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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우리를 데려가시는 곳

주님께서는,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2코린 12,9).


토리노, 202398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 수도회 회원들에게 보낸 편지로 여러분께 인사드렸던 다른 많은 경우와 마찬가지로, 깊은 형제애를 담아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 글은 매우 각별한 감회를 담고 있습니다. 사실, 이 편지는 곧 보내드릴 생활지표 해설과 함께 제가 총장으로서 여러분께 드리는 마지막 편지입니다. 물론, 몇 주 후에 제29차 총회 소집 공고를 보내드리는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지난 79, 교황 프란치스코께서 저를 추기경으로 임명하신 후 제 삶이 큰 변화를 겪게 될 것임은 이미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79성 베드로 광장 삼종기도에서 발표된 추기경 서임 소식 이틀 후, 제가 여러분에게 보낸 편지에서 오는 2024731, 주님의 뜻이고 주님께서 평화와 건강을 허락하신다면,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저에게 다른 영역에서 교회를 섬기라고 요청하시는 일에 헌신하기 위해 총장직 사표를 제출하겠다고 여러분과 살레시오 가족들께 말씀드렸습니다. 이렇게 이 편지를 특별한 감회로 보낸다는 이유를 설명해 드립니다.

이 서한의 제목은 몇 년 전 수도생활에 관한 책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한 매우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하나의 신앙고백이자 희망으로 가득 찬 성소 응답이 될 것입니다.1

거의 10년간 돈 보스코의 후계자로 봉직하면서 제가 살아오고 경험한 것에서 출발하여, 우리 수도회가 당면하고 있는 현재의 순간을 인식하며 가능한 한 명료하게 비전을 제시하려는 목적으로 전 세계의 모든 형제에게 이러한 마음을 전합니다.

이미 2015, 돈 보스코 탄생 200주년을 맞아 살레시오회원 개개인에게 ‘나의 꿈’을 묵상하는 여정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저는 우리가 걸어온 좋은 여정 덕분에 오늘날 우리 수도회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여전히 직면하고 있는 주요 과제가 무엇인지를 매우 간단하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말씀드리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2015725일에 돈 보스코 탄생 200주년의 결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2 형제들 각자와 우리 수도회를 위한 저의 꿈이 무엇인지 여러분에게 밝혔습니다. 마음속으로 느낀 대로 이를 밝혔고 이를 개략적으로 표현한 다음, 이를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전개했습니다.

  • 행복한 살레시오수도회를 꿈꿉니다.

  • 신심 깊고 하느님으로 가득 찬(신앙의 여정이며 하느님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수도회를 꿈꿉니다.

  • 젊은이들과 가난한 이들에게 열정을 쏟는 살레시안들의(절대로 권력이나 돈이 아니라 항상 봉사를 추구하는) 수도회를 꿈꿉니다.

  • 진정한 복음 선포자이며 신앙 교육자의 수도회를 꿈꿉니다.

  • 언제나 선교적인 수도회를 꿈꿉니다.

이 ‘꿈’을 가진 지 8년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 긴 기간 동안 많은 경험을 했고, 수도회로서 우리가 걸어온 길은 멀고 강렬했습니다. 많은 좋은 성과가 있었지만, 여전히 몇 가지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저는 이 마지막 편지를 통해 신앙의 관점에서,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 습득하고 내면화한 경험에 비추어, 이렇게 남아 있는 과제들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앞에 놓인 빛과 그림자, 성과와 과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도미니코수도회의 총원장이었던 티모티 래드클리프(Thimothy Radcliffe) 신부님의 저서를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하고자 합니다. 얼마 전에 그는 21세기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의 글은 평범한 그리스도인의 삶과 관련된 내용으로 시작하지만, 제가 읽고 판단하기에 축성된 수도생활, 특히 우리 살레시오 수도자들에게도 똑같이 타당하고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두 가지 유혹을 피해야 합니다. 그 첫 번째는 우리 자신을 겟토에 가두려는 유혹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에 동화되어 세속화된 문화에 순응하려는 유혹입니다. () 우리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그들의 문제를 나누고, 교회의 가르침과 교리의 그늘에서 그들의 편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나설 수 있고 함께 나누어야 할 말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3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이 편지의 내용과 제가 여러분과 나누고자 하는 내용을 생각하면서, 저는 제가 지난 몇 년 동안 살고, 믿고, 생각하고, 기도하고, 숙고한 저의 관점과 해석을 여러분에게 정직하게 제시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다른 많은 해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직무를 수행하는 기간 동안 얻은 우리 수도회와 살레시오 가족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제 비전을 아주 간결하게 제시합니다.

다음은 몇 가지 주요 요소입니다.

  • 수도회로서 우리는 매우 평화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여러 차례 반복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이를 다시 강조합니다. 관구들의 삶은 계속 이어집니다. 수도회의 어려움은 다름 아니라 135개 나라 92개 관구에 약 14,000명의 돈 보스코의 살레시오회원으로 구성된 기관이 겪는 전형적인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수도회에 존재하는 깊은 친교의 분위기를 부각하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는 모든 관구와 총장 및 그 평의회 사이에, 그리고 몇몇 관구들 사이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함께 걸을 때 느껴지는 조화와 친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요컨대, 모든 관구의 참되고 진정한 동반을 실현하는 것이 가능했고 앞으로도 가능할 것입니다.

  • 저는 우리가 하느님께 점점 더 속하기를 추구하는 축성된 이가 되어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그렇게 수도회를 독려했습니다.4 2014년 제28차 총회를 마치고 제시한 계획 노선을 담은 첫 번째 메시지부터, 항상 축성생활 차원에 우선순위를 두었습니다.

  • 지난 몇 년 동안에도 수도회가 회헌 2조를 구체적으로 살아 “교회 안에 청소년, 특히 더 가난한 청소년에게 하느님 사랑의 징표요 전달자(2)임을 증거하면서 좋은 길을 걸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수도회는 청소년과 어린이들, 특히 가장 가난한 이들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관구에서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는 여정을 이루는 가운데 항상 청소년, 특히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우선적인 배려를 했습니다. 그들 청소년은 ‘우리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5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제가 절대적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총평회에서 살레시오 사명과 관련하여 가장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권을 고려하지 않은 결정을 단 한 번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제 개인과 두 총평의회의 여러 평의원 각 개인을 걸고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 기간에 우리가 이 우선권을 표명하지 않은 관구는 전 세계 모든 관구 중 단 한 곳도 없었으며, 대체로 관구장과 그 평의회에서 매우 잘 받아들여졌습니다.

우리가 겪을 수 있는 큰 위험에 대해 이미 말했습니다. 즉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봉사하지만,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있지 않고 ‘가난하게 살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중에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 지난 몇 년 동안 각 관구장들을 개인적으로 동반하고 관구에서 그들의 직무수행에 가까이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왔는데, 이는 꽤 잘한 선택이었다고 만족스럽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0년 동안 임명한 157명의 관구장들은 그들 직무에서 어떤 식으로든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으며, 총장 및 그 평의회와 친교가 친밀함으로 또 서로에게 큰 도움을 줬고 유익했던 현실에 대한 성찰과 인식의 교환으로 표현되었습니다.

