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400|ko|390 “돈 보스코가 지녔던 용기를 가지고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도전에 직면합시다”

35

Atti 390

보스코 지녔던 용기를 가지고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도전에 직면합시다”





친애하는 형제 여러분,

저는 발도코에서 기념했던 도움이신 마리아 대축일을 지낸 여러분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저는 축일을 위해 참석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성체성사를 공동 집전하였고 문화적인 행사들에 참여하면서 이제까지 일해왔던 대성당 보수공사 낙성식을 하였습니다. 지금, 새롭게 보수한 대성당은 온통 찬란한 빛과 화려한 색상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우리 어느 누구도 오랜 시간 동안 먼지 속에 감춰져 있던 구조와 장식 속에 그토록 아름다움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보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토리노의 기념식에서 이미 말씀드렸듯이, 저는 편지를 빌어 경제적인 기여로 마리아께 사랑을 표현하고자 했던 공동체들, 많은 헌신적인 사람들과 은인들과 더불어 모든 관구, 살레시오 가족, 여러 사회 기관들에 감사 드리고 싶습니다.

저의 마지막 회람서한이 나간 저는 많은 일을 해야 했습니다. 특히 우리는 몇몇 지역에서 합동평의회(Visite dinsieme) 하였습니다. 우리는 최근에 세계적으로 영향을 사건을 안에서 겪었습니다. 하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 서거와 장례식이었고 다른 하나는 추기경단 회의, 교황선출, 베네딕도 16 교황의 착좌라 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서거 하루 전에 제가 썼던 증언에서 저는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인물 분이시고, 역대 교황님들 중에 가장 위대한 분으로 이미 대교황이라는 호칭이 붙여진 보이티와 교황에 대한 가지 특징들을 감사와 경탄의 마음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분의 죽음은 기대했던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을 장례식에 참여하도록 했습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세상 각지에서 그리고 서로 다른 종교 지도자들과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놀람과 감사로 상상을 초월하는 존경을 표현하면서 베드로 광장과 인근의 모든 길은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장례식에 참여하기 위해 세상에서 모여든 사람만도 백만에 달했고 그들은 매스컴을 통해 여러 가지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통하여 당신이 인간, 신앙인 그리고 사목자로서 위대한 분이셨다는 것을 알리게 되었다는 것은 역설적입니다. 그분은 당신의 생애 마지막 순간에 베드로 광장은 젊은이들로 가득찼다고 그분에게 귀띔했을 교황님의 개인 비서의 말에 따르면 우리 모두에게 유효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젊은이들에게 하셨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만나기 위해 세상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오늘 여러분은 저를 만나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육체적인 나약함과 질병이 교황님으로부터 연설할 있는 힘을 빼앗아 갔지만 주님께서 그분에게 맡기신 사명을 완수하려는 교황성하의 강철 같은 의지를 굽힐 수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육체적인 병약함이 그분을 아름답고, 매력적이고, 감동적이게 했습니다. 순간에 머릿속에는 사도 바오로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들어 있는 지상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우리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에 들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세워주시는 집입니다»; « 장막에 머물러 있는 동안 우리는 무거운 짐에 짓눌려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장막을 벗어 버리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하늘의 집을 덧입음으로써 죽음이 생명에게 삼켜져 없어지게 되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2고린 5,1.4).

이제 그분은 하느님 곁에서 충만한 삶을 살고 계십니다. 그분은 단순히 우리에게 추억거리에 해당하는 기억을 남기신 것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예수님, 교회 그리고 인간에 대한 사랑의 증거, 영적인 증언을 남기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6개년 고무와 통치 계획을 만들었을 특별히 우리와 젊은이들에게 사랑하는 살레시안 여러분, 성인이 되십시오!라는 메시지를 남겨주셨습니다.

교황님이 공석 중에 계실 교회는 자신의 기도를 강화시켰습니다. 보통 그랬듯이 콘클라베는 많은 기대들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교황 선출에 거는 기대는 엄청나게 현존하는 미디어와 신문, 잡지, TV 프로그램, 인터넷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가장 것이 되었습니다. 미디어가 교황의 계획과 우선적인 관심사들을 제시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기도와 식별의 분위기 안에서 콘클라베에 참석한 추기경들은 주님께서 미리 선택하신 요셉 라찡거 추기경을 교황으로 선출하였고, 그는 베네딕도 16라는 이름을 선택하였습니다.

심오한 인간적 양성과 수사학적 정수를 선호하는 그분의 번째 인터뷰들 특히 교황직을 시작하면서 하신 강론 말씀 신학적이며 문화적으로 폭넓게 준비되었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이며 신앙인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혀준 탁월한 정신을 소유한 교황님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황님은 통치 계획을 소개할 필요 느끼지 않으셨고 주님 자신이 역사적인 시기에 교회를 인도하시도록1 주님의 뜻과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께서 인도하시도록 내어 맡기는 그의 근본적 선택에 아무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교황님은 베드로의 직무를 특징적으로 드러내는 빨리움2, 어부의 반지3 의미를 설명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도전들의 개요를 명료하게 제시하셨습니다: 도전은 사람들을 사막으로부터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사막에는 빈곤의 사막, 굶주림과 목마름의 사막, 버려짐과 고독, 파괴된 사랑의 사막이 있고, 인간의 존엄성이 어디로 가는지 의식하지 못하는 영혼의 공허함이라는, 하느님을 모르는 어두움의 사막이 있습니다. 도전은 이런 사막에서 사람들을 끌어내어 생명의 장소와 하느님의 아들과 이루는 우정으로 이끄는 것이며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생명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에게로 이끄는 것입니다. 복음이라는 그물로 생명의 땅과 하느님의 빛을 향해 나아가는데 있어서 모든 형태의 소외를 드러내주는 소금에 찌들어 바닷물에 잠겨있는 인간을 건져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목자와 어부의 직무입니다. 만일 이것이 교황님께서 교회 안에서 하셔야 직무라는 부르심을 느끼셨다면, 26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다음과 같이 하셨던 말씀을 모든 사람들에게 상기시킨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문을 여십시오. 아니 활짝 열어 젖히십시오!.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자유롭고 아름답고 위대한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마음에 받아 모시는 사람은 아무 것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로 아무 것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교황 베네딕도 16세를 마음으로부터 환영합시다.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맞이합시다. 보스코가 했던 것처럼 그분의 직무를 기도로써 동반합시다. 교황님께 우리의 충성과 협력을 약속합시다.


이제부터 저는 편지의 주제인 보스코가 가졌던 용기로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경계를 대면합시다 돌아가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제까지 편지를 통해서 해왔던 성찰과 자극들이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회람서한의 주제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이에 대한 번째 대답으로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사회 커뮤니케이션이 살레시오 사명을 실현하는데 특별한 관심을 갖게 하는 분야 하나(회헌 6 참조)라는 사실입니다. 이와 같은 중요성 때문에 마지막 총회는 분야를 위해서만 일하는 총평의원을 선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번째 동기는 보다 우연적인 것으로서 우리 수도회에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참된 증거로 드러난 좋은 책들의 확산4이라는 보스코가 쓰신 서한(1885 3 19) 1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지막 이유는 보다 계획적인 것으로써 40년이 조금 지났지만 바오로 6세께서 발표하셨던 2 바티칸 공의회 사회매체에 관한 교령, 놀라운 기술(Inter Mirifica) 기억하기 위해 2005 1 24일에 출판된 요한 바오로 2세의 급속한 발전(Il Rapido Sviluppo)이라는 문헌 때문입니다. 같은 다양한 요인들이 저로 하여금 주제로 편지를 쓰게 했습니다.

이전에 제가 썼었던 편지들 가운데서 실마리를 찾으면서 다음과 같이 가지를 첨부하고자 합니다. 만일 성덕이 증거되지 않고, 보여지지 않으며 읽혀질 없는 것이라면 별로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지도 않고 제안되지도 않는 살레시오 봉헌생활은 아마 무용지물일 것입니다. 체험이 알려지지 않고 공론화되지 않는다면 보스코가 체험한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것입니다. 끝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이 증거로 표현된다면 참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복음 선포는 살아내야 성소와 수행해야 사명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레시오 회원들에게 보낸 좋은 인쇄물에 대한 보스코의 편지를 기억하면서 우리의 아버지께서 우리 사명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며 우리 수도회의 주요한 목적 중의 하나이자 하느님의 섭리가 우리의 직무를 열매 맺도록 하는 신적 수단이며 가장 좋은 수단들 하나인 가장 주요한 사업들 하나 우리에게 맡겨주셨다는 심금을 울리는 호소를 상기시키고 마음 속에 울려퍼지도록 하고 싶습니다.

보스코는 그의 사목정신으로 고무된 진솔한 유언장 안에서 살레시오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거부할 없는 임무에 대해 우리의 인식을 불러일으키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분께서 이용하신 말씀은 의심에 빠지거나 축소된 해석을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부분, 중요한 목표 중요한 사업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그가 살았던 시기에 쇄신의 과정 안에서 사회 커뮤니케이션을 도입하려는 명확한 이해와 혁신의 과정 안에 있으려는 천재적인 선택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같은 방식 안에서 보스코는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도 새로운 것에 압도될 위험에 처해있는 젊은이들과 평범한 서민 계층에게 문화적인 양식을 있었습니다. 문화적인 일을 한다는 , 지식과 양성에 유효한 도구를 제공하는 , 심신이 휴식을 취할 기회를 갖는 것은 효과적인 교육과 복음화를 실현시키고 좋은 책을 보급하는 가운데 젊은이 자신이 사도로서 참여하게 하기 위한 방식이 됩니다.



1. 역사적인 접근


충실성의 임무


보스코는 그가 썼던 책의 정신과 항상 그를 투신하도록 이끌었던 청소년들의 구원을 위한 열정과 조화를 이루면서, 120 전에 우리에게 단순히 좋은 책들을 보급하는 일만을 맡긴 것이 아니라, 살레시오 사명을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 시대와 모든 맥락 안에서 우리가 모든 부분들을 해석할 알고 조정하고 완성할 알아야 하는 충실함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젊은이들과 서민들 사이에서 그리스도교적 영감을 받은 문화의 확산 위해 진지한 임무를 부여받지 않으면 교육할 없고 하느님 나라의 실현에 협력할 수도 없습니다. 경건치 못한 행동이나 이설에 의해 공격을 받는 사람들 사이에 하느님의 생각 씨앗으로 뿌리고 부풀게 하여 확장시키기 위한 효과적인 방식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인쇄된 말씀에 대한 그의 탁월한 재능을 통한 투신은 출판물들의 질서가 갖춰진 체계 만드는 전략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보스코에게 어느 누구도 삶의 어떤 측면도 소홀히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건설적인 독서를 통해서 () 이르도록 이끌고, 신심 깊은 정신을 주입시키며, 실수에 대해 인내하게 하고, 평온한 시간을 갖는 가운데 동반하며, 젊은이들로 하여금 다른 젊은이들의 구원자가 되게 합니다.

이것은 수도회가 우리의 아버지께 충실하도록 합니다. 또한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항상 살레시오 교육사목 활동을 지도했던, 1885년의 회람서한에 나타난 정신으로 창조적인 능력과 효과적인 사업을 실현하도록 부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또한 특별총회는 분야는 살레시오 회원들의 활동을 위한 대헌장(특별총회 450)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태도는 어떤 순간에 방어적이라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 수단들이 가져올 있는 피해로부터 보호할 것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발전시킬 임무보다는 같은 수단들과 싸워왔습니다. 보스코 사업을 지속시킬 있다고 생각했던 출판사들을 세우는 선견지명과 용기를 가지셨던 역대 총장 신부님들은 같은 사업을 반대하지 않으셨습니다. 리날디 신부님은 SEI 세우셨고 리칼도네 신부님은 LDC 세우셨다는 것만 생각해도 출판에 대한 총장 신부님들의 태도가 어떠했는지 있습니다.

