, 살레시오 가족에 대한 진가를 인식하고 권한분산 안에서 일치를 이룬다는 종합적인 내용들을 상기할 가치가 있습니다.
근본적인 요소들 중 가장 먼저 심화시켜야 할 것은 제 21차 총회에서 이미 특별한 방식으로 다루어졌던 청소년을 복음화시키는 사명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성찰은 다음에 있을 총회들에서 심화시키도록 맡겨졌습니다.
제 22차 총회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와 특별총회의 빛으로 회헌 개정하는 일을 했습니다. 수도회의 카리스마적이며 선교적인 정체성과 결론적으로 수도회의 정체성과 사명에 투신하는 살레시오 회원들의 충실성을 다룬 총회라 부를 수 있습니다.
제 22차 총회는 회헌의 새로운 본문을 만들었습니다. 총회 폐막 연설에서 비가노 신부님은 “역사 안에서 우리 삶의 복음적 선택과 우리의 고유한 사명이 가지고 있는 진리와 현실성의 척도를 재는데 도움이 되는 권위있는 문헌이 바로 이 회헌!”이라고 말했습니다.
개정된 회헌은 회원들의 충실성에 호소하면서 승인되었습니다. 돈 비가노는 첫 번째 회헌이 승인된 다음 날 살레시오 회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하신 돈 보스코의 말씀을 상기시켰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위대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의 규칙를 준수하도록 힘쓰고 충실히 규칙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규칙에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켜야 하며, 충분히 규칙을 이해하고 연구하며 실천하도록 힘써야합니다.” 후에 돈 보스코는 그의 영적 유언에서 “만일 여러분이 전에 저를 사랑했었다면, 우리 회헌을 잘 준수함으로써 앞으로도 저를 사랑하도록 하십시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다시 한 번 돈 보스코의 소유가 되기를 원하고 오늘의 현실 안에서 그분의 모습을 더 깊이 알고자 하는 제 26차 총회를 통해서 밝게 빛나게 될 것입니다. 양성, 살레시오 생활과 공동체 생활의 토대로서 회헌이 제시하는 삶의 방식을 몸에 익히는 것은 돈 보스코를 알고 그의 삶을 실현시키기 위한 길입니다. 마찬가지로 돈 보스코를 더 잘 알고자 하는 것은 보다 충만하게 살레시오 생활 규칙을 살도록 우리를 인도합니다.
제 23차 총회: 사명에 대해 다룬 총회
제 23차 총회는 정확히 말하자면 사명에 대한 총회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특별총회에서 말했던 청소년들과 서민들을 위한 사명에 대해서 다루었습니다. 23차 총회는 21차 총회에서 다루었던 몇 가지 요소들을 다시 취하면서 사명에 대해서 심화시키길 원했습니다.
청소년들을 신앙에로 교육하기라는 제목이 붙여진 총회문헌은 우리의 사명이 가지고 있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명은 현재 상황과 다양한 맥락을 고려하면서 보다 가난한 청소년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면서 청소년들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 복음을 피상적으로 아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명백한 복음 선포자의 활동을 통하여 신앙으로 이끄는 참된 교육, 사회적인 임무, 양심에 대한 교육과 사랑 안에서 성장하도록 열려진 교육, 살레시오 청소년 영성을 제안하는 것을 특성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돈 보스코의 카리스마와 원초적인 사명에로 되돌아가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총회 문헌의 결론에서 표현된 신앙고백에서는 “오늘 다시 돈 보스코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입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총회는 효과적인 복음 선포자의 조건으로서 공동체의 증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제 24차 총회: 평신도들과 함께 여정을 걸어간 회개의 총회
제 24차 총회는 살레시오 카리스마를 궁극적으로 심화시키면서 발도코 오라토리오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그의 사명에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인 돈 보스코의 역량이 드러나는 또 다른 요소를 상기시켰습니다. 총회는 사명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살레시오 정신까지도 평신도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서 우리 모두에게 오라토리오의 마음으로 돌아가라는 초대를 했습니다. 동일한 사명과 영성을 나누도록 불린 살레시오 회원과 평신도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 형성의 모형(paradigm)을 제시했습니다.
총회가 강조한 면들 중에는 함께 살아내야 할 교육학과 영성의 요소들이 특별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들은 양성의 질적 향상, “교육사목공동체(CEP, Comunitá Educativa Pastorale)의 영혼”인 봉헌된 사람들의 본질적인 역할, 카리스마를 보증하고 증거하는 살레시오 공동체라 할 수 있습니다. 총회는 또한 살레시오 계획 안에 평신도들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는 사업에 대해 특별한 언급을 했고, 그와 같은 사업에 카리스마를 보장하기 위해 목적과 선택을 분명히 하도록 요청받았습니다.