  • 복음화와 신앙의 명시적 선포는 최근 몇 년 동안 수도회의 여정을 강력하게 특징짓는 요소입니다. 또한 현 6년 회기 동안의 우선적 정책 노선으로 제안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수도회의 청소년사목 부문이 계속해서 제공하는 빛은 분명하고 중요하며, 우리 현존 안에서 교육과 복음화의 도전에 맞서는 데 도움을 바라는 이들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동시에, 전 세계 많은 지역에서 매일 다른 종교와 상호작용한다는 사실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한 적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과 특수성에 주의를 기울이려고 노력했습니다.

  • 또한 지난 몇 년 동안 교회 안에서 복음을 위해 우리가 수행하는 사명 때문에 우리 수도회에 대한 감사와 이에 따르는 우리의 부채 의식이 커지고 강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가 인정받고 존중을 받는 수도회라는 것을 저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명확하게 인식합니다. 이것은 제가 장상연합회 소속 다른 수도회 장상들과 자주 만나면서 느낀 점이기도 합니다.

  • 돈 보스코 가족인 살레시오 가족으로서 우리는 단순하지만 부단하게 좋은 여정을 계속 이어갑시다. 가족 정신으로 항상 성숙하고, 정체성과 소속감에서도 성장하며,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를 가시화하고, 특히 그중에서도 살레시오 가족의 아버지이자 일치의 중심인 총장의 모습과 역할에 대해 누누이 언급하고 싶습니다.6

또한 매년 이탈리아에서, 최근에는 살레시오 장소의 가장 중요한 곳인 토리노-발독코에서 열린, 살레시오가족세계협의회 소속 단체 총책임자들의 참여가 점점 많아지고 매우 의미 깊어지는 것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싶습니다.

코로나 시대에도 살레시오영성의날의 성장과 발전에 대해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전 세계를 강하게 때린 이 타격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많은 고통과 피해를 줬고, 로마와 토리노, 그리고 수도회의 모든 지역(, 많은 관구)에서 동시에 열리는 영성의날에 자극과 참신함을 줄 수 있는 해결책을 모색하도록 우리에게 더욱 창의적일 것을 요구했습니다.

  • 우리의 가장 큰 선물은 살레시오 사명으로 드러나는 우리 정체성의 카리스마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른 수도회나 여러 교회 단체는 자기 단체가 가진 카리스마를 재해석하고 재구현해야 했습니다. 돈 보스코의 카리스마는 그럴 필요가 없었으며, 돈 보스코 시대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파견된 이들은 청소년들이고 청소년으로 남아 있기에 우리 사명의 수령자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돈 보스코와 함께 가난하고 버림받고 위험에 처한 청소년들, 노동 계층의 청소년들, 서민 환경의 청소년들, 아직 복음화되지 않은 민족의 청소년에 대한 우리의 우선권을 재확인합니다.

  • 최근 몇 년 동안, 항상 수도회의 이전 여정과 일치하여, 우리는 ‘선교 사업’과 선교지를 돌봤습니다.

우리는 선교사 형제들이라는 선물을 통해 가능한 한 모든 대륙에 있는 다른 관구의 성장과 발전을 돕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매년 꾸준한 반응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관구와 특별지구 설립에 동반했습니다.

우리는 아랍 및 이슬람 세계 일부 지역에서 의미 있고 적격한 진출을 이루려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 우리는 더욱더 국제적인 공동체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과감하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일부 형제들에게는 이것이 불편하거나 심지어 어려운 새 현실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실, 출신과 문화의 다양성에서 출발하여 하나의 사명으로 우리가 일치와 친교를 구축하는 것은 항상 어려운 일입니다. 동시에 훨씬 더 예언적이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수도회의 미래는 출신과 소속 국가와 민족의 문화적 다양성으로 점점 더 특징지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한 마디로 좀 더 다양해집니다.

어쨌든 주 예수님의 복음으로부터 시작하여 이러한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돌보는 것에서 우리는 항상 우리의 사명 수행을 돕고 지원하는 힘을 발견합니다.

  • 수도회는 관구들 간의 도움을 통해서든 총장 및 그 평의회의 개입에 의한 것이든 인적 자원 측면에서 귀중한 연대의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습니다. 많은 관구와 일부 글로벌 또는 국제 기관 및 활동이 요구하는 긴급성 정도에 따릅니다.

6년 회기에 저는 다양한 국제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모든(또는 가능한 한 많은) 관구의 도움을 받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살레시오 수도자들이 다양한 활동으로 특정 기간 도움을 줄 수 있게 해준 형제들이나 여러 관구의 관대함에 감탄하며 감사드립니다. 이는 매우 긍정적인 상황을 입증하는 것이며, 앞으로도 계속 강화해 나갈 것입니다.

  • 주님은 살레시오 축성생활에 많은 성소의 선물을 보내시며 우리를 축복해 주십니다.

지난 10년간 매년 평균 442명의 수련자가 있었습니다. 큰 선물입니다. 주님께서 돈 보스코의 살레시오회를 계속 돌보아 주시고, 이런 방식으로 청소년을 당신께서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계속 보여주시니 감사드립시다.

물론 뒤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성소들을 어떻게 더 잘 돌봐야 하는지를 강조할 것입니다. 이러한 성소의 출발은 제각각이고 대륙마다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주님의 축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우리의 과제는 이 선물에 절대적인 책임감과 통찰력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 수도회의 경제적 연대 또한 매우 긍정적인 현실입니다.

관구의 약 3분의 2가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매우 취약하고 항상 불균형의 위험에 처해 있으므로, 우리는 이런 복잡한 현상에 대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다행히도 이러한 상황은 일반적으로 잘못된 관리의 결과가 아니라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명에 우선순위를 뒀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어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많은 관구는 매우 가난한 나라, 가장 가난한 나라에 있기 때문에 수도회의 도움 없이는 생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일부 관구들 사이에 연대와 도움의 좋은 표시와 제스처가 보입니다. 다른 관구 및 나라와 밀접하게 결연을 맺은 여러 나라의 선교국들이 있습니다. 총장과 그 평의회는 돈 보스코의 후계자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세 개의 큰 선교국이 훌륭하게 모금하고 언제나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중요한 기여 덕분에 많은 관구에 큰 지원을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성과는 눈부시며 여기서 공개적으로 치하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미국의 뉴로셸 선교국, 스페인의 마드리드 선교국(Misiones Salesianas), 이탈리아의 토리노 선교국(Missioni Don Bosco)이 바로 그들입니다.

  • 사회커뮤니케이션 분야는 특히 많은 관구에서 상당한 발전을 이루며 계속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미 후안 벡키(Don Juan E. Vecchi) 신부님은 ‘살레시오 사명에서 커뮤니케이션’7이라는 서한에서 중요한 성찰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리고 파스콸 차베스(Pascual Chávez) 신부님은 같은 주제에 대해 또 다른 중요한 편지를 썼습니다. ‘사회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접경에서 돈 보스코의 용기로’8라는 제목의 이 서한은 사회커뮤니케이션이 살레시오 사명의 우선 분야 중 하나임을 강조하며, 돈 보스코 자신이 이미 직감한 바 있고, 당시 가장 발전된 커뮤니케이션 수단인 양서 보급의 중요성을 강조한 1885319일의 ‘양서의 보급’9에 관한 회람 서한을 들어 “수도회를 위한 사회커뮤니케이션의 진정한 선언문”으로 여길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10

특히 많은 관구가 오늘날의 커뮤니케이션 상황에 민감하게 대응하며 이 분야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항상 ‘조금 늦다’는 느낌을 받거나, 대규모 커뮤니케이션 구조에 영향을 주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이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까운 곳과 먼 곳의 사람들에게 다다를 수 있는 매우 직접적인 채널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의심할 여지 없이 세상 속에서 자라나는 하느님 나라를 위한 살레시오 사명 수행에 도움을 줄 가시성을 가지고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 우리가 꽤 많은 진전을 이루고 좋은 성과를 거둔 또 다른 영역은 사명의 공유입니다. 살레시오회원과 평신도가 같은 사명 안에서 일치하고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우선, 의심할 여지 없이 우리가 많은 진전을 이루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여전히 개인과 단체의 저항이 있지만, 후퇴를 허용하지 않는 강한 신념도 있습니다.