그들의 걱정은 출판사를 시작하는 것에만 있지 않았고 저자들을 준비하고, 기술자들을 양성하였으며, 우리의 인쇄소와 서점을 완벽하게 준비하고 수를 늘리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이태리뿐만 아니라 우리 수도회 전체에서 일어났습니다.


우리의 역사에 대한 평가


공의회의 봄과 1963 12 4일에 승인된 교령 놀라운 기술(Inter Mirifica) 자극은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들에 대한 1965년에 개최된 19 총회에서 우리 사도직 안에서 그것의 중요성, 이용과 기능에 대한 성찰을 하도록 촉구했습니다. 분야에서 나오는 생산물들을 평가하고, 보다 효과적인 청소년 사목과 서민들을 위한 사목을 실현시키고, 교육 기관들과 연합회들과 사회 커뮤니케이션 법인들과 협력하기 위해서 (CG 19, 171 참조) 살레시오 회원들과 평신도 전문가들을 준비시켜야 필요성을 보았습니다. 지금부터 40 전인 1965 총회에서 같은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이용하는데 있어서 수반되는 임무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무엇보다도 자격을 갖춘 형제회원이 부족하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공의회의 커뮤니케이션 교령의 결과로써 사회 커뮤니케이션 도구들의 엄청난 중요성과 교육적이며 사목적인 수준에서 그것들을 활용하기 위해서 준비된 사람이 필요하다는 가지의 인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끔 힘에 겨운 일을 하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거기로부터 출발해서 많은 것을 이루었습니다.

미디어의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긍정적인 비전을 소개하는 친교와 발전(Communio et progressio)이라는 교회의 새로운 입장을 제시하는 빛으로1971-72 열린 20 특별총회는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들에 대한 특별한 현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인간의 역사와 안에서 그들의 엄청난 영향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매스 미디어가 인간에게 행하는 엄청난 지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총회는 문화적이며 교육적인 차원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자유롭고 책임질 있는 선택을 있도록, 의식적인 사람이 되도록 그리고 조건화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있도록 그들을 도울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는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들에 대한 개별적인 달란트를 발전시킴과 동시에 젊은이들의 선택을 성숙시키기 위해 그들과 함께 하는 여정이라 있습니다(CGS n. 458참조).

해석과 이해에 대한 새로운 전망, 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주의 깊은 성찰, 1885년의 회람서한 안에 담겨 있는 보스코의 체험과 권고는 1984년의 22 총회에서 결정적으로 승인된 회헌 안에 현존하는 지침의 토대가 되고 있습니다. 회헌의 새로운 언급에 따르면 사회 커뮤니케이션은 서민적 환경 안에서 신앙의 교육자들이(회헌 6) 지니고 있는 우리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특권적인 길이 되었습니다. 회헌 43조는 21 총회에서 심화시킨 성찰을 다시 사용하면서 살레시오회가 사명으로서 행하고 있는 우선적인 사도직의 일환이며 중요한 활동분야로써 사회 커뮤니케이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978년의 21 총회 이미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가치(n. 148) 인식하고 강조한바 있습니다. 현대의 복음선교 (Evangelii Nuntiandi n. 45)라는 교회문헌의 성찰에서 영감을 받은 새로 개정된 회헌은 보스코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호소를 효과적이고 충실한 방식으로 확신하고 있고, 교육과 복음화에 이용되어 특별한 효과를 가지는 활동 분야로써 이것을 수도회에 다시 되돌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상 단순한 정보매체 의사소통 수단이나 도구 아닙니다. 이것은 또한 특별한 사도적 활동이나 사도적 활동의 독특한 분야로만 여겨질 것이 아니라 교육자이며 사목자일 뿐만 아니라 전달자이기도 우리의 임무를 완전히 실현하기 위해서 걸어가야 가르침의 길로 여겨져야 합니다5.

우리의 아버지 보스코가 예언적으로 미리 선언하고 실현시켰던 것을 다시 확신함으로써 수도회에 의해 실현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여정에 대해 긍정적인 실현과 관심을 쏟도록 엄청나게 기여했던 다음의 문헌을 잊어버릴 없습니다: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비가노 신부님과 베키 신부님이 쓰신 글입니다.

이미 루이지 리체리 총장 신부님은 살레시오 가족지 창간 주년을 기념하여 1977년에 살레시안들 사이에 교류되는 정보의 의미와 중요성에 관한 편지인 가족의 소식 쓰셨습니다. 편지에서 그는 정보 분야와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 언급되고 있는 모든 것에 투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상기시켰습니다. 살레시오 가족의 소식을 확산시키기 위한 관심은 소속감을 길러주고, 보스코의 자녀가 되는 기쁨을 느끼게 하며 긍정적인 이미지를 창출하고 돈보스코가 말씀하신 것처럼 은인들의 수를 증가시켜 준다는 것을 알게 하는데 쓰입니다. 그러나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비가노 신부님과 베키 신부님의 편지는 특별히 분야에 대한 성찰과 실현을 위한 추진력과 깊이 있고 유기적인 일치를 시켜주었습니다. 동시에 23 총회와 24 총회도 이와 관련해서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새로운 정신


1981년에 비가노 신부님이 쓰신 우리에게 도전하는 사회 커뮤니케이션6이라는 편지는 21 총회의 오랜 성찰의 의미를 해석하였고 사회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살레시오 회원의 활동을 강력하게 촉구했습니다. 비가노 신부님은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생각을 바꾸도록 살레시안들을 초대하십니다. 우리는 새로운 현실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서는 이것을 평가할 없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우리를 방어할 요량으로 이것을 숙고할 없습니다. 사회 커뮤니케이션이 무엇인지를 알고 특별히 그것의 가치를 평가할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분야에 대해서 더욱더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회 커뮤니케이션을 대중에 대한 교육적 현존으로서, 정신을 만들어내는 문화의 창조자로서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교육과 복음화 사명은 필연적으로 문화적인 영역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상과 가치들을 확산시키도록 하는 의미 있는 현존을 제공할 있기 위해서 우리는 현재 역동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문화적인 변화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1990 23 총회 살레시오 공동체들이 그들의 사명을 수행하고 있는 사회적이며 문화적인 새로운 조건들에 대해서 명백한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편리한 교통수단과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거리가 없어지고 있으며, 문화적인 유행과 삶의 양식이 확산되어 정착되고 있는 세상에 들어간 우리는 다양한 맥락을 직면할 아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문제를 파악할 알아야 하고 그것들을 청소년의 상황과 연결시킬 알아야 합니다(n.17). 사회 커뮤니케이션이 제안하는 언어와 삶의 모델은 특히 젊은이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비록 사회 커뮤니케이션 이용이 애매모호하다고 해도 그와 같은 장비를 자연스럽게 이용하고 있습니다(n. 63).

우리는 성장과 신앙의 여정 안에서 청소년들을 동반하고, 그들과 함께 조화롭게 들어가기 위해서 커뮤니케이션의 새롭고도 효과적인 양식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보스코처럼 신앙을 퍼뜨리고 유지하기 위하여 독창적인 사도적 임무(회헌 43; CG 23, 256) 투신할 있어야 합니다. 같은 상황과 요구로부터 출발하여 총회는 청소년들을 신앙에로 교육하기 위한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가치를 평가할 새로운 임무가 필요하다는 것을 명백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다양한 차원의 개입이 필요합니다. , 지역적인 차원에서 공동체 측이 사회 커뮤니케이션을 이용할 있는 능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관구 차원에서는 살레시안들의 양성과 현재의 요구에 응답할 있는 계획을 시작하기 위한 사회 커뮤니케이션 담당자가 필요합니다.


문화적인 회개


1996년에 개최된 24 총회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와 주장은 살레시오 회원들과 평신도들 사이에 카리스마적 나눔에 대한 새로운 전망과 명백히 관련되어 있습니다. 보스코의 정신과 사명에 평신도들의 참여는 관계를 맺는 능력, 청소년들 가운데서의 능동적 현존,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 간과할 없는 문화적이며 영적인 태도들을 그들 안에 양성시키기 위해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특별한 임무를 요구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기능적인 성찰만을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사회적이며 문화적인 변화와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혁명과 그것들의 영향을 깊이 인식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효과적인 이용을 위해서 창의적인 일들이 양성과 조직 그리고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수단들의 사용에 대한 요구들 전체를 연결하는 다양한 수준에서 제시되고 있습니다. 총회를 통해서 선출된 평의원의 동반을 받고 있는 모든 관구는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계획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특별한 방식으로 요청받고 있습니다. 총평의원과 더불어 총장 신부 자신도 살레시오 사명의 우선적인 사도직 분야 하나로 의미 있는 활동영역이 되는(회헌 43)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활용, 증진, 그리고 조정의 실제적인 계획7 연구하도록 초대받고 있습니다.

1999 12 8일의 회람서한(살레시오 사명 안에서의 커뮤니케이션8)에서 후안 베키 총장 신부님은 진정한 문화적인 회개를 하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사회 커뮤니케이션은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살레시오 현존에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명과 살레시오 영성의 전형적인 가치에 영향을 주는 배경을 전달하고 포함할 있는 능력(p.16)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면서 새로운 관점들을 수용할 알아야 합니다. 현대 커뮤니케이션기술에 의해서 제공된 가능성은 우리에게 그들을 수용하도록 하고 세상에 즉각적인 정보를 제공할 있도록 하는 것에 대한 한계를 인정하도록 합니다.

베키 신부님은 새로운 관점들이 평신도들의 협력과 지역사회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사회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우리의 임무를 풍요롭게 있다는 것을 고려하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평신도와 이루는 협력은 사실 그들이 참된 상호 관계와 협력의 열매를 효과적으로 맺도록 전망과 경험의 통합을 자극합니다. 또한 지역사회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수도 공동체와 협조자들 밖에서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청소년들과 소외된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이면서 어떻게 지역사회 안에서 살레시오 현존을 보다 효과적인 것이 되게 것인가를 질문하도록 우리를 자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교육사목 공동체가 다른 사람들을 참여케 하고 새로운 감수성이 빛을 발하게 있는 의미 있는 현존이 있는가를 우리에게 질문케 합니다.


살레시오 회원들의 긴박한 양성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과 의미에 대한 점진적인 이해는 살레시오 회원들로부터 적합한 양성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게 했습니다.

21 총회는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 명백한 확신을 상세하게 살레시오 회원들의 양성에 대한 상황을 평가했습니다. 회원 개인들 사이에 전문가 정신과 개척정신이 결핍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을 적절하게 복음화시킴에 있어서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언어를 통해서 내용과 메시지를 만들어 아는 회원이나 살레시안 팀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특히 계획을 세우고 조사 연구를 하며 시범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고 이들을 엄밀한 과학적 기초 위에서 발전시킬 만한 전문가 팀이 충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전무한 상태입니다(CG 21, 151).

