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enna 2013

주님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필리 4,4)


2013 생활지표


교육자 보스코처럼,

선으로 인도하는 교육을 통해서

청소년에게 기쁨의 복음을 제공합시다.



살레시오 가족의 사랑하는 모든 형제 자매들께


보스코 탄생 200주년 맞이 3 준비기간 번째인 올해는 그분의 교육학에 집중합니다. 2012 동안 우리는 그분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집중하였고, 청소년을 총애하는 것으로 점철된 그분 삶을 보다 이해하려 하였습니다. 그분께서는 이것을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맡기신 사명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바로 이런 목적으로 당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으셨습니다.

2013 우리의 목표는 그분의 교육적 제안을 심화하는 것입니다. 보스코께서 젊은이들에게 제공하려 하신 것이고, 그들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 그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인간적이고 그리스도인적인 관점에서 강한 인성을 형성하기 위해 당신께서 사용하신 수단입니다. 우리는 구체적으로 교육자이신 보스코에게 가까이 가길 원합니다. 따라서 예방교육을 심화하고 쇄신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2013 스트렌나의 주제입니다.

우리의 이러한 과제 수행은 지성적으로만 접근하는 것이 아닙니다. 살레시오 교육을 우리 시대의 감각과 요구에 맞게 쇄신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이에 대해 깊이 연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가 살레시오 성소를 살아내고 사명을 수행하려는 사회·경제·문화·정치·종교적 맥락들은 근본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아버지의 카리스마에 충실하기 위해, 그분께서 교육·사목적으로 제공하신 내용과 방식에 우리 자신을 일치시키는 역시 필요합니다. 오늘날 사회 상황에서 우리는 그분처럼 우리의 삶을 선물로 주고 청소년과 함께 청소년을 위해 일하며 그분처럼 성인聖人 교육자가 되도록 불리움 받았습니다.



예방교육의 재발견


우리는 보스코의 교육 경험을 재숙고하면서 오늘날 이것을 충실하게 다시 살도록 불리움 받았습니다. 몇몇 고유한 표현 양식이나 해석에서 그분의 예방교육은 확실히 이미 지나간 세상에나 어울리는 ‘한물 간’ 것으로 통하고 있음을 우리는 솔직히 인정합니다. 사실 지난 20세기 내내 교육, 심리, 종교, 정치, 문화, 철학, 과학, 민주주의 등의 분야에서 많은 혁명이 있었습니다. 세상은 이제 지구촌을 형성합니다. 세상의 모든 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매체에 대한 그리고 세계화에 대한 지속적인 쇄신이 스며들고 있습니다. 사고방식은 생산성, 효율성, 계산, 과학적 합리성 등에 의해 조건 지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이런 사회 해석의 틀로 낡은 해석의 많은 범주들은 지나간 것으로 여겨집니다.

오늘날 예방교육의 바른 실현을 위하여 우리가 기울여야 노력은 무엇보다도, 즉각적으로 프로그램이나 절차에 대해 생각하거나 혹은 언제든 무난하게 통용될 있는 ‘구호’를 강조하기보다는, 보스코의 방식에 대한 상황적 이해를 갖는 것이어야 합니다. 청소년을 위해, 서민을 위해, 교회를 위해, 사회를 위해, 수도자적 삶을 위해 그분이 취하신 방법이 어떻게 달랐는가 하는 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처음 주일 오라토리오의 젊은이들을, 발독코의 작은 신학원을, 살레시오 신학생과 비살레시오 신학생을, 선교사들을 교육하는 그분의 방식이 어떻게 달랐는지를 분석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피나르디 집의 초기 오라토리오에서 이미 몇몇 중요한 직관들이 있었다는 것을 살펴볼 있겠습니다. 이런 직관들은 인간적-그리스도인적 통합의 보다 깊은 가치들로 차차 발전합니다.

a) 교회, 도시 사회 그리고 서민 청소년 집단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융통성이 있는 구조( 보스코께서 오라토리오에 대해 생각하신 방식)입니다.

b) 서민 환경에 대한 존중이었고 그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었습니다.

c) 사제학교 환경이 그에게 전해 가톨릭 교육학의 가르침에 따라 교육의 기초를 세우는 종교였습니다

d) 종교적 양성과 인간적 발전 사이의, 교리교육과 교육 사이의 역동적인 짜임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교육과 신앙교육의 합치(신앙-삶의 통합)입니다.

e) 교육이야말로 정신을 밝게 비추기 위한 근본적인 도구를 구축한다는 확신이었습니다.

f) 교육, 그리고 교리교육 역시 시대적 상황과 자원에 맞는 온갖 표현 양식을 통해 발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형태든 학교 교육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이들을 위한 문해교육文解敎育, 일자리를 구해 , 주중의 임장지도, 연합회 상조회 활동의 전개 .

g) 여유 시간에 대한 바른 활용과 가치 부여였습니다.

h) 감응하는 사랑은 교육의 방식이고 보다 일반적으로는 그리스도인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훗날 예방교육이라고 명명된 방식은 그의 독특한 체험의 역동성에서부터 보편적인 방식의 시스템으로 알려지고 소개되었습니다. 보스코께서는 이를 다양한 그룹에 속한 청소년들의 교육과 재교육을 위해 제안했고 채택되길 원했습니다.