문화 및 영토와 관련된 어려움이 있음을 느낍니다. ‘하나의 정신, 하나의 사명’으로 살아가기 위한 전망을 제시하는, “살레시오회원과 평신도: 돈 보스코의 정신과 사명 안에서 친교와 나눔”11이라는 주제의 제24차 총회를 실행으로 옮기는 차원에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개인 및 그룹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어딘가는 살레시오 축성생활 성소가 풍부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또는 권력과 통제력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방금 말씀드린 것이 사실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어떤 경우든 삶의 필요가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무와 통치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물러서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전체 수도회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더욱 호소력 있는 것이 된 좋은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돈 보스코의 카리스마는 ‘독점적 주인’이 없기 때문에 축성생활자 수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사명에서 상호 보완성의 큰 가치에 대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교회에 주시는 성령의 선물입니다.

방금 인용한 제24차 총회 문헌의 서문에서 “전염을 시키고 발산하는 빛과 힘의 고리 안으로 많은 사람들, 가족, 운동을 끌어들이는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 돈 보스코와 영원히 함께하기를 원했던 첫 소년들의 상속자인 우리 살레시오회원는 우리 시대의 수많은 평신도, 남녀 평신도들과 함께하며, 같은 부르심을 느끼고 청소년의 아버지요 스승의 마음과 방식으로 활동할 수 있기를 요청합니다. 그 빛과 힘의 고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하자고 제안하는 일입니다.”12

여기서 저는 우리가 추구할 가치가 있으며, 돈 보스코가 열어준 길을 따라 우리가 모두 점점 더 편하게 함께하는 여정을 계속 이어간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는 교회와 친교를 이루며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를 세우고, 무엇보다도 교황 및 지역 교회와 친교 속에 살아가는 살레시오수도회와 가족입니다.

우리 회헌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살레시오 성소는 우리를 교회의 중심에 있게 하며 그 사명에 전적으로 봉사하게 한다. () 우리를 통해서 교회가 ‘구원의 보편 성사’로 세상에 드러나도록,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건설에 이바지한다.” (C 6)

이 기간에 우리는 살아있는 교회 의식과 친교를 계속 강화해 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가끔 듣고 있는 “우리의 일만을 하고 있다.”는 일부 사람들의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지닌 교회성 및 지역 교회와 친교가 언제 어디서나 완벽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쨌든 확실히 이것은 우리가 보살피는 수도회 정체성의 한 요소이며, 우리가 계속 성장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이미 특별총회는 “우리의 사명은 교회 사명과 다르지 않으며, 단지 그것에 참여하여 어느 특정한 측면, 특정한 사목을 담당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교회의 전체 사명에 대한 그 개입의 모든 정통성과 힘을 받습니다. () 우리가 교회를 위해 일하는 것이 분명합니다.”13라고 명시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에 돈 보스코께서 하신 말씀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교회와 교황님에 관한 것이라면 그 어떤 수고도 과하지 않습니다.”14

다시 한번 특별 총회에 따르면 “돈 보스코는 당대의 교회 현실에 몰두하여 살았다. 교회가 구원의 성사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살레시오회원은 지역 교회의 사목에 적극 참여하며, 보편 교회의 문제에 열려 있고, 주교들과 특히 교회 일치의 살아있는 표징인 교황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15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입장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 같고, 확실히 이것은 수년간의 수도회와 교회의 진짜 여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이러한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

  • 좋은 일들이 많았던 지금까지의 여정을 돌아보는 마무리를, 살레시오 수사 형제들 언급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20221231일 현재, 통계에 따르면 우리 수도회의 수사 회원은 1,434명이고, 그중 종신서원자 1,216, 유기서원자 218명이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 수도회 구성원의 10.24%를 차지합니다.

전 세계 살레시오 관구들을 방문하면서 ‘살레시오 수사의 위기’ 또는 ‘살레시오 수사 성소의 위기’에 대한 질문을 받곤 합니다. 저는 항상 수도회 내 우리 수사 형제들의 성소에 특별한 위기는 없다고 명확하고 단호하게 응답했습니다. 어쨌든 ‘위기’에 대해 말하고 싶다면, 축성생활과 교회를 괴롭히는 그 자체의 위기이며, 이는 다음 페이지에서 언급하려는 지루한 현상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서, 우리 수도회에서 살레시오 수사 성소의 카리스마 정체성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조차 없음을 덧붙여 말해야 합니다. 또한 돈 보스코 스스로 “사제도 신학생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는데, 여러분들이 그 일을 할 것입니다.”16라고 말했듯이, 살레시오 사제들에게는 가로막힌 많은 사람과 단체에게 다가갈 수 있는 큰 선물이자 귀중한 성소적 보완의 선물이라고 덧붙여 말씀드립니다.

다른 한편으로, 수사들은 돈 보스코가 ‘살레시오 삶의 소중한 실험실’인 발독코에서 처음부터 이미 직감했고, 첫 번째 회헌에서 이를 표명했던 우리 수도회 평신도 축성생활 차원의 모든 신선함을 계승합니다. 실제로 살레시오수도회 역사를 보면 돈 보스코와 함께한 초기부터 현재까지 뛰어난 살레시오 수사들에 의해 모든 대륙에서 융성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은총과 성령의 개입을 통해 아르테미데 잣티의 성덕이라는 위대한 선물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2022109,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파타고니아의 살레시오 수사이자 간호사였던 성 아르테미데 잣티를 시성하셨습니다. 우리의 창립자이신 돈 보스코 이후 순교자(이미 우리는 루이지 베르실리아 주교와 칼리스토 카라바리오 신부라는 선교와 헌신의 두 거인 성인의 은혜를 누리고 있기에)가 아닌 첫 살레시오 성인이십니다. 매우 의미심장한 사실입니다. 그 시성식 날에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가득 채웠던 기억과 감정은 아직도 우리의 머리와 가슴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시성식을 위해 로마에 온 637명의 살레시오 수사들의 깊은 감격, 그리고 자신과 같은 동료 수사 중 한 명이 이미 성인들 사이에서 자신들의 전구자가 되는 것을 목격하는 그들의 기쁨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수도회에 주어진 매우 특별한 은총이었습니다. 물론 이 고유한 성소는 우리가 계속 육성하고 발전시켜야 할 소중한 선물입니다.