비가노 신부님도 회람서한에서 형제들에게 최소한의 전문성을 주기 위해서 양성, 공부, 연구와 유기적인 계획의 필요성에 대해서 강조하셨습니다. 수도회는 양성의 특수한 분야로서 UPS 사회 커뮤니케이션 학부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어려운 선택을 했습니다. 중앙과 관구 차원에서 고무의 구조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창의성이 날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새로운 장비들과 채널들이 갖춰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의 구체적인 생활과 활동영역 안에서 새로운 아레오파고9 건설할 있는 능력은 없는 듯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문화 안으로 들어가서 문화를 직면하고, 커뮤니케이션의 언어와 스타일 안에서 우리가 생각하고 일하는 것을 통합시키는데 성공하고, 커뮤니케이션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 언어, 접근 방법, 태도 등에 대한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정신을 성숙시키도록 도울 있는 효과적인 방식을 찾아내야 합니다.

이미 비가노 신부님의 편지에서처럼 베키 신부님의 편지에서도 적합한 양성여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술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앞서거나 뒤서거나 간에 우리는 뒤처지게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것이 요청됩니다:

  • 기초적인 양성: 우리 모두가 습관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읽고 평가하는 법을 배우는 것을 말합니다. , 여기에서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들을 사용할 알고 비판적으로 이용할 아는 것을 다룹니다.

  • 고무자들과 교육과 사목 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번째 단계의 양성: 그들은 교육적이며 사목적인 선택 안에서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기준들을 통합할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커뮤니케이션 수단들의 사용과 그들의 이용 능력만을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미디어의 새로운 문화 안에서 토착화 사업과 교육과 사목에 대해서 다루는 것을 뜻합니다(ACG 379, p. 24).

  • 전문가들을 위한 3단계 양성: 같은 목적을 위해서 우리 대학의 이점을 십분 활용하기 위해 공식적인 초대와 함께 사회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일할 형제들을 준비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 적합한 양성의 관점 안에서 베키 신부님은 공동체 수준에서(p. 29-37) 관구 차원에서(p. 37-43) 매우 의미 있고 조명된 실천 지침도 제시하였습니다.


조직적이고 교육적인 응답


총회들과 여러 총장 신부들에 의해서 이야기된 사회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같은 선택이 실제적인 사업에 적용됨으로써 성찰을 축소시키거나 그런 의도를 드러내는 것으로 위축되어서는 안되고, 항상 보다 조직적이고 교육적인 응답 안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어야 합니다.

1984년의 22 총회에서 사회 커뮤니케이션을 관장하는 부문이 시작되었고 총평의원 사람에게 분야를 위임하였습니다. 게다가 1989 12 8 UPS 보스코 서거 100주년과 관련된 사업으로써 그리고 위대한 교육자이며 위대한 커뮤니케이터였던 우리의 사랑하는 아버지의 카리스마를 실현시키기 위해 사회 커뮤니케이션 연구소가 시작되었습니다. 연구소 오픈 연설에서 에디지오 비가노 신부님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공적을 인정받을 만하거나 태어나고 있는 다른 가톨릭 연구소와 나란히 보조를 맞춘ISCOS 설립을 통해 지금은 비록 미약하지만 청소년들과 서민들의 복음화와 교육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일을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일은 현대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오늘을 사는 사람과 효과적으로 대화할 있는 능력을 성장시키도록 돕는 것입니다10.

수도회는 새로운 사업의 설립으로부터 사회 커뮤니케이션 자체의 신학과 사목, 미디어에 대한 사회 이론의 연구, 교리교육과 종교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언어와 미디어에 교육적인 방법론을 실험하고, 종교적이고 교육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데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살레시오 가족의 교육자들과 커뮤니케이터들의 수준 높은 양성과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모든 분야에서 용기있는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ISCOS 대학의 학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과제에 개인을 합당하게 준비하기 위한 우리 수도회와 살레시오 가족의 임무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여러분에게 호소하고 싶은 것은 그렇게 중요한 학부를 지원하는 것이 수도회의 협력과 공동책임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23 총회에서는 사회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일할 관구 대리의 필요성을 제시하였고 24 총회에서는 대리의 주의 깊은 활동과 관구 고무를 강화시키면서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관구 계획의 필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25 총회는 살레시오회의 활동 맥락과 이미 인용한 회헌 6조와 43조의 정신 안에서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점차 증가하는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사회 커뮤니케이션에만 종사하는 총평의원을 선출하게 되었습니다. 총회에 이어 총장과 평의회의 고무와 통치계획은 총체적인 비전, 고무와 양성, 정보 그리고 사업과 같은 분야에서 목적과 과정 그리고 개입을 제시하면서 분야에 대한 명확한 관심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 활동을 위한 궁극적인 동기유발


요한 바오로 2 교황님은 총장 신부님들이 우리에게 초대했던 “새로운 정신사조”와 “문화적인 회개”에 대한 생각을 궁극적으로 다시 한번 숙고하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2005 1 24 이미 인용한 그의 사도적 서한 급속한 발전(Il Rapido Sviluppo)에서 오늘날 교회의 임무는 단순히 미디어를 이용하는데 있지 않고 발짝 나아가 커뮤니케이션의 강력한 도구들이 만들어내고 확장시키고 있는 ‘새로운 문화’ 안에 구원의 메시지를 통합시키는 것”(RS n.2)입니다.

이것은 현재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전문기술과 과학기술의 이용이 우리 시대에 교회의 사명에 일익을 담당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같은 기술은 종교적인 정보, 복음, 교리교육, 분야에 종사하는 인력 양성, 교육과 같은 다양한 활동 분야에서 이용됩니다.

우리는 오늘날 사회 커뮤니케이션이 단순히 미디어의 이용으로 축소될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실 그것은 다양한 생활 방식과 개인적·가정적·사회적인 태도를 제안하고 전달하는 가장 강력한 기구가 되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교황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을 무시할 없습니다: “내용을 등한시하는 문화는 전대미문의 기술과 언어로 전달되는 새로운 방식 존재로부 나옵니다”(RS n. 3). 우리가 살고 있는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시대”에 인간 실존은 매스 미디어의 “다른 과정”과 대면하도록 부름 받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을 직면하면서 “개성과 양심의 양성, 정서적인 연결의 해석과 구조, 교육적이며 양성적인 단계를 통합시킴, 문화적인 현상들을 만들어내고 확산시킴, 사회적이며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생활 발전시키기 위한(n. 3) 수렴들이 태어나고 있습니다.

모든 참된 도전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어린이들과 젊은이들 앞에서 양성을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전이 되고 있습니다(n. 7). 이것 때문에도 우리는 사회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우리의 책임을 통감해야 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적인 흐름을 당한 방식으로 대할 있도록 사목적이 문화적인 검토”(n. 8) 실현해야 합니다.

교황님은 현재의 미디어 문화에 대한 책임을 하기 위해서 “미디어 의식 있도록 하고 적합한 방식으로 이용되고 알려지도록 하기 위한 폭넓은 양성 활동 하도록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공동 책임의 문화”에 호소하면서 “그들의 움직임에 공동책임의식을 가지고 참여할 있도록(n. 11); “미디어가 상호인식과 연대성과 평화 전하는 도구가 되면서 대화를 용이하게 하는데 가지고 있는 엄청난 잠재력”(n. 11) 가치를 인정하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10 전에 발표된 교회 문헌도 우리에게 우리 시대가 가지고 있는 새로움을 받아들이고 오늘날 보스코가 가졌던 힘과 정신을 가지고 우리가 선택한 것들을 실현하도록 자극하고 있습니다.


2. 사회 커뮤니케이션으로부터 나오는 도전들


저는 보스코와 그의 카리스마 충실히 면서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도적 서한 속한 발전”에 나타난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궁극적인 호소를 받아들이기를 열망하면서 오늘날 매스 미디어 문화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도전들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는 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살레시오 사명 실현하기 위해서 어떤 것을 우리의 지침으로 취해야 할지 정의할 있을 것입니다.


기술적인 발전11


복합적인 체계로서 커뮤니케이션을 바라보면서 신기술의 탄생은 정치·경제·문화적인 요소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드러내고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와 떨어져서 독자적으로 나타난 적이 없다 말할 있습니다. 사회의 부분에서 신기술 이용하고 있을 , 그것은 삶을 해석하는 새로운 언어를 제공해주고 있다는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다양한 미디어는 새로운 형태 안에서 인간의 실존을 해석하는데 도움을 주고 동시에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리 세상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이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논리적이고 직선적인 접근을 특권으로 가지고 있고 이성을 강화시키면서 개인에게 근거를 제공하고 자극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쓰여진 안에서 뒤로 오가며 읽을 있습니다. 책은 연속적인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부분과 부분 사이에는 연쇄방식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글의 힘은 책의 본분에 문학적, 시적, 철학적, 신학적, 정치적인 내용을 명료하게 전달하는 것에 우선권을 두고 있습니다. 책을 순수하게 눈에 보이는 언어로 바뀌기 쉽지 않습니다.

텔레비전 분석 대신에 반복을, 사실보다는 신화적인 요소들을 선호합니다. 텔레비전은 사건보다는 쇼에 관심을 집중시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개인적인 동의보다는 집단적 동의를 요구하는 거대한 텔레비전이라는 광장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아 들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소란스럽게 알리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황당한 이야기들과 현란한 이미지의 변화 사람들을 꼼짝 못하도록 마법을 걸고 있습니다. 시청자들이 동시에 참여할 있다는 것은 감정을 나누는 그룹을 형성하게 합니. 청소년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에서 만나고 서로 의견을 나누고, 갈채와 유행어를 반복하게 됩니다. 어른들은 프로그램에 대해서 혹은 다른 것에 대해서 그들이 선호하는 것을 토대로 견해를 교환합니다. 텔레비전의 힘은 이미지와 동영상을 하는 마력 있습니다. 사람이 지나치게 습관적으로 텔레비전을 보게 된다면, 마법 상자는 모든 사람에게 마법을 것입니다.

통제라는 단어 아래 그룹이 만들어질 있는 활동양식을 이끌어내면서, 항상 크고 독자적인 상호관계의 과정을 발전시킨 텔레비전과 관련된 다른 기술들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날로그 방식의 비디오 카메라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시간과 장소를 변화시킬 있는 가능성을 시청자들에게 제공했고 게다가 생산 지역과는 다른 맥락에 있는 비디오 자료의 확산을 촉진시켰습니다.

리모콘 단순히 채널에서 다른 채널로 옮겨다니는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을 수시로 변경하여 단편들을 보게 되고, 종종 광고로부터 달아나는 길이 되기도 재핑12 스타일의 시청방식을 발전시켰습니다.

이미 쇠퇴해버린 VHS방식에서 디지털 방식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비디오카메라 시청자를 일상의 장면들을 생산해내는 사람으로 바꾸었습니다.

컴퓨터 자기 자신 안에 문학작품, 이미지, 음성, 애니메이션, 비디오, 그래픽 다양한 고전적 미디어 언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컴퓨터는 멀티미디어, 상호관계, 얼굴을 마주보는 기회를 제공, 일방적 전달방식이 아닌 통교방식, 네비게이션, 하이퍼 텍스트, 액세스 등을 발전시켰던 커뮤니케이션의 형태에 기원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그다지 비싼 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소비자는 오디오나 비디오를 설치할 있고 자신이 프로듀서가 됩니다.

네트워크 중의 네트워크로 정의되는 인터넷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은유(metafora)입니다. 전화로서의 인터넷은 공간과 시간을 없애버렸습니다. 전화는 단지 목소리만 전달지만 인터넷 안에서는 새로운 방식의 삶과 사고 만들어지고 습니다. 일방적 전달방식이 아닌, 쌍방간의, 경계가 없는, 상호작용의, 가변적인, 변동하는 인터넷은 엄청난 관심과 염려를 불러일으키는 장소, 언어,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의 존재방식이자 사고 방식이기도 합니다.