알려진 대로 그리고 「살레시오 가족 신원 헌장」에서 명시하듯이 예방교육은 “돈 보스코의 교육학적 지혜를 농축해 놓은 것이며, 그의 후계자들과 교회에 남겨 예언적 메시지를 구축한다. 이는 이성  종교  사랑에 바탕을 영적이며 교육적인 체험이다

이성은 의미 탐구, , 공부, 우정, 기쁨, 신심, 책임을 동반한 자유, 인간적 지혜와 그리스도인 지혜 사이의 조화 그리스도인 휴머니즘의 가치들을 강조한다

종교란 구원의 은총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하느님에 대한 열망을 키워 주며, 삶에 충만한 의미를 부여하고, 행복 추구에 대한 응답으로서 주님이신 그리스도와 만남을 돕고, 교회의 삶과 사명에 점진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은 효과적 교육 관계를 시작하기 위해 청소년이 사랑받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사랑받고 있음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는 특별한 유형의 인간관계이며, 청소년의 마음속 잠재력을 일깨워 주고 그러한 잠재력을 봉헌에 이르도록 성숙시키는 감응하는 사랑이다

오늘날, 어느 때보다도 이성  종교  사랑은 교육 사업에 있어서 불가결한 요소들이며, 새로운 세대의 기대에 부응하는 보다 인간적인 사회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기 위한 값진 누룩이 된다.”1)

과거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것에 대해 정확히 알게 되면, 위대한 직관들과 예방교육의 덕목들을 현재 상황에 맞게 번역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상적 배경(하느님의 보다 영광과 영혼 구원; 살아 있는 신앙, 굳은 희망, 신학적-사목적 사랑; 착한 신자 좋은 시민; 명랑, 공부, 기도; 건강, 공부와 성덕; 신심업, 도덕, 문화, 시민정신; 복음화와 문명화 ) 대한 것이든, 방법에 대한 개략적인 지침(두려움의 대상보다는 사랑의 대상이 ; 이성, 종교, 사랑; 아버지, 형제, 친구; 친밀감, 특히 오락의 순간; 마음을 사로잡기; 제자들의 선익을 위해 ‘봉헌된’ 교육자; 마음껏 뛰며 달리고 소리치는 폭넓은 자유 )이든 이론 실천 계획을 재해석하면서 원칙 · 개념 · 원래의 방침 등을 현대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런 모든 것들은 21세기 ‘새로운’ 청소년들의 양성에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과학적 학문들 조차도 그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광활하고도 드러나지 않은 상황들과 문제들로 확연히 변모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살아야만 하며, 이런 자신과 직면하도록 불리웠습니다

특별히, 이것에 대해 깊게 분석하면서 가지 전망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1. ‘정직한 시민’과 ‘착한 신자’의 회복

1800년대와 비교하여 근본적으로 변한 세상에서, 공공이나 국가 세상의 선익이라는 차원을 외면하면서 협소하고·지엽적이며·실용적인 기준에 따라 ( 보스코에게는 당신이 행하신 이상으로 하실만한 조건이 없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은 아마도 사회학적인 그리고 신학적인 기준에서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현대 인식의 도덕적 성숙은 저개발의 정책 차원을 외면하면서 궁핍의 원인에 대해, 모든 이들이 비난하는 사회 환경의 원인인 악의 구조에 대해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에 실패한 원조 개념의 한계를 만납니다. 사랑에 대하여 단지 자선, 긴급구호 등으로 이해하는 것은 다른 이에게 사탕발림이 되면서 일부의 안락만을 지향하는 발전 모델에 기여하기에, 선의에도 불구하고 유통기한이 지난 연대의식의 표현으로 그치고 ‘거짓 사마리아인’의 분위기 안으로 빠져들 위험이 있습니다

공의회 이후 ‘교회의 가난’ 그리고 ‘가난한 자의 교회’라는 말은 다양한 얼굴을 지니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모순이 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억해야 점은 복음을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듯이 정치와 경제로 인한 비극적인 영향도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신앙은 역사로 축소되지 않지만 역사와 맞닿아 있습니다. 만일 이웃 사랑이 그리스도인 메시지의 전체가 아니라면, 그것이 핵심이고 근본이라는 점을 부정할 있습니까?

시민들에 대한 사회 보호와 보장을 책임진 현대의 정부 조직에 맞서 교회는 지난 과거에 자신이 지녔던 자선과 지원의 역할을 위한 공간을 이상 갖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고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세속 주도 정부 주도 사상을 키우는 이러한 가설을 반박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너무도 자주 복지 상황에 대한 기준점이 되고 있습니다. 자선과 원조가 현대 사회와 민주 정부에서는 쓸모가 없는 낡은 것이고 필요 없는 도구라고 하는 말을 여러 동안 들었습니다. 오늘날, 세속적인 환경에서조차 그리스도인 자원봉사라든지, 본당연합회기관지역교회 등에서 실시하는 이른바 3영역-비영리- 활동의 사회적 기능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수십 억의 사람들이 ‘사랑의 문화’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교황 바오로 6세께서 호소하시고 후계자들이 다시 강조한 바와 같이, ‘정직한 시민 착한 신자’라는 보스코의 공식을 적용하려는 우리에게서 ‘하나의 각별한 응답’을 찾을 있겠습니까?

