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mma Margherita|part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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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근


요한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같은 해에 불행과 기근이 몰아닥쳤다. 항상 비가 왔던 우기가 끝나고 해가 나지 않는 여름이 왔다. 추수할 것이라곤 거의 없었다. 피에몬테, 롬바르디아와 리구리아의 모든 곳처럼 몬페라토의 언덕들은 극심한 기근이 몰아닥쳤다.

기근이라는 말은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다. 당시에 정상적인 계절이라면 싹이 난 모든 밀은 4배에서 6배가량 추수가 가능했다는 것을 당시의 농업 통계에서 읽을 때 보다 구체적인 것이 된다. 기근이 닥친 해에 밀 이삭은 최고로 두 배를 추수할 수 있었다.

기근이 있었던 그 지역에 굶주림을 참다못해 입에 풀을 잔뜩 분 채 도랑에 처박혀 죽어간 거지들도 눈에 띄었다. 정말 대단한 기근이었다.

1817년에 피에몬테 주의 수도인 토리노는 땅을 버리고 떠난 불쌍한 사람들의 줄로 인산인해를 이룬 도시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교회 앞과 부자들의 집 마당 앞에 머무르기 위해서 왔다.

기근은 가족 전부를 파괴하고 있습니다.”고 제노바를 통치했던 사람이 피에몬테의 왕에게 썼다. 롬바르디아에서는 뽕나무의 나뭇잎이 다 떨어져서 누에고치의 수확이 매우 적었고 많은 농가의 생계가 막막한 지경에 이르렀다.

베키의 오두막집에서도 배고픔과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돈 보스코는 그의 오라토리오 회상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우리의 유일한 양식이 될 1년 농사가 흉작이었다. 먹을 수 있는 것들은 값이 놀랄만큼 올랐다... 어머니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양식이 모두 없어질 때까지 가족을 먹이겠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어느 날 우리는 거의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어머니는 음식을 꾸어보려고 남의 집 문을 두드려보았지만 아무도 우릴 도와줄 형편이 못되었다. 그 때 어머니는 용기를 잃지 않으시고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하느님을 신뢰하라고 말씀하셨단다. , 무릎을 꿇고 기도드리자꾸나.” 짤막한 기도가 끝나자 어머니는 일어서며 말했다. “극도의 상황에서는 비상조치를 써야 하는 법이란다.”

옆집에 사는 베르나르도 까발로의 도움으로 어머니는 외양간으로 가 송아지를 잡았다. 어머니는 그 일부를 즉시 요리해서 저녁식사로 내놓으셨다. 우리는 거의 실신할 정도로 허기져있었던 것이다.”

피에몬테 지방의 농장 가족들 안에서는 수십 년 전만까지만 해도 송아지를 잡는 것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벌어지는 행동이었다. 외양간에서 자라는 송아지는 가족의 질병(당시에는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없었다)이나 갑작스런 화재 등과 같이 매우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자본이었다.

그 후에는 더 먼 곳에 가서 비싼 값을 치르고 사온 곡식 덕분에 우리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고 돈 보스코는 쓰고 있다.

모든 것을 말하기 위해서 이것은 맘마 말가리타가 이야기해준 단순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은 훨씬 더 비참했다. 양식은 먼 곳에서 사온 것이 아니라 잘 알고 지내던 비토리오 아메데이 신부가 사준 것이었다. 그는 시중에서 유통되는 것보다 훨씬 비싼 값에 곡식을 과부인 어머니에게    팔았다. 토리노 시장의 공식가격이 7.43 리라였던 반면에 그는 4 에니메에 9.17리라를 받고 팔았던 것이다.

그 혹독한 흉년으로 인해 나의 어머니가 얼마나 괴로워하고 고생했을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칠 줄 모르는 노동과 최대의 절약, 참으로 섭리적인 도움으로 기아를 극복해나갈 수 있었다. 어머니는 이런 이야기를 내게 여러 번 했고 가까운 친척들과 친구들도 모두 그 사실을 인정했다.”

일년이 지나서야 말가리타는 카스텔누오보 출신의 약재상 쟈넬라가 “고인인 남편에게 제공한 약초값”을 지불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6.15리라를 주었다(당시 농부의 하루 일당이 1리라였다). 몇 년이 지나서야 그녀는 프란치스코 보스코의 유언과 재산 목록을 위한서 베키에 왔던 공증인 몬탈렌티와 32리라로 계산을 마칠 수 있었다.



저는 제 자식들의 어미입니다.”


그 무시무시한 배고픔의 시기가 지나고 집안 형편이 좀 나아졌을 때 어머니에게 아주 유리한 재혼 신청이 들어왔다. 그러난 어머니의 대답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하느님께서 제게 한 남편을 주셨다가 도로 거두어가셨습니다. 그는 죽을 때 세 아들을 제게 맡겼습니다. 만일 그들이 저를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에 아들을 버린다면 저는 잔인한 어미가 될 겁니다.”

그들은 어머니에게 아이들은 한 후견인이 맡아서 정성껏 돌보아 줄 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관대한 여인은 대답했다. “후견인은 친구이지만 저는 제 자식들의 어미입니다. 온 세상의 금을 다 준다 해도 저는 결코 아이들을 버리지 못합니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종교 교육을 시키고 순종심을 길러 주며 나이에 걸맞은 일들을 마련해주려고 애썼다.”