네트워크를 통해서 수억의 이용자들이 매일같이 온갖 종류의 메시지를 교환하고 있으며, 문서들 주고받고 있고, 텔레메틱스(역주, : 핸드폰 텔레매틱스, 안전운전 도우미, 교통정보 제공서비스 받기. 단말기 안내 등의 서비스가 이루어지는 정보교환 장치) 그룹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채팅방에서 만나기도 하고, 모든 형태의 주제를 논의하기도 합니다. 인터넷은 더욱더 개인과 단체, 회사 혹은 기관의 증진을 위한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13

인터넷을 통해서 모든 인간 활동이 적인 것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역사상 번도 없었던 권력과 커뮤니케이션 통제의 분산과정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차원에서 인터넷은 인간의 지적 차원을 엄청나게 성장시킨 것으로 있습니다. 만일 전적으로 경제적인 이유가 지배하지 않는다면 네트워크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정치적이며 경제적인 목적을 위해서 끌어 있는 지식의 바다와 같은 것이 것입니다.

주제14 있어서 전문가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이해하고 싶다면 우리 어떻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매일의 현실을 감지하고 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가상현실은 컴퓨터와 지극히 복잡한 정보들과 함께 어떤 것을 눈에 보이게 하고, 조작하고 통합시키기 위한 방식입니다. 기계와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과 관련된 방법은 일반적으로 인터페이스 (역주, 컴퓨터와 인간을 연결해주는 장치. : 디스플레이, 키보드 ) 부르고 있습니다.

가상현실은 인터페이스의 사슬 가운데 가장 최근의 방법입니다. 가상현실은 확실한 의미에서 사용자의 자유와 창조성에 최고의 자리를 내어주면서 표현들이 상호작용 있도록 복잡한 데이터들을 삼차원적인 표현으로 전환시키면서 기계로서의 컴퓨터를 의식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것은 가상현실 사용하는 사람의 자유와 창의성을 보장해주거나 증가시켜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상 현실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인간이 자기 자신과 세상을 알고 전달하고 표현하기 위해서 어떤 환경에서 상호작용 하고 행동 하게 된다는 복잡한 현실을 인식하게 줍니다. 가상현실이 오늘날의 문화에 있는 가장 봉사는 아마도 현실 시키는 이라 생각합니다.


기술적이며 구조적인 수준에서 중재된 새로움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대중의 소비주의에 대한 문화적인 모델을 도입시켰습니다. 디지털화는 개인적인 소비주의 형태를 가져왔으며, 어떤 사람에 따르면 진정하고도 고유한 디지털 문화를 가져 주었습니다. 관련하여 디지털 문화는 디지털화의 확산을 지지해주는 기술적이며 구조적인 형태의 변화를 분명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1. 사람에서 많은 사람으로, 많은 사람에서 많은 사람으로(1:多에서 :). 매스 미디어의 전파는 1:, 일방적이고 자동적이며, 굳이 수동적이 아니라면 의도적으로 수용적인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방식의 미디어는 :, 1:1, 모두:모두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전파방식은 고정되지 않고 변화하며, 상호작용적이고 쌍방적이며 네트워크적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상호성과 교환이 가능합니다. 동시에 주고 받을 수도 있습니다.

2. 중앙 집중화로부터 분산화로의 전환. 유럽과 미국은 매스 미디어에 대해서, 특히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대해서 개의 서로 다른 형태의 발전이 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유럽은 정부가 독점하는 역사를 가지고 반면, 미국은 즉시 시장의 독점이라는 역사를 가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유럽에서 70년대부터 독자적인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국의 탄생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나지 않아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통제되고 운영되었던 미디어 문화로부터 다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통제되고 운영되는 문화로의 점진적인 이행이 일어나면서 목소리와 이미지가 전파를 타고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보다 다양하고 참여적인 형태로 나아가는 점진적인 여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디지털화와 함께 분산화는 커뮤니케이션 형태 살아야 상태(status vivendi) 됩니다. 예를 들면 라디오 방송의 차원에서 보면 세상으로부터 개의 라디오 방송을 들을 있습니다.

3. 지역적 커뮤니케이션에서 국제적인 커뮤니케이션에 이르기까지. 낡은 안테나가 위성 안테나로 바뀌는 점진적인 대체, 텔레비전 방송국 증가와 지역적인 확대는 국가 문화의 국경이 이상 한계가 되지 못하게 있습니다. 네트워크를 통한 디지털화는 세계화의 경향 확대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4. 대중매체에서 개인매체로. 소규모의 미디어 도구들의 생산과 가격의 하락은 개인매체 사용하는 이용자의 수를 크게 시켰습니다. 퍼스널 컴퓨터, 휴대폰, 노트북, 신용카드, 신분증은 모든 사람들을 비트(bit, 최소단위의) 리듬으로 여행하게 하며 우리의 선택과 활동에 대한 지속적이고 개별적인 통제를 보증합니다. 또한 동전의 뒷면(역기능으로서)처럼 드러나는 것은 디지털화가 비밀 서비스와 같이 감춰진 권력 또는 소비자의 프로필을 드러내기 위한 거대한 상업센터에 의한 통제를 허용한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디지털화는 시민들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권리와 민주주의의 방어를 위해 항상 깨어있는 의식을 가질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5. 대중에 대한 프로그램에서 개인에 대한 프로그램으로. 미디어 채널이나 특히 인터넷을 통해서 되는 선물들의 수적 증가는 새로운 형태의 소비와 새로운 문화적 습관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네트워크는 정보를 교환하고 음악과 영화와 같은 문화적인 요소들을 관리하는 새로운 방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법적이며 윤리적인 수준에서 적지 않은 문제들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같은 영역에서 언어를 암호처럼 바꾸어 사용하는 문제, 저작권의 보호, 문화적인 소유권, 소비자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논쟁들이 오래 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6.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소프트웨어에서 개방된 정보자원(Open Source)으로. 소프트웨어에 대해서 가지의 서로 다른 개념이 있습니다. “폐쇄된 원천” 혹은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전망 일반적으로 비즈니스와 경제적인 기준 위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문가의 권리와 마크를 요구하고 있으며, 소비자들이 손쉽게 이용할 있도록 보증하고 있습니다. “개방된 원천” 혹은 소위 말해서 개방된 자원에 대한 전망 소프트웨어의 코드는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사용하기 위해서 알려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을 자신의 요구에 따라서 용하고 적용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기여를 덧붙여 개선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유용한 것이 되게 하도록 소비자를 자유롭게 놔두어야 한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사람에게 선익이 되도록 지식을 나누는 비전이라 있습니다. 남반구와 북반구 사이의 “디지털 격차”의 극복은 이것을 허용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권리로서 정보에 대한 이용권을 허용하는 테크놀러지의 선택을 통해서 뛰어 넘게 됩니다. “개방된 자원”은 정보와 문화의 민주화를 향해 가는 방식이라 있습니다.


새로운 디지털 문화의 특성


새로운 매체의 이용은 교육과 양성을 위한 과제를 제시해주기 때문에 주의를 끌만한 가지 특성을 제시해주는 문화를 생산해냈습니다.

1. 우리는 지금 고속화 문화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 커뮤니케이션은 매우 빠르게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자 우편만 생각해도 충분합니다. 우리가 인터넷이 느리다고 역설적으로 말할 때에도 그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없는 속도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인터넷과 같은 기술이 가지고 있는 마력은 단순한 활동을 통해서도 세상에 우리 연장시킬 있다는데 있습니다. 제가 인터넷 상의 주소를 클릭하면 저는 바티칸에 있습니다. 다른 주소를 클릭하고 프로그램을 업데이트시키기 위해 파일이나 문서들을 다운로드 받을 있습니다. 모든 것이 순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속도는 자동차, 비행기, 스포츠, , 경제 다른 많은 현실들 안에서 발견되는 공통된 특성입니다. 속도와 관련된 문제들이 있는데 그것은 빠른 속도를 없는 사람들에게 소외감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노인들, 장애인들, 가난한 사람들과 같은 범주의 사람들 혹은 지배적인 사회모델 안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 소외되고 있습니다.

2. 번째는 인터페이스(상호접촉, interface) 방법이 새로운 태도와 정신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인터페이스는 인간과 기계 사이에 맺어지는 상호활동의 수단입니다. 인터페이스의 발전은 활동하는 인간의 요구를 강조했습니다. 같은 태도는 사회적인 영역 안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은 자기 삶과 사회 생활의 능동적 주체가 되고 싶어합니다. 그러므로 인터페이스는 환경, 계획, 교육, 사회생활 등의 은유가 됩니다. 커뮤니케이션 모델은 인터페이스 개념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실제적인 참여가 아닌) 환영(幻影) 참여가 제공되는 유사()민주주의적 모델 (pseudo-democratic models) 내부에서 살고 있다고 말해야 것입니다. 실제로 오늘날 시민은 소비자로서의 탁월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고 싶어하는 것을 결정하는데 자유롭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생산해내고 싶어하는지를 결정하는 힘은 매우 적습니다.

3. 번째로 새로운 문화는 현실에 대한 다양한 비전 제시해줍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진리의 바다에 잠겨있기 때문에 확실성 혹은 진리를 얻는 것이 훨씬 어렵습니다. 오늘날 유일한 입장을 고수하려고 하는 제도는 수천 개의 다른 입장들과 직면하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의 사이트 옆에 우리는 가장 전통적인 것에서부터 가장 진보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다른 교회들과 수도회들 그리고 분파들의 많은 사이트를 발견하게 됩니다. 거기에는 공존의 문화가 있고, 잠재적으로 대화의 문화가 있지만 미움의 문화도 있습니다. 상대주의는 문화로부터 손쉽게 얻어지는 산물입니다. 네트워크는 어떻게 오늘날 우리가 반대자들과 공존의 삶을 살아가는가를 명백하게 보여줍니다. 다른 문화는 동일한 것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방식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지만, 오늘날 어떤 것에 대한 무분별한 제공과 반대는 단지 클릭 번으로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어른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문화입니다. 개인의 발달 성장을 고려하지 않는 문화이며, 그의 선택을 위한 책임을 개인이 짊어지게 하는 문화입니다.

4. 앞의 것과 매우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네트워크가 발전할 있는 유랑주의15 (nomadism) 태도입니다. 우리는 인터넷 안에서 여기저기 항해할 있습니다. 네트워크의 곳에서 다른 곳으로의 이동은 가끔 하나의 체험에서 다른 체험으로의 이동으로 표현되는 생활 형태 안에서 드러납니다. 것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형태 안에서 유랑주의는 현실세계로부터의 분리나 연구 도움을 주며 어떤 것을 제공하는 문화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네트워크 안에서 이것은 남용과 오용으로 이용자들을 이끌어가기 합니다. 같은 관점으로부터 네트워크 체험은 책임질 있는 인간을 양성할 필요성 드러내줍니다. 이와 같은 것을 있는 시스템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신앙의 고유한 전망과 고유한 계획을 가지고 일관된 선택을 있는 능력과 성숙으로 이끄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5. 네트워크 자체는 교육과 양성의 도구 있습니다. 새로운 전자 기술 습득함으로써 네트워크 없이 실현되기 어려운 교육 프로그램과 교육서비스를 제공할 있는 가능성을 멀리 떨어진 지역에 제공하 있습니다. 게다가 네트워크는 전쟁, 환경문제, 인종간의 학대 문제 등과 같이 세상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서 접촉하게 하고, 알게 하며 그것들을 세상에 보고할 있게 합니다. 오늘날 과학적인 공동체는 네트워크를 통해서 보다 동적으로 협력하고 있습니다. 개방된 자원은 네트워크 덕분에 가능할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NGO (non-governmental organization, 비정부조직), 국경 없는 의사회, 국제사면위원회 (Amnesty International), FAO, UNESCO 같은 기구들과 수없이 자원봉사 조직들과 같은 연합 형태를 있습니다.