정직한 시민’과 관련하여 깊은 성찰이 요구됩니다. 무엇보다도 사유적인 차원에서 다양하고 뛰어난 철학적 · 인간학적 · 신학적 · 과학적 · 역사적 · 방법론적 고찰에 주의를 기울임과 동시에, 인간 · 청소년 · 서민 발전의 주제와 관련이 모든 내용에 이에 대한 고려가 확장되어야 합니다. 이런 성찰은 회원들 각자와 공동체의 경험 실천적 계획에 구체적으로 반영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저는 살레시오 회원들에게 두드러진 의미를 지니는 23 총회가 교육의 중요한 공간과 목적으로 제시한 “자선의 사회적 차원”, “정치적 책임 참여를 향한 청소년 교육”, “우리에게 약간은 경시됐고 알려지지 않은 영역”(23 총회 203-210-212-214 참조) 대해 되새기고 싶습니다.

한편으로 우리가 “주님의 기도 정치”가 아니면 하지 않도록 보스코의 선택에 대해 이해한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순수한 의미의 교육을 그가 처음에 선택한 만큼 우리 스스로에게 그리고 결과적인 실천으로 우리들의 생활에서 ‘정치’를 제외해야 하지만, 젊은이들을 교육하는 있어는 중요한 사회-정치적 차원에 조건이 붙거나 제한을 둬서는 됨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보스코가 여러 정부로 부터 겪어야 했던 다양한 어려움들뿐 아니라, 교육자들의 부족한 민도나 역사적-사회적 맥락에 대한 이해 부족 등으로 순응주의 고립주의적 경향을 갖도록 하는 이바지하지는 않았습니까?

우리는 보스코의 ‘사회-정치-교육적 선택’을 현대적으로 재확인하는 방향으로 계속 진행해야 합니다. 이것은 특정 정당의 정책적 선택과 연결된 이념적 활동주의에 대한 진작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포기할 없는 인간적이고 그리스도인적인 가치를 지속적으로 참고하면서, 사명으로서 사회공동체의 선익을 도모하는 삶에 투자하도록 하는 사회 정치적 감수성을 길러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유한 영역에서 보다 일관된 실천적인 실행을 가르치는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교육의 사회적 질質(비록 완벽하게 실현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선언이나 법규에 청소년 조건의 근본적인 것으로 이미 내재된) 대한 재숙고는 보다 넓은 의미에서 사회적 의무에 대한 명확한 체험의 생성을 독려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는 현실주의 구체성과 함께 교육 자체의 보다 넒은 비전에 영향을 받는 이론적이고 중요한 고유 임무를 제안합니다. 선포나 주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정립되고 구성된 프로그램으로 전환할 있는 이론적 개념과 구체적 실천 계획 또한 필요합니다.

교육적 차원에 대하여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은, 그것이 모든 영역(도시계획 관광에서부터 자주 시장 원리를 최우선으로 삼는 현실들, 스포츠 라디오텔레비젼 방송에 이르기까지)에서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에 정치적 도구를 통하여 영향을 주는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살레시회는, 살레시오 가족은, 우리 관구는, 단체는, 공동체는, 집은 모두 이런 방향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라고 자문해 봅시다. 그들이 청소년과 맺는 연대는 단지 감정적인 활동이나 시혜의 몸짓인지 아니면 확실한 기여이며, 청소년 서민계층과 보다 나약한 이들의 요구에 합리적이고, 적합하며 정교한 응답이 되고 있는지?

또한 ‘좋은 신자’의 회복에 대하여도 말해야겠습니다.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으로 타오른 보스코는 상황의 모호성과 위험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추정되는 위험에 맞서 문화경제적 자원이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악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방식을 찾았습니다.

의식적으로 인격체의 진리인 개인의 부르심을 드러내고 이를 살도록 돕는 것을 말합니다. 믿는 이들은 그렇게 하여 보다 값진 기여를 있게 됩니다.

믿는 이들은, 낮은 차원이나 의존적인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의 무조건적이고 창조적인 사랑을 말해 주는, 피조물의 조건에 의해 규정된 현존 개인적인 관계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자기 존재는 선물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께 보답을 드려야 위치에 있습니다. 이런 관계를 벗어나서는 삶의 의미를 찾을 없습니다. 막연히 알아듣고 원하는 ‘그 너머’는 절대입니다. 낯설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에게로 소환하는 삶의 근원으로서의 절대입니다.