여기서, 아르테미데 잣티의 시복식에 즈음한 돈 벡키의 서한에 담긴 말을 제가 다시 한번 반복하는 것보다 더 나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르테미데 잣티 수사님의 시복이라는 특별한 기회를 맞아, 저는 올해를 시작으로 앞으로 몇 년 동안 각 관구, 각 공동체, 각 형제에게 성소 사목 안에서 살레시오 수사 성소를 위해 새롭고 특별하며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요청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기도하고, 소개하고, 제안하고, 초대하고, 환영하고, 동반하고, 개인적 및 공동체적으로 이를 살아가면서 말입니다.”17

수년 동안 받은 많은 선물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수도회 안에서 이 소중한 살레시오 성소를 증진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계속합시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지금까지의 내용은 우리가 수행하고 있는 여정에 대해 말씀드린 것입니다. 희망을 품어도 될 근거와 주님께 감사드려야 할 이유가 많습니다. 모든 형제가 이 사실을 잘 인식하고 또 믿음으로 하느님 성령의 현존과 우리 수도회를 인도해 주심을 감사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수도회의 발걸음을 더디게 하는 몇 가지 도전(또는 한계)을 말씀드리기 전에, 이 편지의 초안을 작성하면서 저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미 초안 작업을 마치고 세 번째 교정하면서, 교회 친교 건설에 대한 우리의 기여 측면을 살펴보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잠시 했는데, 예기치 않게 2018524, 즉 약 5년 전의 날짜가 적힌 제28차 총회 소집 서한이 첫 번째로 나타났습니다.

이를 살펴보니 ‘우리 스스로 던질 수 있는 몇 가지 질문’18이라는 제목의 단락이 가장 앞에 등장했습니다.

몇 줄을 읽으면서 기억을 되살려보니, 당시 여태껏 걸어온 여정 그리고 많은 성과는 물론 더 높이 날고 싶은 우리의 열망을 짓누르는 짐으로 남겨진 단점들도 함께 보여주면서, 5년이 지난 지금 제가 이곳에 모아 놓은 많은 것들의 서문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짠했습니다.

따라서 여전히 유의미하다고 생각되는 이 페이지를 추가하여 포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보다 지금이 더 많습니다.

현실은 획일적이지도 단순하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돈 보스코가 성령으로부터 받은 카리스마를 향한 우리 수도회의 충실성 및 복음의 빛에 비추어 더 큰 근본성, 더 큰 용기, 더 분명한 명확성, 더 확실한 정화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발걸음을 완수하도록 촉구하는 상황을 발견하게 됩니다.

  • 이 복잡하고 다양한 현실 속에서 청소년과 그들의 세계 및 상황에 전적으로 헌신하고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대다수 형제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청소년과 그들의 세계에 자신들이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다고 느끼는 다른 형제들이 있습니다.

  • 대부분의 형제는 가장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에 대해 매우 분명하고 단호한 선택을 하고, 존엄성이 짓밟히거나 침해당하는 것을 매일 경험하는 사람들을 위해 강력한 선택을 하는가 하면, 자신의 편안한 생활 공간이나 안락한 곳으로 숨어드는 형제들도 있습니다.

  • 대부분 회원은 소년과 청년들을 위해 언제 어디서나 사제였던 돈 보스코처럼 사제 직분을 수행하며 살지만, 우리도 예외가 아닌 교회 자체에 많은 해를 끼치고 있는 성직자주의 풍조에 물든 다른 회원들도 있습니다.

  • 많은 형제들이 온전한 무관심, 절제, 금욕, 너그러움, 특히 우리의 총애를 누리는 수령자들에 대한 관대함으로 다른 이들을 위해 일하지만, 흔히 돈이나 다른 관계를 탐하는 것과 연관된 권력 추구 움직임에 관여함으로써 축성된 수도자로서의 정체성과 자유를 잃어버리는 형제들도 있습니다.

  • 대부분 형제는 요한 칼리에로가 말한 “수도자든 아니든 나는 돈 보스코와 함께 있겠다.”는 말을 진정한 열정과 애정을 가지고 일상에서 실천하며 살고 있습니다. 반면에 다른 형제들은 살레시오 정체성의 결여로 인해 돈 보스코의 살레시오회원인 축성생활 수도자 사도가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거나 환영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구에서 단순히 사제직을 수행하기 위해 수도회를 떠나기를 요청합니다.

  • 사명을 위한 큰 선물로서 평신도와 이를 공유하는 것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형제들이 있습니다. 반면, 여전히 심하게 저항하거나 심지어 거부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들은 평신도가 우리 직원이라는 사실은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사명과 그에 수반되는 일을 같은 수준에서 나란히 공유하는 것은 거부합니다.

  • 양성 단계 속에 있는 대부분의 젊은 회원들은 자신이 파견될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온 삶을 다 바칠 꿈을 꾸며 마음과 정신을 준비하고, 이 목적을 고려하여 지적 양성을 받고 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반대로 자신에게 권위와 ‘어떤 지위’를 가져다줄 자리와 책임을 꿈꿉니다.

빛과 그림자의 대비로 이루어진 우리의 현실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살레시오 가족 전체에게 생생하게 직설적으로 요청하셨던 것과 같은, 오늘날 특별히 우리를 겨냥하는 말씀인 “젊은이들의 깊은 열망을 실망하게 하지 마세요.”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교황님은 “젊은이들의 깊은 열망을 실망하게 하지 않도록 돈 보스코께서 여러분들을 도와주시길 빕니다. 그들의 생명, 개방성, 기쁨, 자유, 미래 등에 대한 요청, 더욱 공정하고 형제적인 세상 건설에 협력하고자 하는 마음, 모든 민족을 위한 개발 및 자연과 생활 환경 보호에 협력하고자 하는 바람을 여러분들이 실망하게 하지 않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의 모범을 따라 은총의 삶, 즉 그리스도와 우정 안에서만 가장 진정한 이상이 온전히 실현된다는 것을 경험하도록 그들을 도와주세요. 신앙과 문화와 삶 사이의 통합을 찾는 그들이 복잡한 현실을 해석하려 할 때,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에 그들을 동반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19

이 모든 것이 우리 안에 믿음으로 그리고 진정한 회심을 통해 극복된다면 -언제나 그리고 필요한 모든 것을 위해- 우리 수도회가 한 분이신 주님과 협력하면서 우리가 증거하도록 부름을 받은 빛을 더 많이 반사하고 우리가 행하도록 요청받은 선을 더욱더 많이 행할 수 있는 훨씬 더 활기찬 단체가 될 것이라고 말씀드리게 합니다.

그러므로 제가 수도회의 미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몇 가지 요소를 되새기고자 합니다.

  1. 영적인 삶 및 하느님과 관계를 살아가는 방식에서 분명한 약점이나 연약함이 걱정됩니다. 모든 축성생활 삶에 매우 많이 존재하는 것으로, 역시 살레시안으로서 우리에게도 있고, 카리스마 정체성 자체에 영향을 주는 요인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저는 몇몇 형제들이 카리스마 정체성, 즉 축성된 사람으로서 우리 살레시오 정체성, 혹은 살레시오 생활에서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발견하고 매우 놀랐습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무엇인지, 우리 카리스마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어야 할 것인데,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저는 살레시오회원인 마르코 바이(Marco Bay) 수사의 도움으로 역대 총장들의 서한에서 자료를 찾아보며, 에지디오 비가노, 후안 에드문도 벡키, 파스콸 차베스, 그리고 저의 글에서 살레시오회원인 우리의 카리스마 정체성을 시사하는 글과 인용문을 모았습니다. 최종 결과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지난 45년 동안 역대 총장들 돈 보스코의 살레시오회원으로서 우리의 정신과 행동을 돌보고, 기르고, 구축하는 데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요소임을 강조하면서, 축성된 사람인 살레시오회원의 카리스마 정체성에 대해 언급하는 수백 가지의 표현을 -출처가 어디인지 관련 인용문도 함께- 떠올릴 수 있습니다.