6. 미디어에 의해서 크게 영향을 받고 있는 같은 환경은 기술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도록 항상 더욱더 우리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눈에 띄지 않지만 보다 흥미있는 측면은 컴퓨터가 더욱더 환경을 이루는 구성요소가 되어가 있다는 입니다. 사무실은 점점 컴퓨터 시스템을 갖춰가고 있습니다. 집도 주방의 전자레인지에서 출발해서 목소리 감지 조명 스위치(voice-operated light switches) 이르기까지 점차적으로 온통 컴퓨터화 되어가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휴대전화는 점점 손에 들고 다니는 컴퓨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모든 전자제품 상업은 인터넷 상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기술혁명도 그렇습니다. 이와 같은 다양한 관점으로부터 커뮤니케이션 필요성은 더욱더 정교한 기술을 요구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인식시키고 있습니다.

7. 인터넷은 지금 미래를 만들어내는 곳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오늘날digital divide (디지털 격차: 계층·지역·산업·시장 간의 인터넷·컴퓨터 이용 격차) 알려진 것을 자체 안에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 안에서 인터넷 보급을 나타내는 가지 통계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 아프리카는 1.5%, 중동은 7.5%, 아시아 8.4%,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은 10.3%, 유럽 35.5%, 호주와 오세아니아 48.6%, 미국 64.7%입니다. 뉴욕 하나에서 아프리카보다 많은 정보의 입출력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발전한 나라에 해당하는 세계 인구 15% 절반 이상이 고정된 전화선(fixed telephone lines) 사용하고 있고, 그들 70% 휴대폰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개발도상에 있는 전세계 인구의 60% 세계 인터넷 접속의 단지 5%만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남반구 이외에도 나라, 지역, 도시와 구역에 따라서 여러 가지 형태의 남쪽 존재합니다. 모든 것은 지역적인 차원과 국제적인 차원에서 경제, 정치, 정의와의 관계를 디지털 문화의 문제에서 분리시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중요성을 성찰하도록 새롭게 인도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적이며 기술적인 새로운 상황은 배타와 소외에 대해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8. 전자 매체들은 사회생활 안에서 통제를 실현하는 방식에 영향을 줍니다. , 미디어 사회에서 권위 개념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인쇄물 위에 기초한 사회모델 안에는 공공생활과 권위행사에 들어가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가지의 요구들 , 읽고 아는 능력이 요구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같은 것을 모른다면 공적인 논쟁에 참여할 없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날 전자 매체는 정보화 세상에 모든 사람의 접근을 용이하게 하고 있습니다. 같은 방식 안에서는 어떤 위계적인 정보통제의 관계를 불안정하게 합니다. 쉽게 통제할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반면 이전에 정보를 통제해왔던 기관들은 이제 한쪽으로 물러나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므로 권위와 진리에 대한 동일한 개념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한편, 상황들이 가지고 있는 일시적인 특성 때문에 기관들은 진리의 개념을 위험스럽게 양적인 개념과 연결시키면서 청중들을 필사적으로 사냥하고 있으며, 매스 미디어 언어를 전형적인 흥행거리로 만드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교육적인 전망 안에서 본 몇 가지 도전들


새로운 문화적 환경은 사회적, 문화적, 기술적,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인 변화의 결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매우 중요하면서도 근본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징은 다양한 언어의 사용을 수렴시키고, 질서와 무질서 혹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면 이미와 아직 아니(già ma non ancora) 사이의 긴장을 가지고 항상 진화하는 문화를 만들어 내는 능력입니다. 같은 새로운 문화가 가지고 있는 특징으로부터 개인적인 기여 계획과 그들에 대한 실제적인 제안 이끌어낸다면 교육적인 환경 안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을 위한 몇몇 흥미진진한 태도들과 식이 나타날 있습니다.

미디어 문화는 행동의 문화이며 참여와 상호작용의 문화이며 현실과 삶을 건설하는 문화입니다. 그러므로 명사보다는 동사에 가깝습니다.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 말하는 것보다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이것은 확실히 복잡한 구조를 토대로 가지고 있는 과정의 문화입니다. 그러나 개별적인 것이어야 행동하고 커뮤니케이션 통하여 건설되 공동체를 추구할 있어야 합니다. 과정의 실제적인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그것에 개인적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만남의 문화입니다. 탈영역화(deterritorialization) 개념은 물리적 장소의 필요성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만남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활동입니다. 모든 것들은 교육적인 만남의 장소를 생각할 알게 합니다. 그러나 만남의 통교적 양식과 사람들이 만나야 하는 이유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이상적으로 나눔의 문화이며 문화적인 선익에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참여하고 접근하기 위하여 지적인 소유권을 포기하는 문화입니다. 같은 선익은 다양한 형태와 역사적이며 지리적인 표현들 안에서 문화 상호간의 참여 이루어지는 역동적인 과정을 통해 강력하게 나누고 해석되고 논의되고, 비판되고 건설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정보문화의 다량생산에 집중함으로써 질적 가치를 잃어버리게 한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본성상 인터넷 기술은 정보를 센터와 주변으로 나누는 문화라기 보다는 상호교환의 문화 만들어냅니. 이것은 정치·경제적인 구조의 본성 때문에 양극화 문화, digital divide”(디지털 격차) 생산해내는 기술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술은 본성상 만남 대화 그리고 지역적, 문화적,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인 경계 뛰어넘어 커뮤니케이션을 유용하게 합니다.

오늘날의 문화는 새로운 전자매체와 더불어 세기 동안 발달한 논리적이며 이성적인 원리들을 조화시키기 위해서 힘겨운 노력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감각의 문화(culture of the senses)입니다.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은 개인적인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집단적인 수준에서 진지하게 고려해야 하는 어려움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모든 문화적인 화가 자기 자신 안에 가져오는 고뇌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세계화의 모순 동시에 극단적이고 과장된 민족주의가 드러나는 모순 살고 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모든 변화는 자신 안에 투쟁을 동반합니다. 대화를 모색하는 것은 서로를 발견할 있도록 문제를 완화시키고 해결책을 찾을 있게 합니다. 때문에 서로 다른 관점들과 다양한 표현방식을 받아들이게 하는 다원적 시선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미디어는 그들 자신이 다원적 언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원주의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됩니다.

때문에 매우 시각적이고 이성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문화를 극복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감각의 민주화16( democracy of the senses)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술과 미디어는 아마도 감각과 언어의 상호보완성을 조화시키고 통합시키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감지하는 개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친애하는 형제 여러분, 일해야 분야는 무척 많습니다. 동시에 미디어 문화가 우리에게 가져오는 도전들은 우리의 교육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우리의 교육적인 제안이 되고 있기 때문에 이는 우리 교육사목의 가장 자원이 아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단지 그에 따른 결과만을 따라갈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교육 활동을 보다 효과적인 것이 되게 하는 같은 변화를 우리 안에서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수도회가 교육하면서 복음화하고 복음화하면서 교육한다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수도회 사업의 전망으로부터 오는 도전들


일반적으로 사회 커뮤니케이션은 수도회, 수도생활과 양성에 도전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매스 미디어 문화 내에서 우리의 실존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커뮤니케이션하고 있는가?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는 신기술을 통하여 엄청난 정보와 지식을 전달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보다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문가가 있고 전문적으로 준비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우리의 평범한 모습과 우리의 궁핍함 또는 우리의 일관성과 정직함을 전달할 있어야 합니다.


카리스마를 전달하는데 직면하는 도전. 우리 모두는 수도회로서 우리의 생활 유형과 우리가 선택한 사업들을 가지고 지금 무엇을 전달하고 있는지 다음과 같이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하느님과 주님이신 예수님을 위하여 공동체 생활의 형제애, 가난하고 버림받은 청소년들을 위한 우선적인 선택, 삶의 의미와 희망, 무조건적인 봉헌과 거저 주시는 선물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고 있습니까? 이것은 우리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는가를 단순하게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우리가 어떤 수단을 이용하고 있는지, 어떤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지, 어떤 문화를 가지고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는가를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우리가 카리스마를 전하고 있다면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생활양식을 특징짓는 요소는 살고 있는 곳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특성입니다. 오늘날의 도전은 선택이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성격입니다. 거저 주시는 선물로서의 수도생활에 대해 생각할 하느님 분만으로 충분하고 우리의 대상자인 청소년들이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증거해야 하는 생활유형에 상응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남아도는 잉여의 문화에서 우리는 본질적인 것에 대한 문화를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의 공동체와 우리의 카리스마는 눈에 드러나 보여져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가시성(可視性) 증거입니다. , 청소년들에게 하느님 사랑의 징표가 되며 전달자가 된다(회헌 2). 이것은 모든 성화 여정, 영성생활에 우선권을 두면서,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표현하고 있는 25 총회를 적용하는 모든 여정에 도전이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삶에 적용되던 이전의 모든 회람서한들은 사회 커뮤니케이션 안에서 이것들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활양식에 진지한 변화를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무상성에 대한 증인들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형제들이 가장 중요하다는 선택과 생활을 통해서 이것을 변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이것은 우리가 가질 있는 모든 사이트, 라디오, 텔레비전이나 신문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사실 우리가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가지고 생산해내는 것도 우리의 실존을 반영하기 때문에 우리의 정신이 바뀌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히 말이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사이에 일관성을 드러내는 선택과 행동을 만들어냅니다.

쇄신은 단순히 얼굴의 주름살을 펴는(face-lift)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과 새롭게 드러나는 긴박한 가난의 구체적인 문제에 우리의 모든 것을 투신하고 싶다는 쇄신되어진 결심 안에서 발견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관성과 복음적 근본주의를 얻는 과정을 통해서 교회와 우리 수도회가 믿을 있는 (credibility) 우리의 노선으로 삼습니다. 사회 커뮤니케이션은 청소년들에게 살레시오 성소의 열정을 발견하도록 하는데 도움을 있으며 성소를 제안하는 하나의 형태가 있습니다.


테크놀러지의 도전. 이것은 매우 중요한 분야입니다.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라는 차원에서 우리는 다윗과 골리앗 비유로 이것을 성찰할 있습니다. 교회와 마찬가지로 매스 미디어라는 거대한 제국 앞에 서있는 우리 수도회는 지배적인 문화에 대안이 있는 어떤 것을 제안할 있도록 다양한 전략과 요충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우리는 가볍고 강력하게 동기화된 그러나 매우 탄력적인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필요로 합니다. 인터넷은 보다 쉽게 접근할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명이 이루어 지는 몇몇 지역에서 라디오 방송국이 증거하고 있는 것처럼 발전한 지역에서 라디오와 같은 도구는 최고의 기여를 있습니다.