초기 단계에서 이성이 깨닫는 인격의 진실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조명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님은 당신 말씀을 통해, 특히 하느님 아들의 인식을 드러내는 당신의 인간적-신적 현존의 능력을 통해 사람에게 자신에 대해 그리고 자기 운명에 대해 충만한 인식의 지평을 열어 줍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아들로 세워졌고 역사 안에서 그리 살도록 불렸습니다. 이는 현실이고 선물로써, 사람은 의미를 점진적으로 관통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되는 성소는 인간임을 실현하기 위해 부과된 사치나 외적 부속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창조 구조의 골격을 이루는 온전한 완성이고, 진실성과 충만함의 불가결한 조건이며, 보다 근본적인 요구의 충족입니다.

보스코의 ‘좋은 신자’를 어떻게 실천할 있겠는가? 오늘날 공식적으로 혹은 주로 종교적이고 사목적인 기획에서 또는 새로운 근본주의 선민주의의 위험에 맞서 어떻게 계획에 대한 인간적-그리스도인적인 전체성을 보호할 있겠는가? ‘단일 종교 사회’라는 맥락 속에 있던 전통적 교육을 현대적 다원주의 앞에서 어떻게 개방되고 동시에 비판적인 교육으로 변모시키나? 독립적으로 살며 동시에 다종교다문화다인종인 세상에 참여할 있도록 어떻게 교육하는가? 특정 형태의 교회론에 적용되던 순명의 전통적 교육을 넘어서는 현실 앞에서 수구적이지 않고 건설적 비판의 태도를 지닌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키우고, 성숙한 자유로운 결정의 능력, 상호간의 커뮤니케이션에 개방, 사회구조에 능동적으로 진입하는 것과 연결된 자유와 책임의 교육을 어떻게 증진할 것인가?


2. 최대한 자질을 갖추고 청소년에게 돌아가기

보스코가 애써 노력하여 세운 삶의 방식, 그의 사목 교육적 유산, 그의 시스템, 그의 영성은 청소년들 가운데 있습니다. 보스코를 통한 청소년 사명의 단일성은, 특별한 이유로 인해 청소년들과 물리적으로 접촉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 그의 활동이 청소년들에게 직접적인 봉사가 아닐 때라도 · 적절히 조명되지 않은 교회의 압력 앞에서 세상 모든 청소년들을 위한 창립자의 카리스마를 지속적으로 옹호할 때에도, 항상 그리고 어디서든 현실이었습니다. 살레시오 사명은 봉헌이고, 청소년들을 향한 ‘총애’이며, 총애란 처음 시작부터 하느님의 선물이고 우리의 지혜와 마음 안에서 자라고 다듬어져야 것임을 압니다

진정한 살레시안은 청소년 현장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살레시안이란 청소년에 대한 근본적인 지식을 지닌 사람들로 청소년의 가슴이 뛰는 곳에서 심장이 박동치는 사람들입니다. 살레시안들은 그들을 위해 살고 일합니다. 그들의 요구와 문제에 응답하기 위해 투신합니다. 청소년은 살레시안 삶의 의미입니다. , 학교, 감정, 여유시간 살레시안은 청소년에 대한 이론적이고 근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런 지식들은 청소년의 진정한 요구가 무엇인지를 밝혀내고, 시대의 요구에 적합한 청소년 사목을 탐구하게 합니다.

그리고 사명에 대한 충실성이 우리 마음 안에 각인되기 위해서는 현대 문화의 ‘매듭’들과 연결이 되어 있어야 하고, 현대의 정신 행동들의 주조틀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분석의 신중함, 비판적인 의견의 관련성, 심도 있는 문화적 대응, 상황에 대해 심리적으로 공유하는 능력 등을 요구하는 정말로 도전에 직면하여 있습니다. 그럼 개의 질문으로 제한하여 정리하겠습니다.

a) 우리가 개인적으로 그리고 공동체적으로 우리의 삶을 봉헌할 젊은이들은 정확히 누구인가? 그들은 뭐를 원하고 희망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하느님은) 그들에게 원하나? 오늘의 청소년에 대해 알고 있나? 150 보스코께서 대응하셨던 것에 비해 우리는 오늘날 청소년의 질적양적 문제에 대해 확신을 지니고 있나?

b) 교육적 여정의 이론적 성찰 차원에서 그리고 사목의 실천적 차원에서 우리의 사목적 전문성은 무엇인가? 전문성은 창의성, 연성, 융통성, 운명론 안에서 실험대를 발견하는가? ‘우리 스스로를 토착화’ 하기 위하여 수도회의 총회 문헌들, 여러 단체들의 보다 중요한 결정들, 또는 총장신부님의 편지들에만 의존할 없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c) 현대의 교육적 책임은 집단적이고 협력적 참여적일 밖에 없습니다. 지역사회에서 그리고 또한 우리의 청소년들이 살아가고 있는 지역사회 밖의 관계망에 대한 우리의 접속점은 무엇인가? 그렇게 글로벌화된 교육 관계망 내부에서 참여와 협력을 위한 우리의 구체적인 기여는 무엇인가? 우리는 가능한 해결책들에 대해서 다른 이들의 그것과 비교하면서 고려하고 있는가?

d) 교회가 청소년들과의 대면에서 적절한 장치를 갖추지 못했다면, 살레시오 회원들이나 살레시오 가족 역시 그런 것은 아닌가?  