저도 그렇고 앞서 언급한 제 전임자들 모두 이를 소홀히 할 수 없으며, 항상 보장하고 보호하며 심화시켜야 할 매우 중요한 것으로 여겼음이 분명합니다. 다른 관점에서 다르게 말하면, 이것은 우리 수도회는 물론이고, 감히 말하건대, 축성생활 전체를 괴롭히는 ‘중대한 취약성’입니다.

제 생각에 큰 가치를 지녔다고 여겨지는 제27차 총회의 개회사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총장은 총회 개막연설에서 당시 수도회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우리가 염려하는 것은 거의 생존의 문제처럼 수도회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께서 친히 주신 기준에 따른 진정한 사회, 교회적 중요성인 우리의 예언 능력, 즉 다시 말해 사도적 열정인 카리스마 정체성에 대해 걱정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5)”20

축성은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무조건 바치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우리를 예수님의 존재 방식과 행동 방식의 살아있는 기념21으로 만들어 줍니다. 그러니까, 설령 애석하게도 현재의 많은 인류학 모델, 또는 더 구어체로 말하면 오늘날 세계의 많은 생활 방식이 축성생활에서 가장 진실한 것과 자기 삶으로 많이 증거해야 하는 것들을 잃게 할 위험에 빠지게 하면서 수도생활을 다른 방향으로 밀어붙이고 있더라도, 그것이 우리를 형제들과 수령자들에게 전적으로 헌신할 수 있게 해줍니다. 존재와 고유 삶의 증거보다(단순하고 조용하고 주목할 만한 성과가 없는 증거일지라도) ‘실행’과 ‘효율성’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단기 계획과 행동으로 범위를 좁히도록 밀어버리는 세태에서 말입니다.

오늘날 축성생활의 저자와 해석자들은 축성생활을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어지러운 삶의 방식으로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는 궁극적으로 재생산이 불가하고 황폐한 존재 유형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세상의 종말이 임박한 것처럼 더 많은 것을 해야 하고, 더 많은 것을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사도적 프로메테우스주의(apostolic prometheism)가 침투했습니다! 우리만이 이 순간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믿게 하는 사고방식, 마치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어깨에 짊어진 무게와 부담에 짓눌리는 한이 있더라도 최고의 성과를 내도록 우리를 몰아붙이는 사고방식입니다. 그리고 결국 이러한 광적인 ‘사도성’의 생활 방식은 우리의 노력을 무익함으로 씁쓸하게 보답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왜냐하면 사도적 프로메테우스주의는 복음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분명 아니기 때문입니다.

돈 보스코의 잘 알려진 “우리는 천국에서 쉴 것이다.”라는 말씀을 사목적인 마음과 영혼 없이, 영양 공급 없이 자신을 소진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우리는 틀린 것입니다.

이 광란, 하느님과 그분의 성령이 없는 이 리듬, 즉 일부 회원들이 치명적으로 몰입하여 살면서 거기서 빠져나올 가능성이나 빠져나오려는 의지 없이 살기로 결심하는 분위기는 비인간적이며, 따라서 그것은 즐거운 삶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평화와 선함, 젊은이들 사이에 열정적인 현존, 우리가 사는 삶에 대한 진실하고 깊은 기쁨을 전하는 행복한 살레시오회원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22

수년 동안의 양성과 공부 기간 중 우리는 칼 라너(Karl Rahner)가 자신의 유언으로 여기고 싶었던 그의 유명한 글을 분명히 접했을 것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내일의 종교인은 무언가를 경험한 신비주의자일 것이다. 아니면, 내일의 종교성은 더 이상 만장일치의 분명한 대중적 신념에 기초하여 공유되지 않기 때문에 종교인일 수 없을 것이다.”23

이 신념 위에 잉크의 강이 흘러내렸습니다. 어쨌든 신앙의 미래, 그리고 저는 이제 하느님과 그분의 불가항력적인 현존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생겨나는 개인적인 신앙 자체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진정한 체험이 없다면, 믿는 이들이 없을 것은 물론이고, 축성생활자들도 없을 것이며, 젊은이들을 위해 온전히 삶을 바칠 돈 보스코의 살레시오회원도 더더욱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결과는 최근 6년간의 자료를 바탕으로 실시한 수도회 탈회 원인에 관한 연구에서도 드러납니다. 영적 삶 및 하느님과 관계 약화 가 모든 사례에서 매우 강력한 원인으로 밝혀졌습니다. 신앙의 삶과 하느님 체험(그리고 기도의 경험)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차원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반복적 일상, 피상성, 압박하는 세속주의, 소셜 네트워크의 중독적 사용과 그 세계에 사로잡힘과 같은 요소들이 우리 삶에 깊은 영향을 미쳐서 필연적으로 우리 삶을 침식하고 마모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상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축성생활이 예언자적 사명과 그 매력을 유지하려면, 가까이 있는 이들과 멀리 있는 이들에게 충실한 학교로 계속 머물면서 예수님 중심성의 신선함과 참신함, 영성의 매력과 사명의 힘을 유지해야 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희망과 기쁨을 발산해야 합니다. 희망과 기쁨 말입니다.”24

이제 앞서 말씀드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저만의 성찰을 해보겠습니다. 우리는 확실히 “거행하고, 생활하고, 증거하는 신앙 사이에는 진정한 순환성이 없기 때문에 반복적 일상 행위에 빠지기 쉽다는 데 동의할 수 있습니다. () 하느님과 진실하고 개인적인 관계는 의도적이고 의식적으로 맺는 것이 아니며, 단지 신앙 실천을 ‘하는 방식’(예를 들어 철야기도회를 조직하고, 자료를 준비하며, 예식을 거행하고, 소셜미디어에 감상을 올리고, 다른 약속이나 소집과 관련하여 블러그에 다시 계획을 올리는 등)만으로는 기분은 좋아질 수 있지만, 그 전체가 교육적 전문성 및/또는 사목적 혹은 공동체적 전문성으로만 축소될 수 있습니다.”25

사실 제가 쓰고 있는 글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수도회 문헌들은 10년 주기로 우리에게 이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것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도록 초대하는 피정이 부족하지 않았고, 읽을거리도 모자라지 않았습니다. 평생양성을 위해 마련된 날들도 부족하지 않았으나, 결국 인생은 말로써 주고받는 생각으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경험으로도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경험에서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사도 17,28)는 것이 참으로 사실임을 강하게 느끼고 경험하기에 이른다면, 살레시오 축성생활자로서 우리 삶의 견고함은 어떤 무엇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다른 종류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 우리가 누구 안에서 안식을 누리며 누가 우리를 지지하는가에 대한 개인적이고 깊고 내적인 확신이 있다면, 우리의 수고와 반복적 일상 속이라 하더라도 살레시오회원으로서 우리 삶의 방식은 어떤 무엇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다른 종류가 될 것입니다.