우리는 거리의 고무로부터 시작하여 운동장, 연극, 음악, 전례 등으로 옮겨간 살레시오 커뮤니케이션의 모든 전통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니, 재평가해야 것입니다. 보다 시급한 문제는 청소년들,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어하는 열망을 기르는 것입니다. 인간 상호간에 이루어지는 개인과 단체 수준의 커뮤니케이션 형태의 힘은 비록 미디어 기술이 뛰어나다고 해도 어떤 유형의 미디어를 통한 기술적인 적용으로도 이것을 대신할 없습니다. 다는 인간 관계와 인격적인 만남에 우선권을 두면서 발전해야 커뮤니케이션의 형태입니다.


시간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가운데 만나는 도전. 오늘날 자유시간을 이용하도록 교육하는 것은 본질적인 것입니다. 통계적으로 미디어 앞에서 혹은 미디어와 함께 청소년들이 보내는 시간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매스 미디어 문화 안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저는 우리 살레시안도 이것에 대해 면역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직면하는 도전은 양성적인 것입니다. 미디어에 대한 교육의 의미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데 책임을 아는 양성의 의미에서 도전을 만나게 됩니다. 따라서 년간의 양성은 필수적이며 양성기는 문화적인 준비와 진지하면서도 전문적인 준비가 이루어지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공동체 자체는 교환이 이루어지고 정보를 공유하는 장소라기보다는 커뮤니케이션과 만남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과도한 정보는 우리로 하여금 단편적인 삶을 살게 합니다. 우리는 양성에 모든 것을 집중시킴으로써 우리 삶의 일치와 조화를 찾아야 합니다.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부터 받게 되는 도전. 이제까지의 논의에서 보았듯이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수단들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 수도회는 매스 미디어의 세상에 현존해야만 합니다. 도구를 사용하는데 익숙해지는 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 수도회와 수도회의 커뮤니케이션을 성장시키기 위해서 지금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모델에 대해서 성찰하는 것도 우리의 과제입니다.

순간에 우리가 빠져들 있는 하나의 위험은 커뮤니케이션 수단들의 이용과 그들의 효과에 대해서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보다도 커뮤니케이션을 있는 능력과 커뮤니케이션을 성장시킬 있는 능력 그리고 우리가 하고 있는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며 우리가 지금 커뮤니케이션하고 있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사명을 향한 긴장과 열정이라 있습니다. 아마 보스코는 보다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들을 위해 가지고 있던 열정을 통해 이미 잘하고 있던 젊은이들을 모아들이고 그들과의 커뮤니케이션 형태를 연구하고 고안하는데 성공할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열정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실제적인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지금 우리는 무엇에 우리의 노력을 쏟고 있습니까?


양성의 도전.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과 그들이 만연한 문화는 엄청난 양성의 의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번째 과제는 의심할 여지없이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들의 비판적 이용에 대한 양성과 비판의식을 양성시키는 일입니다. 한편 교육과 복음화를 위한 엄청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하느님의 선물인 사회홍보분야(회헌 43) 가치를 인정할 아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어떻게 미디어들이 악용될 있고, 조작되고, 과도한 지배나 부패에 이용되는지 알아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훌륭한 식별의 정신을 가질 있도록 양성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폭넓게 매스 미디어의 본질, 그로부터 이용되는 기술, 기술이 수용자들에 대해서 갖게 되는 충돌을 이해하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윤리적 원리들, 인간과 인간 공동체는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수단들을 이용하는데 있어 목적과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도록 가르칠 필요가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은 사람들의 전인적인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에 대한 좋은 소비자가 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교육과 사목의 도구로서 그것들을 이용할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다양한 도구들을 이용할 아는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이것은 동일한 매스 미디어 문화 안에서 교육적이며 복음적인 메시지를 통합시킬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이것은 기술을 아는 것뿐만 아니라 지배적이면서 사회·문화적인 상황을 깊이 있게 읽을 아는 능력을 전제로 합니다.

사회 커뮤니케이션 분야는 미디어의 수단들 안에서 고갈되지 않습니다. 사회 커뮤니케이션은 문화를 생산해내며 이것은 양성 분야에서 특별히 직면해야 엄청난 도전들을 만들어 냅니다. 이것은 단순히 지식이나 능력을 전수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본질적으로 인격의 내면 깊은 곳에서 자신의 정서적 확신과 동기를 부여해 주는 수준에서 효과적인 변화가 일어나도록 도와줍니다. 양성 안에서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현대 문화의 여러 측면들이 문제를 가지고 있던 반면에 어떤 것들은 양성을 촉진시켜주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문화는 인간의 내적이며 초월적인 차원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고 현재 그가 살고 있는 상황 안에서 개인의 신원을 건설하도록 합니다. 문화가 비록 이미지를 가진 문화라고 해도 이것은 일시적일 뿐이며 진지한 자기성찰을 하도록 인도하지 못하고 오히려 피상성에 머물도록 인도합니다. 게다가 사회 커뮤니케이션 문화는 진리를 하나의 견해로 바꿔버리고, 모든 유형의 정보와 견해들을 제공하면서 이용자들의 자유로운 선택에 모든 것을 맡겨놓고 그들을 상대주의로 인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분명하게 보는 것이 어렵게 되고, 진리는 종종 공적인 설문조사로 인해 흐려지게 됩니다. 또한 사회커뮤니케이션 문화에 의해서 길러진 즉흥주의 (immediatismo) 제공되면서, 이것은 매우 많은 노력과 어려운 작업을 요구하지만 매우 느리고 인내가 필요한 일이 되어버린 양성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다른 한편, 양성 과제의 방법론을 특별히 개선하도록 하는 사회 커뮤니케이션 문화의 여러 측면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회 커뮤니케이션 문화의 전형적인 특징은 항상 이용자의 반응이라는 입장에서 생각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용자들의 조건과 능력, 그들의 필요와 관심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양성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측면이라 있습니다. 양성의 주체, 그들의 능력과 가능성, 그들이 나타내 보일 있는 반응들이 출발점으로 인식되어져야지 커리큘럼이 출발점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사회 커뮤니케이션 문화는 분석적이고 체계적이기보다는 직관적입니다. 그것은 머리 속에 떠오르는 길고 추상적인 주장을 이용하지 않고, 보다 짧고, 단순하고, 명료한 메시지와 더불어 또한 감정과 모든 인격에 호소하는 메시지를 이용합니다. 양성 공동체 안에서 이용되는 가르침의 방법론에 대해서 생각한다면, 이것은 다시 한번 우리가 성찰해야 엄청난 분야가 것입니다. 게다가 사회 커뮤니케이션 문화는 말보다는 이미지에 더욱더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고통받고 있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얼굴 이미지는 그분이 당한 고통에 대해서 말하는 많은 말마디보다 훨씬 웅변적입니다.


3. 실천지침


3.1 전략의 변화

마침내 우리는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되는 실천적인 선택, 보스코의 모범을 따르고, 살레시오 카리스마의 풍요로움과 결실을 열매 맺게 하며,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도전과 인간 사회의 가장 미묘하고 값진 부분17 청소년들이 필요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도움 앞에서 새롭고 창조적인 사도적 응답을 해야 하는 순간에 도달했습니다.

이전에 했던 성찰로부터 나오는 가지 실천지침을 우리에게 제안하면서, 저는 우리의 성찰과 활동을 개선시키도록 도와줄 있는 전략의 변화 이루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략에 대한 생각은 이중의 관찰로부터 나오게 됩니다. 가지는 우리가 다채롭고 풍요로우며 잠재적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테마도 다루고 있는 수도회의 문헌들을 만들어 내는 것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수도회 문헌들은 현실에 대한 분석의 현명한 전통과 해석, 우리의 카리스마적 원천 위에 토대를 범주와 쇄신된 살레시오 사명에 대한 사도적 활동의 참된 계획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 우리는 가르침이 우리의 실제적인 삶과 활동으로 전환시킬 있는 능력을 창조적이고 생산적이며 효과적인 것이 되지 못하게 하는 어려움과 노고와 위험도 발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쓰여진 것이 불행하게도 읽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읽었다고 해도 그것이 결실을 맺는 성찰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주 성찰되는 것은 이것들이 현실을 변화시키는 활동으로 이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토록 많은 사도적 에너지를 가둬버리는 사슬을 어떻게 끊어버릴 있겠습니까? 어떻게 우리는 커뮤니케이션 안에서 있는 장애물을 제거할 있겠습니까? 어떻게 우리의 문서들이 의미 있는 것이 되고 실천에 옮겨질 있겠습니까? 어떻게 총장의 서한이 의미 있는 것이 되고 실천적인 것이 있겠습니까?

저는 먼저 저를 웃게 했고 후에 저를 진지하게 생각케 했던 어려움에 익숙해져 있으면서 단순하고 지혜로우며 농담도 아는 농부의 환경에서 살아가는 서민 대중의 이야기 하나를 해볼까 합니다. 여러분에게 미소를 자아내게 하고 하나의 전략을 제안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늙은 농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달걀을 깨기 전에는 오믈렛을 먹을 없습니다. 오믈렛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영양은 계란 속에 갇혀있습니다. 맞지요, 아닌가요? 그러나 거기에 그대로 놔둔다면 맛있는 음식이 없습니다. 게다가 나빠지게 되고 그것이 가지고 있던 식품으로서의 잠재적인 가치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거기서 내용물은 좋지 않은 것이 되어 버리고 해로운 것이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제안하고 싶은 전략은 새로운 실천 지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수도회의 문헌이 유산으로 고이 모셔져 있어 죽어 있는 상태로부터 생명을 해방시키고 우리의 교육사목 공동체와 지역 안에서 생명을 육화시키는 방식을 계획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헌들 안에는 많은 빛이 있고, 카리스마적 영감과 많은 사도적 에너지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헌들이 우리의 삶과 활동을 위한 참된 영양분이 되지 않을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들이 문헌들을 다시 읽고 현대 문화의 현실을 깊이 성찰할 있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초대하고 싶습니다. 또한 공동체와 교육사목 공동체 안에서 개인적으로 성찰하도록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청소년들이 처해 있는 현실과 그들의 생각들을 직면해보고 매일 개인의 안에 옮겨야 활동 계획 결정할 있는 용기를 갖도록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어떤 관구에서는 분야에서 우리 사명에 대한 많은 일을 했습니다. 다른 관구에서는 지금 용기 있고 창조적인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관구는 아직 시작 단계에 있습니다. 현실적이고 관대하며 구체적인 사람이 되려는 의향을 가지고 우리는 가지 선택을 필요가 있습니다. 관구장과 평의회, 청소년 사목과 양성을 위한 관구 대리들과의 협력 안에서 사회 커뮤니케이션 관구 대리와 소위원회, 살레시오 공동체와 교육사목 공동체의 원장은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가장 적합한 실천 방식을 찾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전략으로서 관구 교육사목 계획의 일부가 되는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관구 계획 실천하고 개선하도록 여러분에게 제안하고 싶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다음 개의 문헌에 대해서 창조적이고 효과적으로 일하도록 초대합니다: 살레시오 사명 안에서의 커뮤니케이션(ACG 379);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살레시오적인 체계라는 제목을 가진 사회 커뮤니케이션 () 올해 초에 제시한 실천 안내서; 사회 커뮤니케이션 부와 양성과 청소년사목부의 협력으로 만들어진 올해 출판될 예정인 사회 커뮤니케이션 안에서 살레시안들의 양성을 위한 지침. 같은 문헌들로부터 자극 받은 우리는 현실에 대한 진단을 해야 것이며, 관구 계획을 통해서 실천해야 구체적인 과정을 선택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협력 안에서 여정을 수행할 것이며 이미 행한 여정을 주기적으로 평가할 것입니다.