24차 총회의 주제가 평신도 동역자에 대한 영역을 다루고 있다고 해도 여러 곳에서 살레시오 가족, 그들의 참여와 공동체에 대한 투신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제 26차 총회에서도 살레시오 회원들은 그들의 현존이 가치 있고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 25차 총회: 살레시오 공동체에 대한 총회
제 25차 총회는 “살레시오 공동체의 오늘”이라는 살레시오 계획의 또 다른 본질적 요소를 심화시켰습니다. 총회는 돈 보스코가 청소년들의 구원을 위해 봉헌된 사람들의 공동체를 자기 주위로 모아들었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해서 교육과 복음화를 이루는 살레시오 공동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형제적인 삶, 복음적 증거, 젊은이들 사이에서의 고무하는 현존이라는 근본적인 요소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하느님께 우선권을 두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형제적 사랑의 복음적 가치를 증거하며 돈 보스코의 방식대로 젊은이들과 함께 하는 복음선포의 특징 간에는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노선에서 부르심의 삶을 제안하는 것을 강조하게 됩니다. 돈 보스코의 정신에 따라서 제 25차 총회가 공동체 계획의 실현을 위해서 분명하게 제시했던 본질적인 것은 바로 원장의 역할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따른 총회에 대한 개요를 살펴봄으로써 돈 보스코의 정신에 따라서 청소년들의 선교사이며 봉헌생활의 계획에 대한 근본적인 주제들의 계속적인 발전과 심화가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오늘날 살레시오 회원들이 실현해야 할 돈 보스코와 그의 카리스마와 사명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26차 총회는 이제까지 우리가 걸어온 여정에 대한 평가와 새로운 도약을 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2.6 관구들의 목소리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린 것처럼 제 26차 총회의 주제 선정을 위한 출발점은 특별히 합동평의회(Visita d'insieme)에서 논의 되었던 각 관구들의 상황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것들은 살레시오 공동체에 대해서 시작했던 일련의 과정들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드러냈습니다. 각 관구는 어떻게 25차 총회를 받아들였으며, 총회의 지침들을 적용하는데 어떤 어려움이 있었으며 어떤 임무들이 이행되었는가를 평하가도록 요청받았습니다. 공동체는 모든 쇄신 전략을 세우는데 있어서 중심입니다. 공동체의 영적이며 형제적인 생활이 계속해서 보장되고, 수적이며 질적인 면에서 균형잡힌 일관성을 유지하고 무엇보다도 원장의 활동을 통해서 그의 고무가 보장되며 식별과 계획을 세우는 능력이 증진되어야 합니다.
합동평의회는 각 관구들로부터 가장 민감하게 느끼고 있는 요구들과 전망들이 무엇인가를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모든 형제들의 사도적 열성을 다시 불붙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 표현되었습니다. 사실 공동체 구성원의 개인적인 노력 없이 공동체의 영성적이며 사목적인 삶의 쇄신도 불가능합니다. 아직도 어떤 형제들 중에는 활동주의에 빠져있거나 투신하지 못하고 분산된 삶의 형태를 살고 있는 것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영적인 피상성과 미지근한 사목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목적 사랑의 불꽃, 사도적 열성과 오라토리오의 마음이 살레시오 영성생활에서 모든 것에 앞선 원천이 되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명이 사업이나 활동이나 창의력과 동일시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명은 영혼들의 구원을 위한 열망의 표현입니다.