3. 마음의 교육

최근의 이십 동안 살레시오회의 새로운 세대들은 예방체계에 대한 옛스런 소개 앞에 감각이 멍해지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날 이를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혹은 이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청소년과 맺는 ‘온정주의적 관계’라고 여기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분께서 살았던 상황의 관점에서 보스코를 바라본다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에게서, 앞선 세기(16-18세기) 교육에서 많은 측면들이 되풀이되어 교육적 온정주의를 뛰어넘는 본성과 천재성을 발견할 있습니다

당시 교육 관련 이야기들은 사실 정치적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온정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유럽 사회의 일반적인 경향을 반영하였습니다. 반면 보스코의 삶은 청소년과 어른의 상호 관계라는 씨줄과 낱줄의 직조물로 드러납니다

여러분에게 솔직하게 말씀드리니 누구도 마음 상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반복하여 말합니다. 여러분은 모든 것을 훔쳐갔습니다. […] 아직 가난한 마음이 내게 남아 있었으나, 사랑마저도 여러분이 훔쳐 갔습니다. […] 주님 안에서 여러분을 사랑하겠다는 생생한 희망만이 남아 있는 마음에 모든 것을 여러분이 소유하였습니다.”2)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많은 일화나 표현들은 예방교육, 감응하는 사랑, 애덕 등과 같이 알려진 표식 이외의 공존, 현대성, 현재성 등을 지칭합니다. 보스코에게 있어서 마음을 소유한다는 것은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아이들은 보스코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안에서 자신을 되찾고, 강하게 되며 그것을 즐겼습니다. 오늘날 당연히 인간관계의 방식은 변했습니다. 다원주의 사회, 지식 형성의 글로벌화, 인터넷, 세계 여행 등등.

우리는 자문할 있습니다. 현대의 청소년들과 성인들이 교육자 살레시오 회원들의 가슴 속으로 들어가거나 들어갈 있는가? 그곳에서 발견하는가? 관료, 달인, 그러나 공허한 커뮤니케이터,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님의 은총에 의해 완성되고 고무된 풍부한 인간성, 신비체 등등?  만일 이런 것들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보스코는 다음과 같은 말을 되풀이하지 못할 것입니다. “살레시오 회원의 가슴 속에서 그리스도님 은총의 풍요로움과 깊이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수도회 살레시오 가족은 볼장 것이다.” 



살레시오 가족을 위한 구체적인 임무


보스코의 교육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출발하여, 지금까지 진행된 성찰로 조명하는 살레시오 가족을 위한 2013 생활지표의 굵직한 기준점과 임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기쁨의 복음 

보스코 역사 전체를 특징지으며, 그분의 여러 다양한 활동들의 정신입니다. “나자렛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은 당신 자신을 ‘기쁨의 하느님’으로 계시하시고,3) 복음은 하느님 당신의 참행복에 사람들이 참여할 ‘행복선언’으로 시작하는 ‘기쁜 소식’이다. , 사람이 하느님의 복되심에 동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스쳐 지나가는 감정이라기보다는 삶의 어려운 순간에서도 굳건히 견딜 있게 하는 내적 에너지이기에 피상적인 것이 아닌 심오한 선물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바오로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우리의 모든 환난에도 기쁨에 넘쳐 있습니다.”(2코린 7,4)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세상에서 느끼는 기쁨은 부활의 선물이며, 우리가 영원히 누리게 완전한 기쁨에 대한 맛보기가 된다

보스코는 청소년들 가운데 있는 행복의 원의를 포착했고 그들 삶의 즐거움을 기쁨, 운동장 그리고 축제의 언어로 살도록 인도했다. 하지만 진정한 기쁨의 원천은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알리는 일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준비된 청소년Il Giovane Provveduto, 「도미니코 사비오 전기」, 「발렌티노 이야기 속에 들어 있는 해설」 등과 같은 그의 일부 저서들은 그가 설정한 은총과 행복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리고 ‘천국의 상급’에 대한 그의 단호한 주장은, 완성과 충만이라는 전망으로 세상 기쁨을 투사하였다.

보스코의 학교에서, 살레시오 가족에 속한 사람은 자신 안에서 기쁨이 솟아나게 하는 그리고 이를 다른 이에게 전하는 가지 태도들을 배양한다.

a) 선의 승리에 대한 확신: “모든 청소년에게는, 아무리 못된 아이일지라도 선善에 도달할 접점이 있다. 교육자가 번째로 해야 일은 단서를, 마음속의 예민한 실마리를 찾는 것이고, 그리고 그로 인한 수익을 벌어들이는 것이다.”4)

b) 인간적 가치에 대한 인정: 보스코의 제자는 세상의 가치를 이해하며 자신의 시대 상황에 대해 한탄하지 않는다. 좋은 , 특히 젊은이와 사람들이 환영하는 것이라면 모두 수용한다.

c) 일상의 기쁨에 대한 교육: 창조주께서 매일 우리의 인생길에 마련해 놓으신 많은 인간적인 기쁨을 소박하게 즐기는 법을 배우고 새롭게 익히기 위해서는 인내심 있는 교육적 노력이 필요하다.