이제 언급할 문장들에서 저는 가지 측면들, 특히 실천적인 측면에 대해서 강조하면서, 또한 청소년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전략적인 제안을 실현할 있도록 여러분을 초대하면서 위의 문헌들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저는 이와 같은 긴급한 선택에 대해 여러분이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3.2. 작업의 도구들


3.2.1.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베키 신부님의 서한


베키 신부님의 서한은 살레시오 사명 안에서의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이것은 특별한 것입니다! 귀머거리가 듣게 하고 벙어리가 말하게 합니다!(ACG 370), 베키 신부님은 우리의 살레시오 사명을 밝혀줄 있고 움직일 있으며, 또한 밝혀주어야 하고 움직여야 하는 성찰거리와 일련의 실천적 제안들을 우리에게 남겨주셨습니다. 모든 살레시안, 모든 공동체와 모든 관구들은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인식하도록 부름받았고 그들의 사도적 계획의 자리에 이것을 놓아 두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저는 가지 생각과 문서의 실천적 지침들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동시에 본래의 텍스트로 돌아가도록 여러분을 격려하고 그것을 안에서 변화시키도록 초대하고 싶습니다.

사회 커뮤니케이션은 다양한 수단들과 새로운 기술과 더불어 우리의 삶과 우리의 사명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단순히 이것이 수백만의 사람에게 교육과 복음화를 확산시킬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문화의 중심, 행동모델의 학교, 삶의 의미를 느끼게 하고 가치들을 재해석하게 하는 윤리와 권력의 이용과 경제 실천의 의미를 감지하게 하는 학교를 건설하기 때문입니다. 혁신은 의미있고 결정적인 것입니다. 편지에서 제가 반복해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가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언어와 새로운 수단들을 이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메시지는 새로운 문화 안에서 통합되어야 합니다.

같은 문화적인 혁신은 우리의 정신을 바꾸고 진정한 문화적인 회개 하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 내부에서만 선을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회가 바라는 것과 요청하는 것을 경청하고 사회가 긍정적으로 변화하도록 상호작용하면서 공동체 밖으로 우리의 활동을 확장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우리는 평신도들과 교육공동체 전체와 대화하고, 통합하고 상호관계를 건설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지역의 고무자가 되고 청소년들을 위하여 협력하는 가운데 다른 사회 기관들과 함께 해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인터넷을 포함한 새로운 미디어를 만남의 공간으로 만들고 새로운 아레오파고에 누룩이 되기 위해서 이들을 이용해야 합니다.

베키 신부님은 이중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실천지침을 제안했습니다. 번째는 지역공동체와 우리 공동체 안에서 커뮤니케이션을 교육해야 하는 긴급한 요구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번째는 모든 관구와 사회적인 상황, 그리고 청소년들의 선익을 위한 문화를 변화시킬 필요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모든 공동체 제도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개선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또한 교육사목 공동체 안에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교육과 언어 그리고 미디어의 이용에 대한 교육을 포함하는 커뮤니케이션 교육(educommunication) 미디어와 함께하는 교육을 계획하고 실현시키도록 불렸습니다. 학교에서 교육과 복음화 과정에서 미디어를 이용하고, 본당과 오리토리오에서 미디어를 활용하고 방송인들, 예술가들, 편집자들, 특히 청소년들이 있다면 그들과 대화를 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새롭게 등장한 가난한 사람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을 돕고 미디어 기술을 개선시키도록 부름받았습니다.

동시에 모든 관구 시민의 법과 권리를 알고 그것을 존중하며 청소년들과 가정 등의 권리를 보호하는 행위를 발전시키고 공동선을 위해서 활동하고 있는 다른 기관들에 개방시키면서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계획하고 행사하도록 불렸습니다. 같은 관점에서 사회 커뮤니케이션은 능동적인 시민의 권리 갖는 기회를 교육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좋은 기회를 제공합니다. 같은 창의성을 고무하기 위해서 이미 우리 총회들은 사회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관구 대리(CG 23 참조), 그의 소위원회와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관구 계획(CG 24 참조) 역할을 정해놓았습니다.

이것은 전문가들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입니다. 전문가들은 그들이 참여하는 일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환영받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수행해야 부분적인 일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커뮤니케이션 수단들과 새로운 기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면 이것은 문화와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보다 정의롭고 형제적인 사회의 건설이 우리에게 관심거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수단들은 하느님 나라를 중재하기 위한 도구가 됩니다. 지역 공동체에서 편지를 다시 읽음으로써 마음 안에서 생기는 성찰들과 실천적인 제안들은 교육과 사목적인 봉사를 하는데 있어 그것들이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관구 계획의 일부분이 되게 하기 위해서 관구 고무와 통치 기관들과 나눔을 가져야 합니다.


3.2.2.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살레시오적인 체계 (Salesian System of Social Communication)


우리 모두는 예방교육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교육했고 양성했던 살레시안들과 함께 살았던 경험 안에서 예방교육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예방교육을 학문적 연구로 심화시켰습니다. 이제 우리는 계속해서 증거와 생활 나눔, 교육적 실천, 그리고 말과 가르침을 통해서 예방교육을 실현하고 전파합시다. 우리는 보스코께서 꿈꾸고 살았던 예방교육을 1877년에 옛날 쯤으로 축소시킬 수는 없습니다. 에디지오 비가노 신부님이 쓰신 것처럼 예방교육은 보스코와 살레시오 회원 개개인들과 살레시오 가족의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인 실존과 활동이 가지고 있는, 특징적이고 총체적인 방식 점진적으로 건설하는 나눔, 태도, 활동, 개입, 수단, 방법과 구조들의 유기적인 총체(ACG 290, p. 10)입니다.

여기서 System이란 단어를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보스코가 꿈꾸었던 것과 유사한 꿈이 살레시오 수도회를 위한 활동노선을 소개하고 있는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살레시오적인 체계(SSCS)라는 안에 구체화되었습니다. 사회 커뮤니케이션 () 살레시오 생활과 살레시오 사명에 대한 부분의 교의적이며 활동적인 전통을 수집했고 충분한 대화를 통한 자문 후에 같은 작업도구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작업들이 빛나고 열매 맺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역사적이며 교의적인 언급의 틀과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기능에 대한 수도회의 정책노선과 더불어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관구 계획의 건설과 항구한 쇄신, 그리고 계획의 실현을 위한 작업도구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이 이것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연구하게 하기 위해서, 이것은 관구장과 평의회, 사회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관구 대리와 위원회에게 특별히 맡겨졌습니다.

사회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총평의원은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살레시오 체계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명백하게 드러나는 살레시오적인 가치들과 사명에 대한 공통된 전망을 가지고, 고무와 양성, 정보와 생산의 영역에서 계획된 정책과 활동을 가지고, 수도회와 살레시오 가족의 내부에서 그리고 교회의 기관들과 지역 그리고 보다 넓은 의미에서 사회와의 외적 관계를 맺으면서 네트워크로 만들어진 유기적인 구조와 커뮤니케이션 과정에 대한 관리를 통하여 유기적이고 통합적인 계획으로써 체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SSCS 19). 우리는 같은 작업도구 안에서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살레시오 체계의 명확한 신원(그의 대상자들, 목표, 확신, 사명, 활동 기준과 정책, 주체), 역할, 조직 알게 됩니다.

저의 의도는 작업도구를 자세히 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문헌의 본문으로 가야 하고, 본문이 우리를 인도하도록 내맡겨야 하며 본문의 정신으로 움직여야 하고, 우리의 교육사목 공동체들의 실제적인 요구에 즉각적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저는 문헌의 단순성과 실천성 때문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할 있는 부분들을 분명히 제시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SSCS 문헌에서 개의 부록을 발견하게 됩니다. 번째는 다음과 같은 수도회의 주요 원천 대한 종합적인 리스트입니다. 살레시안의 시선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회헌 회칙, 총회, 총장의 회람서한 . 번째는 개요,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관구 계획 만들기 위한 지도(map)입니다.

부록은 의미 있는 상징이며 긴급한 계획입니다. 이들은 항상 우리를 우리의 원천과 뿌리로 돌아가게 해주는 상징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 회헌 6조와 43조를 다시 읽고 현대의 커뮤니케이션의 도전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보스코로 하여금 가난한 청소년들과 서민적인 환경을 위한 교육과 복음화에 사회 커뮤니케이션을 사용함으로써 시대를 앞서가도록 이끌었던 성령으로부터 고무되는 우리의 의식을 쇄신시켜줍니다. 같은 성령께서는 오늘 우리를 창조적이고 용기 있고 조직적인 사람이 되도록 움직이고 계십니다. 부록은 계획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도 안에서 나열한 측면들과 제시된 지침을 따라서 우리 관구 안에서 사회 커뮤니케이션을 체계적으로 진단하고, 계획하고, 실현시키며 검증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부록들은 사회 커뮤니케이션 안에서 고무와 양성, 보스코가 지녔던 동일한 사목적 사랑을 가지고 우리의 사회 커뮤니케이션 사업과 정보 그리고 공적인 관계들을 계획하고 운영하도록 도와줍니다. 저는 아직도 가지의 방법론적 제안을 첨가하고 싶습니다.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관구 계획은 가능한 다양한 차원에서 많이 나은 참여를 통해서 만들어지고 실현되어야 합니다. 또한 계획은 관구의 고무와 통치 기구에 의해서 항구하게 고무되고 주기적으로 평가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조직적으로 만들어진 계획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정을 함께 걸어가고 있는 청소년들과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문화를 고무하는데 도움이 되고, 함께 나누고 참여하는 계획에 관심이 있습니다. 같은 주장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지나치다고 생각될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서 목표에 도달하는 것과 함께 걸어가는 여정 안에 있는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공동의 계획을 공감하고 계획의 일부라는 인식을 하면 할수록 우리는 공동체와 질적인 삶을 건설하는 능력을 얻게 것입니다.

번째는 우리 관구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상황을 고려하는 것입니다. 문헌(SSCS) 제시하고 있는 지도는 우리 모두가 즉시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주의와 관대함을 가지고 필요성과 우리의 여력에 따라서 우리가 해낼 있는 과정들을 선택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 커뮤니케이션에서 골리앗의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교육 공동체, 우리의 단체들 안에서 대안적 수단을 가지고 보다 정의롭고 형제적인 사회를 복음화시키며 교육하고 건설하는 다윗의 기회들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치들, 우리의 수단들과 우리의 능력을 인식하고 협력을 조직하고 만들어내며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우리 공동체 밖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그들과 함께 협력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다양한 맥락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육화시키기 위해서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양순해지는 우리의 손으로 직접 만져보도록 하는 지혜이며 하나의 정책입니다.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관구 계획은 예수께서 밀가루 속에 들어있는 누룩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에 비유하신(마태 13,33 참조) 복음의 역동성 안에 우리의 희망을 표현하고자 합니다.


3.2.3. 사회 커뮤니케이션 안에서 살레시오 회원들의 양성을 위한 지침


가난한 청소년들에게 봉사하는 가운데 그리스도를 따름을 증거하는 것보다 통교적인 살레시오 공동체나 살레시오 교육사목 공동체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복음에 대한 증거는 모든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근본적인 메시지입니다. 만일 이것이 없다면 이론도, 기술도 이것을 대체할 있는 커뮤니케이션 수단도 없습니다. 보스코와 가난한 청소년들에게 보이는 충실성은 증거와 나눔, 그리고 마지막 숨까지 사명에 전적인 봉헌을 함으로써 모든 것을 전하도록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바로 같은 동기로 인하여 보스코는 전통적이든 시대를 앞서가는 것이든 언어, 수단이나 도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런 수단들을 가지고 청소년들과 서민들에게 기쁜 소식을 증거하고 선포할 있었고 이와 같은 방식으로 그들을 정직한 시민, 착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 있었습니다. 우리는 비가노 신부님이 보스코는 천재적인 사회 커뮤니케이터(social communicator) 소개하는 표현을 읽을 놀람을 금치 못하게 됩니다(ACG 302, pp. 8-12 참조). 보스코와 청소년들에게 충실한다는 것은 훌륭한 양성과 함께 본성 안에 우리가 지니고 있는 좋은 선물을 발전시키면서 우리를 명백한 증거자가 되고 훌륭한 사회 커뮤니케이터가 되도록 인도합니다.