이어서 복음화가 절박하다는 인식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모든 관구군마다 자신들이 직면해야 할 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륙들의 시노드를 통해서 교회는 “아프리카 교회”, “아시아 교회”, “유럽 교회”, “오세아니아 교회”라는 시노드 후에 써진 사도적 권고 안에 새로운 도전들을 표현했습니다. 수도회도 이미 23차 총회에서 표현했던 복음 선포를 위한 선택을 쇄신해야할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비그리스도교 종교 특히 이슬람으로부터 오는 도전, 난무하는 신흥종교들의 현상, 상대주의와 평신도 주의(laicismo), 가난과 사회적 소외, 이민으로부터 제공되는 기회, “민족들에게 (ad gentes)" 복음을 전하는 사명의 한계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관구들은 교육 분야에서 보다 명백한 복음화에 대한 임무가 요구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매우 강하게 드러나는 또 다른 요구는 살레시오 봉헌생활의 성소에 대한 배려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24차 총회 후에 수도회의 체험은 우리에게 돈 보스코의 카리스마를 꽃피우기 위해서 봉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살레시오 봉헌생활 성소의 현실에 대한 각별한 주의가 성소 동반이 명백히 이루어지는 청소년 사목 안에 필요합니다. 게다가 정체성을 심화시키기 위한 엄청난 노력, 눈에 보이는 증거, 양성이 잘 이루어지도록 배려하고, 살레시오 수사 성소를 제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합동평의회에서 복음적 청빈에 대한 호소를 강조했습니다. 수도회 안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가난한 환경과 부요한 환경이 있는데 이들은 우리로 하여금 보다 단순하고 본질적이며 절제하는 삶을 살도록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합니다. 만일 눈에 보이는 청빈의 삶을 표현하는 길과 그 표현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의 증거는 믿을 수 없는 것이 되게 할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소비주의와 중산층으로의 상승이 개인주의를 만들어내고 있고 사도적 열성을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안락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생활”은 사목적인 의미와 사도적 봉헌에 제동을 가합니다. 청빈 역시 제도적으로 표현됨으로써 예언적 표징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결정을 하는데 있어서 투명성을 확보하고, 가지 재물을 나누고 필요한 사람들과 연대하는 것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수도회이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수도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끝으로 각 관구들은 청소년들이 처해있는 새로운 형태의 가난에 대해서 질문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가난에 대해서 숙고하고 청소년들과 함께 하기 위해 돌아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청소년들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분석하지 못했고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가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각 관구에서는 보다 가난한 청소년들에게 다가가고 그들이 있는 곳과 어떤 방식으로든 연계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수도회는 가장 힘들고 위험하며 우리의 현존을 요구하는 상황에 사명을 가지고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기 위하여 수도회가 보유한 가장 관대하고 유용한 노력들을 동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합동평의회는 모든 관구군이 처해있는 특수한 문제들, 예를 들면 구조조정, 양성의 토착화, 평신도 양성에 대한 현실과 같은 문제들을 개별화했습니다. 제 26차 총회의 주제는 이같이 보다 특별한 상황까지도 조명할 수 있는 비전과 전망을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제 26차 총회의 주제
제 26차 총회의 주제는 강한 도전과 강력한 자극 둘 다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영혼을 주고 나머지는 다 가져가라”는 주제는 특별히 사명의 핵심에서 봉헌된 존재로서 사명의 원천에로 형제들과 공동체를 데려갈 것이며 청소년들 사이에서 거룩하게 변화된 현존이 되려는 목적으로 하느님께 전적으로 내 맡긴 삶을 사는 존재 그 이상이 아닌 사명에 투신하는 마음을 갖도록 그들을 인도할 것입니다. 봉헌생활은 오늘날 고무하도록 부름받은 하느님께 대한 열정과 인간에 대한 열정이 완벽하게 살레시오적으로 변화된 “나에게 영혼을 달라”는 돈 보스코의 계획 안에서 발됩니다.
3.1 돈 보스코와 살레시오 회원의 생활 계획
“나에게 영혼을 주고 나머지는 가져가라”는 표현 안에서 돈 보스코의 아들들인 우리는 명석함과 용기 있게 현재의 문화적인 도전을 직면하기 위한 동기와 방법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에게 영혼을 달라”는 하느님이 가지고 계신 부성애의 의미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풍요로움, 모든 청소년들에게 주신 성령의 권능을 봉헌된 살레시오 회원의 생활의 중심에 놓게 합니다. 이것은 동시에 청소년들에게 그들이 이 세상 안에서 신앙으로 조명된 행복한 삶을 살고 영원히 구원된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일깨워주고 맛보게 하려는 불같은 열망을 살레시오 회원 안에 불러일으킵니다. 단 한 명의 청소년과 단 하나의 영혼을 만나게 될 때에도 살레시오 회원은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그의 의무를 다할 것입니다.
“나머지는 가져가라”는 말은 봉헌생활을 하는 살레시오 회원을 “당신은 나의 하느님, 내 좋은 것 당신밖에 없나이다”라는 제목의 서한에서 설명했던 봉헌생활의 여러 형태 중 “제멋대로 사는 그릇된 모범”으로부터 멀어지도록 동기를 부여합니다. 세속주의, 소비주의와 쾌락주의와 같은 요소가 지배하고 있는 문화에 위기의식을 부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봉헌생활은 역사적으로 볼 때 대안적 제안, 반문화적 운동, 정체 상태에 있는 신앙을 다시 일으키고 삶에 신앙을 쟁점화시키기 위해 탄생했습니다. 오늘날 신앙을 약화시키는 세상 앞에서 동기화나 신원의식이 약화되어 있습니다.