살레시오회원이 이런 경험을 할 때, 그는 더 이상 자신 홀로 자신을 위해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을 위해 살아갑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느님 체험이라고 알고 있는 것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이 경험은 어떤 방식으로든 “더 이상 이해하기보다는 깊이 감동하는 곳, 더 이상 추리하지 않고 추앙하는 곳, 더 이상 지배하지 않고 종속되는 곳”26인 하느님의 신비 안으로 들어가게 해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같은 지점으로 돌아갑니다. 우리의 삶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셔야만 쉴 수 있다는 확신(적어도 우리의 생각 속에서는)으로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빈혈이나 건조증에 시달립니다. 그리고 저는 살레시오 형제들이 영적, 복음적 빈혈의 먹잇감으로 전락하는 것을 생각하기조차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실제로 “오늘날 수도자의 축성생활은 부인할 수 없는 ‘복음적 빈혈’을 앓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든 단체적으로든 () 이런 빈혈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축성생활 수도자의 삶에서 발산되어야 할 첫 번째 사랑인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열정을 회복해야 합니다.”27

결론적으로,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돈 보스코가 그리스도를 닮아 갔듯이 우리도 돈 보스코를 닮아야 합니다. () 그리스도에 대한 묵상은 분리할 수 없는 세 가지 요소, 그분을 더 깊이 알고, 더 강렬하게 사랑하고, 더 근본적으로 따르는 것으로 구체화 됩니다.”28

  1. 진심으로, 저는 여러분과 또 다른 우려를 나누지 않을 수 없는데, 매우 다양한 이유로 살레시오 삶과 수도회를 떠나고자 하는 마음을 먹는 형제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지금부터 말씀드리려는 내용에는 다른 이유가 제시되겠지만, 앞서 설명하고 언급한 내용과 분명히 연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회 총장 H. 콜밴바흐(Peter Hans Kolvenbach) 신부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이 많은 동료들을 소진하게 하는 것은 매우 모순적인 일입니다.”29

예수님을 충실히 따르려는 그 첫사랑에서 시작된 우리 살레시오 축성생활의 여정이 오늘날 어떤 형제로 하여금 “그들 등잔에 빛이 거의 없고” “소금 통에 맛이 거의 없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을 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8-30)고 말씀하신 주님의 초대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미 몇 년 동안 이에 관해 이야기해 왔지만,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현재 충실성이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조사한 통계가 이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축성생활 삶과 교회 생명 자체를 약화하는 ‘출혈’에 직면해 있습니다.”30

이는 우리 살레시오회원들이 지난 10년 동안 만족스럽게 극복하지 못한 부분입니다. 남자 수도회로서 우리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남자나 여자를 막론하고 모든 수도회와 단체에서 발생합니다. 또한 장상연합회 모임에서도 이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어쨌든 저의 첫 번째 걱정은 각별하고 우리 돈 보스코 살레시오회원들에게 해당합니다.

이러한 어려움의 원인은 매우 다양합니다.

  • 드물지 않게, 이 모든 것은 성숙을 달성하는 진정한 어려움과 관련이 있으며, 흐르는 ‘기류’에 의존하여 산만하고 집중력 없는 수도자로 살거나 또는 다른 사람들의 승인과 인정에 더욱 의존하고 매달리며 피상적으로 사는 생활 방식을 포기하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는 수년간의 여정, 수고, 시간 및 은총 작용의 여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때때로 일부 형제들의 복잡한 상황은 살레시오 축성생활에 임하면서 가져오는 ‘보따리’의 빈약함으로 인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축성생활이란 무엇인지 온전히 파악하고 인식하는 가운데 이를 잘 정착시키기 위한 길을 걷는 일은 항상 쉬운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명확하고 명료한 식별이 없거나 부족할 때도 있습니다.

  • 잘 아시다시피, 정서적 차원은 모든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또 다른 영역입니다. 저는 감정과 정서의 영역이 우리 삶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모두 정서와 감정, 느낌이 있고 이를 표현합니다. 모든 사람의 성숙도 수준은 각자의 존재와 행동을 결정하고 결정할 것입니다.

정서적으로 완전히 발달하고 성숙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취약성, 장해물, 방어적인 태도를 경험하는 다른 사람들은 해결되지 않은 모든 것에 대한 ‘청구서’를 조만간 내밀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관계에서의 어려움, 이성이거나 동성인 사람과의 문제, 혹은 권위 있는 사람과의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의 방식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정서적 공허함을 경험하고, 따라서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경험의 곤궁을 느끼는 것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는 형제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수도회를 버리거나 탈회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 다른 형제들은 비록 평온하지만, 모든 종류의 삶과 사회에서 누구에게든 수반되는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실제적이고 무거운 어려움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축성생활에도 차분하고 성숙하게 처리할 수 있고 처리해야만 하는 갈등들이 있습니다.

수도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자주 제시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공개적으로 드러내기가 쉽고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투사하기가 쉬운 이유 때문에 항상 모든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형제적 삶과 그 안에서 겪는(또는 겪는다고 믿는) 어려움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다음 단락에서 언급하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우리가 직면한 이런 심각한 도전에 대한 소개의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오늘날 우리 삶의 신앙적 차원과 관련된 모든 것들은 우리가 처한 현실적인 상황에 의해 좌우되고 우리 눈앞에서조차 뒷전으로 밀려나기 때문에 일부 수도자들은 “나는 여기까지다. 축성된 사람으로서, 살레시오회원으로서 살아갈 동기가 부족해서 더 이상 발걸음을 옮길 수 없다.”고 말합니다.

제가 앞에서 말했듯이, 진실은 이것에서 우리 수도회로서 심각한 약점 중 하나를 계속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우리가 계속해서 우선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할 진정한 ‘아킬레스건’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것은 모든 수도회(약간의 차이는 있겠으나 남자 여자 할 것 없이)에 해당하는 일반적인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최근 몇 년 동안 축성생활회와 사도생활단부에 가장 경종을 많이 울린 시급한 문제 중 하나입니다.31

이와 관련하여 SDB 양성을 위한 새로운 Ratio가 우리의 여정을 돕고 빛을 밝히는 도구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문헌 하나의 발표만으로 수도회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다고 순진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많은 요소도 고려해야 합니다.


  1. 저는 하려고 하는 것을 위한 공동체라는 공동체 삶의 상황을 접하게 될까 우려됩니다. 그것은 ‘기능적’이지 예언적인 것은 아니며, 따라서 청소년들에게 매력을 주지 못합니다.

앞서 언급한 수도회 탈회에 관한 연구에 비추어 볼 때, 탈회 이유 중 공통 분모는 공동체 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솔직히 말해서 이것이 항상 모든 경우에서 유일하고 진짜 이유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탈회를 요청하는 편지에 기록되지 않은 숨겨진 이유 또는 심지어 명시적이고 명백한 다른 이유, 그리고 개인적인 약점 등을 보여주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많은 경우 더 쉽고 편리한 ‘형제애 부족이라는 신화’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형제적 삶이 더 열정적이고, 덜 실용주의적이고, 덜 기능적이며, 건강한 감성이 풍부하고, 복음의 예언으로 관통된다면,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일 것이며, 직접 그 삶을 사는 우리는 보편적 형제애라는 이 귀중한 ‘복음적 유토피아’의 위대한 가치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서원한 회헌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살레시오회원에게 함께 살고 함께 일하는 것은 기본적인 요구이며 살레시오 성소를 실현하는 확실한 길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공동체 안에 모여, 가족정신으로 모든 것을 함께 나눌 만큼 서로 사랑하고 인격적인 친교를 이룬다. 이 공동체는 삼위일체의 신비를 반영한다. 우리는 그 안에서 마음의 갈망에 대한 응답을 발견하고 청소년들을 위해 사랑과 일치의 표지가 된다.”(49)

실제로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특히 개인주의 물든 환경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현존하는 여러 사회의 삶은 가혹한 활동주의 속에서 ‘서두르며’ 살아가고, 다른 사람과 관계는 망가졌으며, 살아 있는 많은 것들은 거의 전적으로 효율성과 목표 및 결과의 달성 여부에 의해 결정됩니다.