보스코의 제자들은 ‘기쁨의 하느님’께 매일 전적으로 자신을 의탁하고, ‘기쁨의 복음’을 말과 행동으로 증거하기 때문에 언제나 기쁘다. 그들은 기쁨을 전파하며 그리스도인 삶의 기쁨과 축제의 감각을 교육할 알고, “주님 안에서 기뻐하십시오.”(필리 4,4)라는 바오로의 권고를 되새긴다.”5)


2. 선으로 이끄는 교육

보스코의 ‘감응感應하는 사랑amorevolezza’ 두말할 여지없이 그의 교육학적인 방법의 두드러진 특징으로써, 현재 여전히 그리스도교적인 맥락은 물론이고 종교에 속하는 젊은이들이 살고 있는 환경에서도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교육학적인 원칙으로 축소될 없고, 우리 영성의 본질적인 요소로 인식되어야 합니다

사실 감응하는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퍼오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입니다. 단순함, 정중함, 충실성의 언어를 통해 표현되는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응답하고자 하는 열망을 낳는 사랑입니다. 친밀감을 향해 그리고 마음속 깊은 소통을 향해 길을 열어 주면서 신뢰를 불러일으키는 사랑입니다(‘교육은 마음의 일입니다.l’educazione è cosa di cuore’). 함께 있는 것이 좋고 풍요로운 가족적 분위기를 만들며 스스로 확장되는 사랑입니다.

교육자에게는 강력한 영적인 노력을 요구하는 사랑입니다. 그렇게 살고 그렇게 머물길 원함, 자신에 대한 포기와 희생, 애정에서의 순결과 태도에서의 자기 조절, 보다 적절한 순간과 방식을 찾기 위해 동참하는 경청과 인내로운 기다림, 용서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능력, 때로는 잃을 알지만 무한한 희망으로 계속 믿는 사람의 온유함 등을 요구합니다. 금욕 없이는 진실된 사랑이 없고, 기도를 통한 하느님과 만남 없이는 금욕도 없습니다.

감응하는 사랑은 사목적 사랑의 열매입니다. ‘ 우리의 상호적인 사랑은 어디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까? […] 예수 그리스도님의 고귀한 피로 속량된 여러분의 영혼을 구하고자 하는 나의 열망을 토대로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내가 여러분을 영원한 구원의 길로 인도하려 하기 때문에 나를 사랑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영혼의 선익이야말로 우리 사랑의 바탕입니다.’6)라고 보스코가 썼습니다.

이처럼 감응하는 사랑은 하느님 사랑의 표식이 되며, 보스코의 선의로부터 영향을 받은 이들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현존을 다시 일깨우기 위한 도구입니다. 복음 전파에 이르는 하나의 길입니다.

여기서 살레시오 가족의 사도적 영성은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사랑이 아니라, 사랑하는 그리고 사랑을 받게 하는 능력이라는 특성에 대한 확신이 생겨납니다.”7) 


3. 교육은 마음의

교육은 마음의 일이고 하느님만이 그것의 주인이십니다.”8)(MB XVI, 447)라는 탁월한 표현을 알아듣기 위해, 그러니까 예방교육에서의 선으로 인도하는 교육을 이해하기 위해서 성인 교육자에 관한 최고의 전문가로 알려진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 보스코의 교육은 그의 모든 활동과 일치한다. 인격체와 모든 활동, 보스코의 모든 것은 결국 그의 마음에 모아졌다."9) 이것이 그분의 위대함이고 교육자로서 성공 비결이기도 합니다. 보스코는 권위와 다정다감, 하느님 사랑과 청소년 사랑을 조화롭게 하실 알았습니다

청소년을 위한 보스코의 사랑은 적절하고 구체적인 행위로 구현되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보다 긴급한 필요를 아시고 보다 깊이 숨겨진 것들에 대해 예감하시며 그들의 전체에 대해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당신의 마음 전체가 청소년을 위한 선물이 되었음을 확인한다는 것은 그의 모든 인격·지식·마음·의지·육체적 · 실존의 모든 것이 청소년의 선익을 위해서, 그들의 전인적인 성장을 증진하기 위해서, 영원한 구원을 갈망하게 하기 위해서 방향지어졌다고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스코에게 있어서 마음의 사람이라는 것은 청소년의 선익을 위해 모든 것을 봉헌한 존재이고 마지막 숨까지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그들에게 쏟아붓는 것을 의미합니다.”10)


4. 정직한 시민과 착한 신자의 양성

착한 신자와 정직한 시민’ 양성은 보스코께서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인간적이고 그리스도인적인 실존을 충만하게 살기 위하여 필요로 하는 것들을 제시하기 위하여 자주 언급하셨던 지향이었습니다. 의식주, , 공부, 휴식; 기쁨, 우정; 실천적인 신앙, 하느님의 은총, 성화의 여정; 참여, 역동성, 사회 교회에 대한 참여 등등. 교육적인 체험은 그분에게 계획 고유한 활동 스타일을 제안하는데, 이것들은 모두 그분에 의해서 ‘이성, 종교, 사랑에 기반을 둔’ 예방교육으로 압축됩니다.11)