돈 보스코의 이 계획적인 모토는 우리의 영성을 종합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회헌 4조 참조). 이것은 모든 시대를 초월해서 모든 살레시오 회원들에게 유효합니다. 나이나 건강이 에너지로 충만해 있는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노인이나 병든 회원들에게 조차도 유효합니다. 나에게 영혼을 달라는 열정은 애덕의 불꽃이 회원들 각자의 마음 안에 타오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교육사목적인 일을 지칠줄 모르는 열정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구원의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인내와 고통의 시기를 사는 사람들 안에서도 드러납니다.
3.2 카리스마적 정체성: 살레시오 정신
저는 지금 예것이 되어버린 용어로 사라지지 않았고 현대에 와서 변화될 수도 있었던 120년 전에 쓰여진 한 문장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돈 보스코의 외적인 원천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거룩한 창립자의 카리스마에 대한 정체성을 가장 화려하게 보여주면서 다른 사람들이 돈 보스코의 사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1884년에 살레시오 회의 특성이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했을 때 로마 교구의 부교구장인 루치도 마리아 파로키 추기경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당신 수도회를 다른 수도회와 구분하고 여러분의 수도회를 특징짓는 것에 대해서 여러분에게 말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프란치스코회가 청빈으로, 도미니코 회가 신앙의 수호로 예수회가 문화를 통해서 일함으로써 구분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살레시오 회원들은 방법이나 목적에 있어서 다릅니다. 그렇다면 살레시오 수도회 안에서 특별한 점이란 무엇입니까? 그의 성격과 겉으로 드러나는 특징은 무엇입니까? 만일 제가 잘 이해하고 있고 제대로 개념을 잡았다면 그의 고유한 성격과 외적인 특성과 유명한 본질은 시대의 요구에 따라서 실천하는 애덕입니다. 우리는 애덕의 행위들을 믿읍시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Nos credidimus Charitati. Deus caritas est.)".
회헌 제 2장은 처음부터 “나에게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을 그대로 실천하십시오. 그러면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필립 4,9)라는 필립비인들의 공동체에게 하신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마치 돈 보스코 자신의 입술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시작하면서 살레시오 정신을 구성하는 요소에 대한 명백한 개요를 특별한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저는 왜 돈 보스코가 살레시오 정신의 정체성에 대한 도입에 이 성서 구절을 선택하게 되었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바오로 사도처럼 그리스도의 복음을 철저히 모방했고 그러므로 우리에게 권위적이면서도 필요불가결한 모델이 되는 살레시오 정신의 첫째가는 그리고 참된 원천으로서 돈 보스코에 대한 충실을 깊은 애정을 가지고 기억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봉헌생활의 재창립”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그 표현은 재창립을 통해서 근본적인 원천, 즉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원천이라는 것으로 봉헌생활을 인도할 필요성을 표현하고자 한다면 유효합니다: “아무도 이미 놓인 기초 외에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1고린 3,11). 게다가 이 과정은 모든 카리스마의 창립자에게로 봉헌생활을 다시 가져가자 한다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에게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을 그대로 실천하십시오.”(필립 4,9). 이외에 재창립을 시도하려는 어떤 형태의 해석도 잘못되었다고 단죄를 받게 될 것입니다.
살레시오 정신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주시는 특별한 부르심과 사명을 실행하는 우리 고유의 생각과 느낌의 양식, 그리고 생활과 활동 양식이다”(CGS, 86)고 특별총회는 정의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살레시오 정신은 우리 아버지의 성소, 그분의 삶과 그분이 했던 사업과 가르침이 집약되어 있는 “돈 보스코의 정신”입니다. 돈 보스코의 정신은 수도회와 살레시오 가족의 역사와 삶 안에서, 그리고 살레시오 회원들의 삶과 성덕 안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것입니다(CGS, 87 참조). 이어서 2l차, 22차 총회에서 살레시오 정신에 대한 정의가 보다 조직적인 방식으로 풍요롭게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회헌 제 2장은 살레시오 회원을 고무하는 근본적인 태도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살레시오 정신의 중심이며 종합인 사목적 사랑은 성부의 사도이신 그리스도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입니다. 사목적 사랑 안에서, 신앙의 전망 안에서 그리고 일상 안에서 희망에 대한 항구한 의무 안에서 성장의 비결을 가지고 있는 것이 하느님과의 일치입니다. 교회의 감각을 지니고 청소년들을 향한 우선적 사랑, 영적 부성애의 표현으로서의 자애, 낙관주의와 기쁨, 일과 절제, 창의성과 융통성, 이 같은 임무들의 종합으로서의 예방교육, 끝으로 살레시오 정신의 구체적인 모델로서 돈 보스코가 제시됩니다.