외로움이 지배적인 곳의 상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는 외로움이 많습니다. 또한 축성생활을 하는 수도공동체, 때로는 살레시오 공동체에도 외로움이 존재합니다. 요컨대, 기능적 역할과 운영에만 얽매인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높은 대가를 치뤄야 하는 공동체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이것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많은 상처를 주고 형제들의 성소 불꽃을 꺼버립니다.

이러한 위험에 직면하여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축성생활이란 친절하고 투명하며 진실한 인간관계의 드러나는 표징이 되도록 부름심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만남의 신비’32를 실천할 것을 축성생활자들에게 제안하셨습니다.

축성생활의 특징은 교황님이 친교의 전문가이자 장인33이라고 묘사하는 사람들의 현존으로 나타나며, 교황청 축성생활회와 사도생활단부(CIVCSVA)는 ‘공동체 안에서 형제적 삶’이라는 문서에서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형제적 친교는 그 자체로서 이미 사도직이며, 즉 복음화 사업에 직접 이바지하는 것입니다. () 형제애의 표징은 ()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거룩한 기원을 보여 주며 신앙을 향해 마음을 여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도생활의 모든 풍요로움은 공통으로 영위하는 형제적 삶의 질에 달려 있습니다.’”34

설령 많은 대가를 치르더라도, 너무 많이 뛰거나 쫓기고, 너무 많이 행동하고, 지배하고 군림하는 관리직에 직면해서 우리는 항상 더 내면을 가꾸고 소중히 여길 필요가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내면에서부터 출발할 때만 성숙하고 건강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데 필요한 내공을 얻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위해, 공동체 형제들을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풍요로워질 수 있습니다. 설령 우리 주변의 환경이 이 모든 것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방해가 되는 것 같더라도 말입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우리 공동체의 다문화적 현실은 공동체 건설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지만, 그 건설은 다른 사람들을 비하하는 사람들에게, 또는 그들을 멸시하지 않지만, 단순히 ‘내 것’이나 ‘우리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벽을 쌓고 세우는 사람들에게 맞서 싸우는 매우 강력한 예언적 징표가 되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입니다.

세상이 믿도록 우리는 하나가 되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요한 17,21). , 문화적 뿌리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르지만, 우리는 친교와 공동체를 만들 능력이 있습니다. 사실, “공동체는 친교로 영양을 공급받고 친교를 지향할 때 잘 이해되고 잘 보입니다. 환대, 인정과 애정, 약자 지원 및 사랑 등 모든 면을 갖추고 있어도 친교가 없는 공동체는 함께 사는 것이 좋은 사람들의 그룹이지만, 실제로는 개인을 고립시키는 것으로 전락하고 맙니다.”35

또한, 우리 공동체는 조급함, 스트레스, 실용주의에 맞서 기쁨을 제공하고 또 이를 증거해야 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형제적 삶 문헌에 “기쁨이 없는 형제애는 소멸하는 형제애다. 구성원들은 자신들 집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을 다른 곳에서 찾고 싶은 유혹을 곧 받게 될 것이다.”36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쁨은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능력과 함께 증언할 만한 가치를 분명히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형제들에게 충만함과 삶의 질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공동체는 재화의 친교를 통해 연대와 나눔의 위대한 가치를 증거합니다. 동시에 어떤 공동체가 됐든 우리 공동체는 삶의 선익을 위해, 그리고 세계 여러 지역에서 파괴적이고 비인간적인 소비주의에 맞서 절제와 금욕 문화를 경험하고 제안하는 장소가 되도록 요구받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문화를 제안하는 것을 넘어 우리 스스로가 더 절제하고 금욕적이어야 합니다.

  1.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가장 가난한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에 대해 저는 아직 만족하지 못합니다. 돈 보스코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마음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미치도록 사랑해야 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지난 10년 동안 방문한 118개 나라 중 항상 이를 기억하고 요청하지 않았던 관구는 단 한 곳도 없습니다.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돈 보스코에 대한 충심을 갖고 가장 가난한 이들을 버리거나, 잊거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항상 말해왔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들 청소년, 특히 가장 가난한 이들은 우리가 하느님과 만나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큰 민감성을 지닌 많은 형제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모두 그런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오늘 아침 저에게 편지를 보내주신 한 형제가 있는데, 저와 나눈 여러 이야기 중에서 그분의 말씀을 빌려 지금 여러분들에게 제안하겠습니다.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제 마음에 와닿는 말입니다. 조금 가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고, 약간 불편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이 형제와 총장이 비관적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수년 동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선교 활동과 근본적인 선택을 보여준 이 형제와 저 둘 다 절대로 비관적이지도 또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반대로 저는 모든 사람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우리 자신과 사랑하는 수도회에서 발견하는 좋은 점과 약점을 모두 호명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 것을 권합니다.

형제는 저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총장님께 고백합니다. 저는 우리 관구가 매우 훌륭하고 가치 있는 살레시오 사업을 가지고 있고 좋은 일을 많이 한다는 인상과 인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일반적이고 조직적인 수준에서- 삶과 열정이 부족하다는 인상과 느낌이 있습니다. ‘앉아 있는’, 만족하고, 다소 쾌락주의적이며 개선주의적이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참된 관심이 적은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돌보지만, ‘가난한 이들과 함께’도 아니고 ‘우리도 가난하지’ 않은], 개인이나 기관으로서 증거 능력이 거의 없는 관구라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스러운 살레시오회원 곁에- 선교사 생활보다 관록에 집착하여 사회생활을 더 원하고, 겉치레 태도를 보이며, 산만함으로 다양한 안락을 추구하고, 더 나쁜 것은 이런 모든 것을 정상으로 치부하는 ‘부르주아’ 살레시오회원들이 있습니다.”

랑하는 형제 여러분, 저는 이 말이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참으로 거룩한 살레시오회원이 있습니다. 대다수가 그렇습니다. 마음은 하느님과 젊은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서 사명에 헌신하는 살레시오회원이며, 수도회를 위대하게 만들고 유지하는 형제들이 대다수입니다.

리고 이런 식으로 살지 않는 다른 형제들도 있다는 것을 저는 고통스럽게도 시인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몹시 아프게 합니다. 우리가 모두 근본적인 방식으로 성소를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면, 젊은이들의 성소 응답은 놀라울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 우리는 더 열정적이어야 하며, 더 진정성 있는 삶을 보여줘야 합니다.

마 전에 읽은 글이 마음에 깊이 와닿았습니다. “[수도생활에서] 우리는 카리스마가 우리를 너무 불편하게 하지 않고 우리가 이 세상 시민들 사이에 잘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카리스마를 길들인다.’ 세상의 소금인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무뎌질 수 있으며, 그러면 자신들을 낳은 성령의 감화를 역사 속에서 육화하는 일에 진정 소용되지 못할 것이다. (…) 우리가 지나가는 세상의 모습을 선호하고,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보이게 해주는지 혹은 우리 갈증을 해소할 수 없는 [그런] 물의 조급한 소비자인지 [알지 못한 채], 이 속도의 현기증에 [취해] 여기에 합류한다.”37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저는 다음 총회를 개최가 멀지 않은 이 특별한 순간을 몇몇 빛으로 밝히려고 노력한 이 페이지들의 간략한 성찰을 마무리합니다.