이미 1981년에 에디지오 비가노 신부님은 살레시오 회원들을 위한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양성의 종합적인 제안을 다음의 가지 차원으로 발전시켜 제시하셨습니다. 기초로서의 일반적 차원, 고무자와 교육자의 차원, 전문적인 준비 차원(ACG 302 참조). 2000년에 베키 신부님은 위에서 소개한 회람서한에서 주제를 다시 다루면서 우리에게 자격을 갖추는 것이 긴급하게 요청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가야 하는 유일하고 유익한 길은 양성입니다. 새로운 문맹퇴치 운동, 매스 미디어 문화 안에서 읽고 있는 능력은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고 있으면서 신앙에 대해서는 모든 신자들을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교육자들과 복음전파자들은 그것에 더욱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합니다!(ACG 370, p. 22).

본부의 사회 커뮤니케이션 () 2004년에 새로운 형태로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그들은 사회 커뮤니케이션에서 양성에 대한 수도회의 다양한 계획에 대한 역사를 연구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같은 환경 안에서 양성이 수도회의 초기양성에 제공했던 자료들을 수집했습니다.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세계적인 자문을 구하기 위해서2004 7월에 로마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자문은 사회 커뮤니케이션 안에서의 양성여정 계획에 대해 성찰했고, 양성을 이끌어나갈 몇몇 기준과 양성여정 중에 실천 가능한 선택을 가지고 수도회 안에서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양성의 현실과 관련된 자료들에 대해서 분석하고 해석한 것을 사회 커뮤니케이션 () 제출했습니다.

양성부() 함께 사회 커뮤니케이션 () 자문으로부터 제시된 성찰로부터 출발해서 다음에 출판하게 사회 커뮤니케이션 안에서 살레시오 회원들의 양성을 위한 지침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6개년 고무 계획 안에서 미리 제시된 개입 하나입니다(ACG 380, p. 48 참조). 이제 저는 교육자와 사목자로서 또한 커뮤니케이터로서 살레시오 회원의 양성을 항상 하도록 보증하고 있는 자료들을 받아들이도록 양성 담당자들을 초대합니다.

양성을 위한 관구 대리와 위원회는 지침서로 조명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관구 대리와 위원회와 함께 내용과 실천 양식을 찾을 것입니다. 그들은 초기양성뿐만 아니라 평생양성도 고려할 것입니다. 초기양성에 대해서는 Ratio에서 모든 단계에 해당하는 양성계획 커리큘럼에 대한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지침을 첨부하는 형식이 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다음과 같은 많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에 대한 요구; 오늘날 청소년 문화와 대중 문화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고 그래서 매우 통교적인 살레시오 생활과 일에 대한 경험과 성찰의 고무, 초기 양성기 이전에 받은 교육 안에서 같은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커뮤니케이션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조직함; 양성 담당자들과 피양성자들을 교육하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 커뮤니케이션 교육에 대한 양성의 공간을 만듦; 언어, 예술과 미디어에 대한 실습실 설비와 새로운 기술 특히 교육적인 상호관계를 위해서, 신앙을 선포하고 기념하기 위해서, 가치에 대한 담론과 나눔을 위해서, 상징적이고 의식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새로운 기술의 실현; 전통적인 언어와 가난하고 대안적이며 대중적인 수단을 가지고 사람들 가운데서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획득하고 증진시킴; 디지털 언어의 문법을 배우고 지식, 커뮤니케이션과 만남의 기회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이용; 기타 등등.

같은 경우에도 양성 담당자들과 교육자들, 그리고 양성 공동체라는 여정을 건설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에 있는 양성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성공하면 할수록 보다 충만하게 지침서의 목표에 도달하게 것입니다. 어떤 스승도 제자가, 특히 참여와 삶의 친교인 지혜와 커뮤니케이션의 기술 안에서, 가르침을 받기 위해 자기 자신을 내어 놓지 않는다면 아무도 가르칠 없습니다. 자체가 평생양성이라고 말할 있습니다.


4. 결론


세례자 요한의 탄생일에 편지를 마치면서, 그분은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가장 사람(마태 11,11), 엄격함과 본질의 사람, 진솔한 말과 새로운 것에 개방시키는 사람, 진리와 확실성을 사랑한 사람, 강하고 투명한 증거의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분은 오시는 말씀을 선포하는 사막에서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그들 가운데 계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을 가르쳐주신 스승이었습니다. 그분은 커뮤니케이터들을 위한 찬란한 이콘이십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보스코는 아버지 대한 그들의 사랑과 감사를 앞다투어 표현하기 위해서 경쟁을 벌이던 살레시오 가족과 청소년들, 살레시안들과 협력자들과 졸업생들의 진정한 축일인 세례자 요한이 탄생하신 날에 그의 영명축일을 지냈습니다. 좋은 일을 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일은 알려져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신 분이었습니다. 교육은 마음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사랑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사랑받았다는 것을 느껴야 한다 것을 이해하신 분이었습니다. 이것이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살레시안의 언어입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 모두와 우리 각자의 삶에 의미를 지녔던 보스코께 감사드리기 위해서 그분의 아들로서 영적으로 그분께 가까이 다가가도록 합시다. 우리는 그의 신앙 체험, 그의 생활 계획, 청소년들의 구원을 위한 열정을 우리의 것으로 삼았던 순간부터 그분 없이는 어떤 것도 없다고 말합시다. 우리의 애정은 자연스럽게 보스코와 그의 카리스마, 그의 사명과 선택, 그리고 교회와 사회에 봉사하기 위해 좋은 책들을 확산시키는 과정에서 그가 했던 선택에 충실하려는 쇄신된 임무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오늘날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에 많은 영향을 받고, 새로운 언어에 그토록 민감해 하며, 유능한 교육자들과 지도자들을 많이 필요로 하는 청소년들에게 충실하려는 쇄신된 임무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위의 가지 충실성에 대한 빛과 신뢰를 발견하기 위해서 보스코의 계획적인 편지를 다시 읽는 것도 우리에게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도전에 그분이 지니셨던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어머니시며 스승이신 거룩하신 성모 마리아께 좋은 교육자-사목자-통교자가 있도록 여러분과 여러분의 지향, 그리고 여러분의 노력을 맡기겠습니다.


파스칼 챠베스 총장 신부

1 BENEDETTO XVI, Omelia per il solenne inizio del Ministero Petrino, OR, 25.04.2005

2 역주. 양털로 만든 영대를 빨리움이라 한다. 교황 즉위 미사 빨리움을 걸치는 예식을 하게 되는데 이는 잃어버린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 착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교황님은 즉위 미사 강론에서 빨리움의 의미를 설명하시면서 교황이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이들을 마음에 품고 계신 목자로서의 사랑을 표현하셨다.

3 역주. '어부의 반지' 사람 낚는 어부로 불리움 받은 베드로의 후계자임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죽음의 바다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생명에로 끌어올려야 하는 사명을 일깨운다.

4 Epistolario di S. Giovanni Bosco (a cura di E. CERIA), vol. IV, pp. 318-321

5 Il Progetto di Vita dei Salesiani di Don Bosco - Guida alla lettura delle Costituzioni, Roma 1986, p. 363.

6 Pubblicata in ACS n. 302, 1 ottobre 1981

7 CG 24, n. 137.

8 Pubblicata in ACG n. 370, 8 dicembre 1999.

9 역주, 사도 바오로가 아테네의 아레오파고 법정에서 지적이지만 우상숭배로 가득 사람들을 만나서 지방 사람들이 이해할 있는 적합한 말로써 복음을 전하고, 복음 선포에 생명력을 보여주었다(사도 17,22-31참조). 이런 의미에서 아레오파고는 오늘 복음 선포의 새로운 모델로 제시되고 있으며, "과거에 당시의 하느님 계획을 알아들을 있도록 예언자들을 도우신 것과 같이 오늘날에도 교회가 현대의 징표를 해석할 있도록 도와 주시는 성령"([새로운 시대], 22)께서 당신을 계시하시는 장소가 된다. 각자에게 각자의 (문화, 눈높이) 건네는 것을 아레오파고라고 한다면, "현대의 첫째가는 아레오파고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서 이른바 지구촌을 형성해 가는 커뮤니케이션의 세계"([새로운 시대], 1)라고 있다. 아레오파고는 바로 통교이고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커뮤니케이션의 구체적 수단인 매스 미디어"([새로운 시대], 125 참조) 선용(善用)이야말로 오늘의 아레오파고이고, 성령의 영역이다.

10 Cf. F. LEVER, a cura di, I programmi religiosi alla radio e televisione, LDC, Torino 1991, p. 138.


11 Cf. F. PASQUALETTI, New Media e cultura digitale. Una sfida all’educazione, in Orientamenti pedagogici, vol. 51, gennaio - febbraio 2004.

12 역주, 재핑(zapping)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의 채널을 이리저리 변환하는 것을 말하는 용어. 리모콘의 사용이 보편화된 이후 프로그램을 수시로 선택, 변경하고 프로를 끝까지 보지 않고 다른 프로그램으로 중간 중간 이동해 버리는 경향이 강해져 방송사간 시청률경쟁이 더울 치열해졌으며 시청자를 자사 프로그램에 붙들어 두기 위한 이러한 경쟁이 프로그램의 내용을 더욱 감각적이고 흥미위주의 선정적 방향으로 변질시키는 경향을 초래하고 있다.

13 Cfr. G.S. JONES (a cura di), Virtual culture: Identity & communication in cybersociety, London, Sage, 1997.

14 S. AUKSTAKALNIS - D. BLATNER, Silicon mirage. The art and science of virtual reality, Berkeley (CA), Peachpit Press, 1992.

15 역주, 디지털 노마드는 21세기형 정보유목민으로 첨단 정보통신기기를 활용하여 정보를 소비하고 생산하는 주체를 일컫는 말이다. 일과 주거에 있어서 유목민처럼 자유롭게 이동하고 자유로우면서도 창조적인 사고방식을 갖춘 사람들을 의미한다. 과거 아날로그 시대에 노마드가 보헤미안이나 집시 등의 형태로 사회의 주변부이자 문제아로 분류되었었다면, 디지털 시대에서는 오히려 각광받는 인간유형으로 자리잡고 있다. 디지털 노마드는 디지털 프로슈머(생산자이면서 소비자)이면서 이랜서(elancer, 사이버공간에서 영업과 작업을 수행하는 프리랜서)이기도 하다. 디지털 시대를 앞서가고 이끌어갈 있는 주도세력으로 성장할 잠재력을 가진 인간유형으로 주로 최첨단의 산업 영역에서 디지털 자본주의를 창출하는 신진세력인 셈이다.

16 Cfr. J. E. BERENDT, The third ear. On listening to the world, New York, Henry Holt & Company, 1992.

17 MB II, 45. Cf. Cost.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