3.3 사도적 열성: 하느님의 영광과 영혼들의 구원을 위한 투신
하느님의 영광과 영혼들의 구원을 위한 투신은 돈 보스코가 가지고 계셨던 열정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과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인간을 위한 무한한 사랑과 당신의 영광을 이 같은 방식으로 드러내시면서 사랑으로 자기 자신을 전달하시고 모든 사람이 구원되기를 원하시는 하느님의 뜻에 자신의 뜻을 완전히 내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돈 보스코는 “영혼의 역사”의 한 부분에서 유일하게 밝히고 있는 자신의 활동 목적에 대한 비밀을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성무활동에 나 자신을 봉헌했을 때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과 영혼들의 유익을 위해서 내가 겪는 모든 수고로움을 봉헌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어느 날 청소년들이 하늘나라의 합당한 시민이 되고 이 땅의 착한 신자들을 되도록 하기 위해서 저를 이용하고자 합니다. 하느님, 제 생명의 마지막 숨까지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소서.”
돈 보스코 안에서 드러나는 성덕은 그의 사업으로부터 찬란히 빛납니다. 그러나 그 사업들은 돈 보스코가 믿었던 신앙 표현의 한 단면이었습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1고린 13,1)고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사업 자체가 그를 사도로 만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 수 있다”(마태 7,16.20 참조)는 말씀처럼 사도를 성인으로 만든 것은 애덕 사업으로부터 생생하게 흘러나온 신앙이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 안에서의 생활”과 “하느님과의 일치”를 심리적일뿐만 아니라 실제로 살도록 초대 받았습니다. 하느님과의 일치는 자신의 삶을 하느님 안에서 살게 하고 그분의 현존에 머물게 합니다. 하느님과의 일치는 우리 안에 신적인 생명을 나누어 갖게 합니다. 돈 보스코는 신망애 삼덕의 논리에 따라서 자신의 삶의 이유를 하느님의 뜻이 밝히 드러나는 계시가 되게 했습니다. 청소년들에게 매력적인 표징이 되는 신덕, 청소년들의 삶을 비춰주는 말씀이 되게 하는 망덕, 그들을 향한 사랑의 행위가 되게 하는 애덕 이것이 신망애 3덕의 논리입니다.
돈 보스코는 항상 효과적인 사랑의 사명에 충실했습니다. 거기에는 거짓 신비주의를 완전히 잘라내고 현실과 다리를 놓게 했습니다. 신앙은 그로하여금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충실히 머물게 했습니다. 그가 피로에 지치고 너무 힘들어 모든 것을 단념하려는 위험에 처했을 때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재촉합니다”[Caritas Christi urget nos (2고린 5,14)]라는 바오로 사도의 사랑의 길이 그로 하여금 모든 시련을 이겨내게 했습니다. 그의 애덕은 어려움 앞에서 단 한 번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1고린 9,22). 그는 교육 분야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냉담한 태도와 임무에 대해서 확고한 태도의 결여를 두려워했습니다.
돈 보스코 안에서 우리는 활동하는 영성 신학의 모범을 발견합니다. 그는 긴급을 요하는 일과 신적 사명에 대한 인식을 자극하는 일에 신속하게 대응했습니다. 그가 어려운 일을 선택한 것을 그만의 독특한 고행에 대한 해석의 결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처음부터 끝까지 그 안에서 이루어진 사도적인 활동이었습니다. 알퐁소 성인이 말하는 고행이 인간의 내면적인 요소들을 특별히 말하고 있다면 돈 보스코 안에서 고생은 일과 연결되어 의미를 갖게 됩니다. 고행은 하느님께서 그에게 행하라고 맡기신 일에 온 마음으로 투신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돈 보스코 안에서 사물과 어떻게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가를 발견하게 되고 동시에 그가 마음에 두고 있던 목적을 위해서 그것을 필요한 곳에 이용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특별한 격식이나 강박적인 집착을 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학적이며 명상적인 것보다 실천적이고 사목적이며 영적인 독서를 더 좋아했습니다. 그분 안에서 사도적 열성은 그분에 대한 독특한 색조를 부여합니다. 구원은 자애, 온유와 기쁨과 겸손함, 성체성사와 마리아께 대한 신심과 하느님과 인간을 향한 사랑의 방법으로 획득해야 할 것이었습니다.