그렇기에 사회 안에서 교육적 현존은 교육적 감수성, 교육정책, 사회적 삶의 교육적 자질, 문화 등등의 현실을 포함합니다


5. 살레시오 휴머니즘

보스코가 생각하는 ‘살레시오 휴머니즘’은 개인의 삶과 창조된 현실 역사적인 사건들 안에 긍정적으로 뿌리를 모든 것들을 중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휴머니즘은 보스코가 특히 젊은이들에게 유익하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진정한 가치들을 모으게 했고, 선을 장려하고 악에 대해 한탄만하는 것을 거부하는 가운데 당시의 문화와 인간 발달의 흐름에 동참케 했으며, 모든 이에게는 찾아내서 인정하고 유익하게 활용해야 은사가 각자에게 있다는 확신으로 지혜롭게 많은 사람의 협조를 구하게 했고, 청소년의 성숙을 도와주고 젊은이들을 정직한 시민이자 착은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는 교육의 힘을 믿게 했으며, 언제나 어디서나 그가 아버지로 인식하고 사랑하는 하느님의 섭리에 자신을 내맡기도록 했다.”12)


6. 예방교육과 인권

청소년의 전인적인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수도회가 존재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당시의 보스코처럼 우리 역시 관객으로만 머물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구원을 위해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1884 로마에서 보낸 편지는 우리의 모든 활동의 일상적인 임무로서 그리고 우리 모든 공동체 삶의 영원한 선택으로서 ‘아이를 중심에’ 두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청소년의 전인적 구원을 위해 복음과 우리의 카리스마는 우리로 하여금 인권을 위한 길로 나아가도록 요청합니다. 우리가 간과할 없는 길이고 새로운 언어라는 것을 말합니다. 청소년의 구원을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해야 합니다. 오늘날 만일 아이의 인권 신장을 위해 우리가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를 수조차 없을 것입니다.

예방교육과 인권은 서로가 상대편을 풍요롭게 하며 상호작용을 합니다. 예방교육은 인권에게 ‘사후’ 고발, 이미 벌어진 폭력에 대한 고발이라는 성격의 특징을 지닌 지금까지의 인권 신장과 보호 운동에 비해 유일하고 쇄신된 교육적 접근을 제공합니다. 예방체계는 인권에게 예방교육 또는 ‘사전’ 활동 제안을 제공합니다.

믿는 이들로서 우리는 예방체계가 인권에게 복음적 영성에서 영감을 받도록 하며 그리고 인권의 기초로서 “종족, 피부색, 성별, 언어, 종교, 정치적 입장 또는 다른 이유, 출신 나라 혹은 사회, 빈부, 출생 기타 조건 등에 따른 여하한 구별없이”13) 모든 사람의 존엄성 자체를 보는 인간학을 제공한다고 말할 있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인권은 예방교육에게 불의, 부정, 폭력을 밝혀내고 제거하기 위해 다른 주체들과의 연계를 통한 새로운 영역과 대화 협력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외에도 인권은 예방교육에게 “교육과 사회 사이의 파편화 학교와 시민사회 사이의 괴리라는 현대의 인간적 드라마”에 효과적인 응답이 사회 문화적 영향을 위한 새로운 영역과 기회를 제공합니다.14)

글로벌화된 새로운 맥락에서 인권은 공통의 한계와 목표를 제안하기 위해, 연합과 정책을 형성하기 위해, 인적 물적 자원을 움직이기 위해, 국경이라는 좁은 시각을 초월하는 도구로 변화됩니다.


7. 읽을

청소년 교육에서 예방체계, 로마에서 보낸 편지, 도미니코 사비오, 미켈레 마고네, 프란치스코 베수코 전기 보스코께서 직접 저술하신 것들로 당신의 교육 경험은 물론이고 교육적 선택을 조명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저술들은 우리의 창립자요 아버지이신 분의 훈육 교육적 감성, 청소년을 중심에 두고, 양성에서 그들의 주인의식을 세우며, 교육적 성공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야 여건 등에 관해 그분께서 생각하고 계셨던 것들을 우리가 이해할 있도록 하기 위하여 쓰여진 것들입니다. 이런 전망에서 전기들은 발독코 오라토리오의 아이들 각자가 시작한 출발점에 따라 서로 다른 개의 여정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제안들로 변화됩니다. 보스코는 각자 아이들의 상황에 따라 그들이 지닌 가치와 태도를 지렛대 삼아 도달해야 정점을 가리키며 이상적인 조건을 갖출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시작해야 했습니다.




인도 살레시오 회원이 보낸 편의 시로써 2013 스트렌나를 마칩니다. 시구는 특히 자신의 행위에 대해 명상하면서, 마음속을 스쳐 지나며 가슴 속에 남아 있는 것에 대해 자기 엄마에게 말하는 어린이의 이야기를 담고 표현한 것이기에 참다운 교육에 대해 보여 주고 있습니다. 시에 대한 감상은 맘마 마르게리타에 대한 보스코 증언의 회상 속으로 저를 빠져들게 하였습니다.