믿음 안에서 항상 우선적인 것은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동반하신다는 확신입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이를 잘 표현하셨습니다. “친애하는 여러분, 우리는 일치와 진리의 성령에 따라 살아야 하며, 이를 위해 성령께서 우리를 깨우쳐 주시고 인도하셔서 우리 자신의 진리를 따르려는 유혹을 극복하고 교회 안에 전승되는 그리스도의 진리를 받아들이도록 기도해야 합니다.”38

의심할 여지 없이, 우리의 도움이신 어머니께서 우리 수도회와 살레시오 가족의 삶을 계속 동반하시며,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드님으로부터 많은 은총을 얻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와 같은 확신으로 저는 제 말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진심으로 사랑하는 돈 보스코께서 제4차 총회 준비를 알리는 기회에 매우 짧게 쓰신 인사 말씀으로 끝내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도움의 성모님께서 계속해서 우리에게 어머니로서 도움을 주시고,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진정한 추종자가 될 수 있는 은총을 주시기를 빕니다. 주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길 바라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의 참된 친구인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39

이러한 우리 아버지의 마음을 저도 표현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주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고 우리의 소중한 수도회를 계속 축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여러분 모두를 위해 저도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진실한 사랑을 담아,

앙헬 페르난데스 아르티메, SDB

총장

1F. PRADO (ED.), Adonde el Señor nos lleve. Vida consagrada en el mundo: tendencias y perspectivas, Publicaciones Claretianas, Madrid 2004, 280. 참조

2A. FERNÁNDEZ ARTIME, «생명을 얻고 얻어 넘치게» (요한 10,10). 200주년의 다섯 가지 열매, in ACG 421 (2015), 3-26.

3T. RADCLIFFE, Essere cristiani nel XXI secolo. Una spiritualità per il nostro tempo. Queriniana (= Spiritualità 143), Brescia, 2012. 2. 17.

4A. FERNÁNDEZ ARTIME, 하느님께 많이, 형제에게 많이, 청소년에게 많이 속하, in ACG 419 (2014), 3-30.

5 A. FERNÁNDEZ ARTIME, o. c., 20.

6 보스코의 살레시오 가족 카리스마 정체성 헌장, in J. RAPHAEL (A CURA DI), La Famiglia Salesiana di Don Bosco, Editrice S.D.B., Roma 2020, 8. 참조.

7J. E. VECCHI, 살레시오 사명에서 커뮤니케이션. «정말 놀랍다! 귀머거리를 듣게 하고 벙어리가 말할 수 있게 한다», in ACG 370 (2000), 3-44.

8 P. CHÀVEZ, 사회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영역에서 돈 보스코의 용기로, in ACG 390 (2005), 3-46.

9 G. BOSCO, Circolare ai Salesiani sulla diffusione dei buoni libri, in ISTITUTO STORICO SALESIANO, Fonti salesiane 1: Don Bosco e la sua opera. Raccolta antologica, LAS, Roma 2014, 481-485,

10 P. CHÁVEZ, 총장 서한, LAS, Roma 2021, 358.

11돈 보스코의 살레시오회 제24차 총, "살레시오회원과 평신도: 돈 보스코의 정신과 사명 안에서 친교와 나눔. 총회문헌", in ACG 356 (1996).

12같은 책, 20.

1320차 살레시오 특별 총회, 1972, no. 27.

14돈 보스코 전기 V, 577; 돈 보스코 전기 V, 411 (회헌 13조에 인용)

1520차 살레시오 특별 총회, O.C., 99.

16돈 보스코 전기 XVI, 313. 돈 보스코 전기 XVI, 264.

17 J. E. VECCHI, 아르테미데 잣티 수사 시복: 파괴적인 혁신, in ACG 376 (2001), 47.

18 A. FERNÁNDEZ ARTIME, 오늘날 청소년을 위해 어떤 살레시오회원인가? 28차 총회 소집 공고, in ACG 427 (2018), 7-9. 참조

19 FRANCESCO, Lettera del Santo Padre al Reverendo Padre Ángel Fernández Artime, Città del Vaticano 24 giugno 2015, in ACG 427 (2018), 9.

20 살레시오회 제차 총회, 복음적 근본성의 증인. 일과 절제, in ACG 418 (2014), 74.

21 축성생활, 22.

22이것은 제가 돈 보스코 탄생 200주년을 맞이해 ACG 421에 발표한 편지에서 꿈꿔왔던 ‘행복한 살레시오회원’에 대해 썼을 때 의미했던 것입니다. ACG 421 (2015) 참조.

23 Citato in questa occasione da J. A. PAGOLA, Testigos del misterio de Dios en la noche, in Sal Terrae, nº 1.030, Tomo 88/1, Santander, gennaio 2000, 30-42. K. RAHNER, Nuovi saggi, San Paolo Edizioni, Roma 1968, 24 참조.

24 FRANCESCO, 축성생활회와 사도생활단부 정례회의 참가자에게 한 연설, 로마, 2017128.

25M. BAY, Lettura interpretativa dei casi di abbandono dal 2016 al 2022, Edizione digitale ad uso del Consiglio generale in attesa di pubblicazione in questo numero degli ACG 참조.

26 K. RANHER, Glaube, der die Erde lieft, citato in J.A. PAGOLA , o.c., 31.

27 C. PALACIOS, Luzes e sombra da Vida Religiosa Consagrada nos días de hoje, in Convergencia, settembre 2011, citato da J. M. ARNAIZ, Los grandes desafíos de la vida consagrada hoy. Conferenza del settembre 2013.

28 P. CHÁVEZ, «너희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마르 8,28). 보스코의 시선으로 그리스도를 묵상하기, in ACG, 384 (2004), 40 in P. CHÁVEZ, 총장 서한, LAS, Roma 2021, 174.

29 G. URÍBARRI, Contro il prometeismo apostolico, in Sal Terrae, giugno 1999, vol. 87/6, p. 505.

30 FRANCESCO, o.c.

31 CONGREGAZIONE PER GLI ISTITUTI DI VITA CONSACRATA E LE SOCIETÀ DI VITA APOSTOLICA, Per vino nuovo otri nuovi. Dal Concilio Vaticano II la vita consacrata e le sfide ancora aperte. Orientamenti, LEV (= Documenti vaticani 2), Città del Vaticano 2017 참조.

32 FRANCESCO, 축성생활 해를 맞아 모든 축성생활자들에게 보낸 사도서한, Città del Vaticano 2014, 2.

33같은 . 또한 J. E. VECCHI, 친교의 전문가, 증인, 장인. 살레시오 공동 - 핵심고무자, in ACG 363 (1998), 3-42 참조.

34 CONGREGAZIONE PER GLI ISTITUTI DI VITA CONSACRATA E LE SOCIETÀ DI VITA APOSTOLICA, La vita fraterna in comunità. “Congregavit nos in unum Christi amor”, Città del Vaticano 1994, 54 (d’ora in avanti VFC).

35 P. CHÁVEZ, 총장 서한, o.c., 1176.

36VFC, 28.

37 J. A. GARCÍA-MONGE, Tener, acaparar, poseer… Ecología del alma liberada, in Sal Terrae, Santander, Febbraio 2000, volume 88/2, nº 1.031, p.139.

38 BENEDETTO XVI,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강론. 성령강림 대축일, 로마, 2012527.

39 P. ALBERA, Lettere circolari di D. Bosco e di D. Rua ed altri scritti ai Salesiani, Tipografia Salesiana, Torino 1896,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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