3.4 나에게 영혼을 달라
돈 보스코에게 있어서 그의 모토의 첫 번째 부분인 �나에게 영혼을 달라�는 복음화에 대한 긴박한 사명을 인식하고 살레시오 봉헌생활에 성소자들을 불러 모을 필요성 안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한 열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3.4.1 긴박하게 요구되는 복음화
복음화를 동기화시키고 고무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청소년들의 구원을 긴급한 과제로 느끼셨던 돈 보스코의 모범을 우리도 따릅시다. 그분은 �젊은이들의 구원을 위한 일이 아니면 한 걸음도 내딛지 않았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회헌 21).
인간화와 인간 발전의 원천인 복음을 알고 있는 모든 백성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기억하도록 합시다.
수도회가 선택하는 우선권은 교육의 분야에서 복음화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 복음화의 직접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그곳에서 우리는 교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우리 살레시오 회원들에게 교육이 빠진 교리교육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복음화는 서로 다른 지역들이 가진 차이에 따라서 새로운 과제들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관구군은 복음화 과정에서 자신들이 직면한 새로운 역역을 연구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복음화는 선교가 요청되는 곳으로 이동하기 위한 민첩한 이동성도 요청됩니다.
3.4.2 성소자를 불러 모을 필요성
여기서도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돈 보스코에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도움이 필요한 젊은이들 앞에서 돈 보스코는 혼자서 이 모든 일을 한 것은 아닙니다. 이 때문에 그는 능력 있는 많은 사람들과 도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호소를 했습니다. 공동체와 그의 카리스마를 강화시키기 위해서 봉헌된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살레시오 사제와 살레시오 수사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도 24차 총회 이후에 평신도들을 우리 사업에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봉헌된 사람들이 강하게 자신의 정체성에 동화되어 핵심을 이루지 않는다면 카리스마는 더 이상 실현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우리는 수도회가 유능한 평신도 수도자를 잃어버린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수도회 안에서 특별한 방식으로 살레시오 수사 성소를 사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청소년들에게 돈 보스코의 카리스마적 경험을 제안하고, 체험케 하며 영원히 그분과 함께 살도록 그들을 부르는 수도회 입회를 권유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성직자와 평신도의 두 형태를 살아가는 살레시오 봉헌생활에 대한 체계적인 성소 동반을 위한 제안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3.5 나머지는 가져가라
돈 보스코에게 있어서 �나머지는 가져가라�는 모토의 두 번째 부분은 하느님과 청소년들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하는 것으로부터 초연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새로운 형태의 가난에 민감해지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새로운 영역에 우리를 연결시키면서 복음적 가난과 �보다 가난하고 버림받고 위험에 처해있는�청소년들을 만나러 가는 선택 안에서 구체화됩니다.
3.5.1 복음적 가난
미래의 봉헌생활은 순명하시고 가난하시며 정결하신 그리스도를 근본적으로 따르는 삶을 철저히 살아가는 가운데 실현됩니다. 세 가지의 모든 복음적 권고가 우리에게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전적인 봉헌과 청소년들에 대한 희생에 대해서 말하게 한다면 가난은 돈 보스코가 하셨던 것처럼 우리의 마지막 숨까지도 지체 없이 봉헌하도록 우리를 인도할 것입니다. 복음적 권고를 실천하는 것은 잘 보이지 않는 내적인 자원들을 우리 안에서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사명에 온전히 투신하지 못하고 적당히 파트타임의 인생을 살며, 중산층의 안락한 생활을 유지하며 살아가려는 유혹에 우리의 의지를 양보하고, 나이가 들면서 성소의 삶까지도 은퇴시켜 버리거나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빈곤의 드라마에 무관심해지면서 복음적 권고를 위해서 우리 인격의 전적인 봉헌을 고백하고 우리가 가진 에너지와 능력을 우리 자신을 위해서 남겨두면서 사는 것이 더 이상 이 같은 현상에 반대받는 표징이 되거나 모순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게 합니다.
우리 살레시오 회원들은 지칠 줄 모르는 일과 절제로 가난을 증거합니다. 우리는 단순하고 본질적이며 금욕적인 삶, 나눔과 연대성, 우리가 보유한 자원들을 책임 있게 사용함으로써 가난을 증거합니다. 우리의 가난은 우리에게 교육자가 되기보다는 교육사업가가 되거나 교육을 통해서 사도가 되기보다는 교육사업의 관리자가 될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사업에 대한 제도적인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려고 선택한 사람은 그분의 생활 방식을 행하기 위해서, 단순한 마음과 가난한 마음을 가진 참된 행복을 살기 위해서, 가난한 사람들과 항상 친밀하게 지내기 위해서 예수님을 선택한 것입니다.