사실, 지금 전세계로 퍼져 나가 있는 발독코에서 실시된 교육적 스타일은 베키의 엄혹하고 강인한 시골 여건, 특히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로부터 특성이 형성된 보스코의 어린 시절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보스코가 말씀하시길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라고 제게 질문합니다. 우리 집에서 어머니가 우리에게 하셨듯이 나도 그들에게 그렇게 합니다. 외는 나는 모릅니다.”

맘마 마르게리타는 보스코에게 번째이고 위대한 교육자였습니다. 과부였으나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권위가 담긴 사랑과 어머니의 감미롭고 자애로운 사랑을 베풀 알았습니다. 그녀로부터 보스코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취한 가치 태도를 배웠으며, 세월이 흘러 자기 교육학의 전진기지가 되는 살레시오 회원들에게 이를 전수하였습니다.

적극적인 현존: 살레시오 임장지도는 단순한 감시 활동이 아닙니다. 아이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주는 현존입니다. 그가 주인공이 되게 하며 함께 일하고 성장하는 맛을 그와 나누는 현존입니다.

일상의 : 베키와 몰리아 들판에서 행한 밭일 경험을 통해 얻은 것으로 보스코는 당신의 아이들에게 즐겨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게으른 아이는 당나귀가 것입니다.”, “젊었을 일하는 습관을 들이지 못한 사람은 늙어 죽을 때까지 게으름뱅이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발독코에서 나태함은 자리가 없었으며 일은 기도, 놀이, 학습 사이사이의 공간들을 채웠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생각: 요한에게 맘마 마르게리타는 교리교사이기도 했습니다. 첫고해와 첫영성체를 있도록 요한을 준비시켰고, 특히 범사에서  피조물에서  삶의 희로애락에서 하느님을 느낄 있도록 가르쳤습니다. 가난한 이들과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배푼 관대한 조치들을 보면서 훗날 사제가 요한은 적절한 순간에 구체적이고 단순하며 탁월한 사랑으로 자신을 변모시킬 있는 종교적 사랑을 성숙시켰습니다

대화의 동의어인 이성理性: 농부의 지혜는 ‘잘 생각해 봅시다ragioniamo’라는 말에 다른 가치를 부여했습니다. 자신의 관점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려는 의도를 지니지 않고 대화를 하기 위해, 설명하기 위해, 합의에 이르기 위해 사용하였습니다. 보스코께서는 훗날 ‘이성ragione’이라는 단어를 당신 교육 방법의 중요한 기둥 하나로 삼으셨습니다. 이런 전망에서 도미니코 사비오와 보스코 사이에 나눈 대화는 소년 성인을 봉헌에로 인도하는 참되고 진정한 교육적 사건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옷감이고, 신부님은 재단사이십니다. 옷감을 가지고 주님을 위한 아름다운 옷을 만들어 주세요.”


이와 같은 회상으로 조명을 받으며 아래 들려 드리는 시는 모든 의식 있는 어른 교육자들을 위한 메시지가 됩니다. 어린이와 아이들은 여러분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따라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보는 같아도


내가 보는 같아도,

그림을 냉장고에 붙이는 당신을 봤습니다.

바로 다른 그리려 했습니다.


내가 보는 같아도,

들고양이에게 먹이 주는 당신을 봤습니다.

동물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좋다는 배웠습니다.


내가 보는 같아도,

나를 위해 맛난 것을 준비하고 있는 당신을 봤습니다.

사소한 것들도 삶에 있어 아주 특별한 것이 되는 배웠습니다.


내가 보는 같아도,

아픈 친구를 위해 점심을 차려 나르는 당신을 봤습니다.

우리는 서로 서로 염려해야 한다는 배웠습니다.

내가 보는 같아도,

우리집과 거처들을 보살피는 당신을 봤습니다.

우리가 받은 것들에 대해 보살펴야 한다는 배웠습니다.


내가 보는 같아도,

몸이 불편한데도 책임을 다하는 당신을 보았습니다.

장차 책임감 있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배웠습니다.


내가 보는 같아도,

눈물 흘리는 당신을 보았습니다.

어떤 것들은 고통을 주며, 경우에 따라 우는 것도 괜찮다는 배웠습니다.


내가 보는 같아도,

노심초사하는 당신을 봤습니다.

가능한 최선을 하려고 내가 노력했습니다.


내가 보는 같아도,

어른이 되어 착하고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내가 알아야 삶의 수업 대부분을 당신에게서 배웠습니다.


내가 보는 같아도,

당신을 봤고,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내가 보는 같아도 보았던 모든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부모, 조부모, 고모, 삼촌, 선생, 친구) 어린이의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날 어떤 사람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 건드릴 있나’ 아는 것입니다.

단순하게 삽시다. 기꺼이 사랑합시다. 신중하게 보살핍시다. 친절하게 말합시다.

 

로마, 2013 1 1


Don Pascual Chavez V., SDB

총장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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