3.5.2 새로운 영역들들
가장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들을 찾기 위해 토리노의 거리를 뛰어다니던 돈 보스코의 이미지는 상상 속의 단편이 아닙니다. 돈 보스코의 모습은 우리가 취해야할 명령적 행위이고 자연스럽게 그와 동화되어 가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예방교육에서 말하는 고행은 가장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들에게 다가가고 그들이 있는 곳에 우리를 연결시킬 것을 요청합니다. 그들의 상황을 보지 못하도록 우리를 눈멀게 하는 것 혹은 그와 같은 상황을 본다고 해도 돈 보스코의 정신과 마음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개인적으로나 제도적으로 규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준비태세는 사명을 수행하는데 가장 험난하고 위험하고 어려우며 요구 조건이 많은 상황에 갈 준비가 되어 있도록 요청합니다.
새로운 형태의 가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오늘날 모든 청소년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을 의미하지만, 무엇보다도 물질적 가난이 정서적이며 영적이고 문화적인 형태와 복합적으로 결합된 사람들의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살레시오 사명이 실현되고 있는 다양한 지역에 대해서 그리고 새로운 영역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은 이민, 사회적인 소외, 범죄, 성적 착취, 미성년자에 대한 노동 착취, 종교적인 의미의 상실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장 가난한 청소년들과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영역에 대한 선택은 우리를 사목적 사랑으로 이끌어 가는 하느님 사랑 안에 더욱 심오한 동기와 원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형태의 이데올로기나 사회학적 사조의 경향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게다가 그와 같은 선택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공생활 시작에 가파르나움의 회당에서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나를 보내셨다�루가 4,18)고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복음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선택이 순전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인간적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축소되어서는 안 되고, 예수님이 가지고 계신 보물과 그분의 복음을 그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3.6 주제를 구체화시키기 위한 조건들
총회의 주제를 구체적으로 다루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확실한 단계들을 정해 놓기, 정신의 회개, 구조의 변화.
취해야 할 과정들
돈 보스코로부터 다시 출발하면서 우리의 카리스마적 정체성을 강화시키고 �나에게 영혼을 주고 나머지는 가져가라�는 열정으로 모든 형제들의 마음이 불타오르게 하는 제 26차 총회의 목적을 인식하면서 그와 같은 총회 목적이 몇 가지 과정을 통해서 실현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카리스마적 정체성은 우리에게 돈 보스코에 대한 성숙한 인식과 그의 사업에 대한 동기 부여, 그의 위대한 영적이며 사도적인 선택에 대한 인식과 오늘 우리가 돈 보스코를 인식하는 수단인 회헌에 대한 인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도적 열성은 우리의 모든 현존에 명백한 복음화가 다시 깨어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살레시오 봉헌생활에 대한 성소적 제안을 할 줄 아는 용기, 가난하고 단순하며 연대적인 생활 형태를 취하는 쇄신, 사업의 운영보다는 우리 사명의 교육적이며 복음화에 대한 우선권에 우리의 노력을 집중시기고, 고유한 맥락 안에서 새로운 가난과 새로운 영역을 파악하고, 카리스마적 관점에서 우리 사업과 활동을 재평가하도록 허용하는 사업 분야들에 대한 연구를 요구합니다.
이 과정의 첫 번째 단계는 공동체의 참여와 관구 총회를 통해서 실현될 것입니다. 관구 총회에서는 위에서 제시한 측면에 대한 언급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개별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또 그와 같은 시선에서 공동체의 상황에 대한 진단과 드러나는 여러 가지 도전들을 확인하고 공동체의 쇄신을 위해서 행해야할 구체적인 제안에 대한 개별적인 파악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제 26차 총회를 기념하는 일과 총회가 수도회 전체에 제공하고 싶은 실천 지침들이 될 것입니다.
회개해야할 정신
모든 형제가 열정과 성소에 대한 충실성을 다시 일깨워 열성적인 사도로서의 삶을 살고 모두가 책임을 나눠가지면서 살레시오 카리스마적 정체성에 대한 개인적 회개의 과정을 실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과정은 무엇보다도 우리 정신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형제들 안에 카리스마적인 정체성 확인과 자부심을 증진시키면서 영적이고 심리적인 관점에서 동기화의 강한 충동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는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살레시오 봉헌생활이 가지고 있는 본성을 강화시키고 역동적으로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회원이 봉헌생활이 �무엇이든지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델�로부터 멀어지면서, 단순하고 가난한 삶의 유형을 확신을 가지고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 모두가 사도적 봉헌으로 청소년들을 향한 복음전파자로서의 사명에 투신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쇄신과 더 좋은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마음을 열고 공동체 계획을 지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변화시켜야 할 구조들
구조적 변화 과정은 �사명이 이니셔티브와 사목 활동과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일관성 있게 진행되어야 합니다.
사업의 대안적 모델 제시, 사명 수행에서 살레시오 회원들의 역할에 대한 수정, 복잡한 사업체 운영과 같은 공동체 생활에 대한 구조적 변화와 사명 실천에 대한 효과적인 활동을 고무시켜야 합니다.
이 같은 변화의 실현은 우리의 확신들을 믿을 수 있는 것이 되게 하는 용기 있는 수도회 통치의 결정으로부터 인도되어야 합니다.
4. 제 26차 총회를 위한 기도
공통의 기도를 바치고 성령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총회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하여 관구와 준관구 그리고 대리구와 공동체와 형제회원들에게 호소하면서 이 편지를 끝내고자 합니다.
총회는 관구장과 총회 대의원의 회합으로 축소되어 이해될 수 없습니다. 총회는 그 소집부터 지침의 승인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여정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총회는 모든 공동체와 형제 회원 개개인을 참여시키는 것입니다.
총회는 총회를 시작하는 과정들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 과정은 6년의 회기 안에 완성될 수 없지만, 한 총회와 다른 총회 사이의 기간을 뛰어 넘는 역동적 변화를 일으킵니다.
총회는 정신의 변화를 촉진하는 계속 양성(ongoing formation)이 이루어지는 인상적인 시기입니다. 총회는 우리에게 회헌 안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부르심이 무엇인가를 바라보도록 우리를 인도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현실을 진단하면서 우리에게 용기를 잃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다 충만한 응답에 가까이 다가가도록 우리를 인도 하는 길을 함께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총회는 하느님의 계획과 청소년들이 기대하는 바에 더 잘 응답하기 위하여 오늘이라는 역사 안에서 수도회에 대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식별하도록 우리를 인도합니다.
성령께서 성 요한 보스코를 간택하시기 위하여 모성적 중재로 그분께 협력하신 마리아여, 우리는 제 26차 총회가 살레시오회의 성령강림이 되도록 당신께 맡깁니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청소년들 가운데서 일하는 활동분야를 주셨고 계속하여 그를 인도하시고 특별히 우리 수도회의 창립 시에 그렇게 하셨습니다�회헌 8조). 그분의 도움으로 우리는 �당신 성자의 끝없는 사랑의 증거자�회헌 8)로서 충실히 청소년들 가운데서 사명을 계속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의 아버지이신 돈 보스코께 청하는 기도문을 여러분들에게 제시하고자 합니다. 공동체와 형제들 개개인은 주님께서 �나에게 영혼을 주고 나머지는 가져가라�는 열성을 우리 마음 안에 다시 일깨워주시고 제 26차 총회를 준비하고 총회를 치르는데 우리를 도와주시라고 이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이번 총회를 통하여 우리 수도회와 청소년들을 위한 풍부한 열매를 얻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제 26차 총회를 준비하며
돈 보스코께 드리는 기도
돈 보스코께서는 성령의 간택을 받으시고
마리아의 모성적 중재로
청소년들의 구원사업에 헌신하셨나이다.
주님께서는 저희에게 돈 보스코를 아버지요 스승으로 주셨고,
돈 보스코께서는 저희에게 Da mihi animas cetera tolle의
정신으로 살아가라는 살레시안의 소명을 전해주셨나이다.
참으로 돈 보스코께서는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
우리만의 독창적인 삶과 활동의 정신을 마련해 주셨으니
이는 저희 삶의 중심이며 사목적 사랑의 근본이 되었나이다.
간구하오니, 청소년들에게 믿음직한 하느님 사랑의 징표가 되도록
저희의 마음이 사도적 열성으로 가득 찬
복음 선포자의 불꽃으로 타오르게 하소서.
저희가 평온하고 기쁜 마음으로
일상의 모든 요구들을 기쁘게 수용하게 하시고
하느님의 영광과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사도적인 삶의 희생정신을 실천하게 하소서.
비오니 이번 총회가 저희의 고유한 정체성을 쇄신시키고
저희 안에 사도적 열성을 불러일으키는 총회가 될 수 있도록
저희를 도와주소서. 아멘.
파스칼 챠베스 총장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