7


부드럽고도 강인한 사랑



정서적으로 균형을 잃을 위험


요한, 요셉과 안토니오가 배웠던 첫 번째 교육은 부드럽고도 강인한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백년이 지난 후 심리학자들은 어린이가 살 성장할 수 있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요구하는 사랑과 어머니의 조건 없이 내어주며 진솔하고 기쁨에 넘치는 사랑이 필요하다고 쓸 것이다.요구하는 아버지의 사랑은 임무를 수행하게 하고 목표에 도달하게 하는 사랑이다. 이 사랑은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합당한 아버지”가 되도록 권고한다.

조건 없이 내어주고 진솔하며 기쁨에 넘치는 어머니의 사랑은 결과의 성취를 뛰어넘는 삶의 의미를 주는 사랑이며, 좌절의 시기에 위로를 주는 사랑이고, 어떤 사람이 그가 “무엇을 했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 단지 아들이기 때문에 좋아한다는 것을 아들에게 상기시켜주는 사랑이다.

심리학자들은 고아가 된다는 것은 단 한 쪽 측면 위에서 애정적인 불균형의 위험이 겪게 됨을 의미한다고 말할 것이다. 편모의 슬하에서 자란 자녀들에게 위대한 성과에 도달하려는 에너지나 자극 없이 특별한 유약함 안에 머물 수 있고, 편부의 슬하에서 자란 자녀들에게는 항상 자극받고 있는 사람이 지니는 불안하지만 감정결핍의 상황에 머물 수 있고, 시련의 시기에 혼자이며 사랑받지 못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맘마 말가리타는 자신 안에 외유내강과 평온한 기쁨을 통합시키고 공존케하는 본능적인 균형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아들들은 그녀가 아니라고 말할 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이들이 그녀에게 의견을 번복하도록 하는 일은 없었다.

돈 보스코는 어머니의 부드럽고도 강인한 사랑의 특성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세 가지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구석에 놓인 회초리


부엌의 한쪽 구석에는 유연성이 있는 회초리가 하나 있었다. 어머니는 그것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구석에서 그것을 치우지도 않았다.

어느 날 요한이 큰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토끼장을 열어 놓은 채 놀러 나가려고 서두른 바람에 모든 토끼가 잔디밭으로 나와 버렸다. 요한은 모든 토끼를 집어넣느라 진땀을 뺐다. 피곤해져서 부엌에 들어갔을 때 말가리타가 구석을 가리키며 “요한아, 가서 저 회초리를 이리 가져오너라.”고 말하였다. 어린 요한은 뒷걸음질 치며 문으로 가면서 “저것으로 무엇하시려고요.”하고 물었다. “그걸 이리 가져오면 알게 될 거야.”단호한 말투였다. 요한은 회초리를 들고 멀리서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걸로 제 어깨를 치실려구요...”

네가 그렇게 큰일을 저지른다면 왜 안 때리겠니?”

엄마, 다시는 안 할게요.”

이 말을 마치자 어머니께서는 미소를 지으셨다(고 돈 보스코는 기억하고 있다).

입을 쀼루퉁하게 하지 않을게요. 걱정끼쳐드리지 않을게요.”

어머니와 그의 형도 웃었다. 집안의 모든 것이 평온해지고 조용해졌다.



목말라하는 두 형제


태양이 작열하는 어느 날 요한과 요셉은 기절할 정도로 목이 말라 포도밭에서 돌아왔다. 말가리타는 우물로 가서 찬물 한 두레박을 길러 동으로 된 국자에 물을 떠서 먼저 요셉에게 두었다.

네 살인 요한은 물을 마시지 않겠다고 했다. 형에게 먼저 물을 준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가 요한에게도 마실 것을 내주었을 때 마시고 싶지 않다고 고개를 저었다. 말가리타는 말하지 않았다.

불쌍한 것, 내가 너를 마지막으로 마시게 했다고 해서 마음이 상했구나! 그래, 그래 잘했구나…….”라고 말가리타는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두레박을 가지고 부엌으로 들어갔고 문을 닫았다. 바로 그 때 요한이 부엌으로 들어왔다.

- 엄마.

- 왜 그러는데?

- 저에게도 마실 물을 주시겠어요?

- 난 네가 목마르지 않은 줄 알았다.

- 용서해주세요. 엄마.

- 그렇게 해야지.

이렇게 해서 그녀는 요한에게도 한 국자의 물을 떠 건네주었다.     



매주 목요일 말가리타는 카스텔누오보에 있는 시장에 가곤했다. 그녀는 시장에 내다 팔 치즈, 닭과 채소를 싼 보자기 두 개를 가지고 갔다. 그녀는 옷감, 양초와 소금을 샀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오후가 될 때 오솔길로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아이들을 위한 작은 선물 몇 개를 사가지고 돌아왔다.

어느 날 목요일 여덟 살 된 요한이 놀이를 중단하고 부엌으로 뛰어 들어가 의자를 들어 찬장 앞에 놓고 올라가 까치발로 찬장 위를 뒤지기 시작했다. 요한은 이 장난을 계속하려고 어떤 도구를 찾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팔을 힘 있게 뻗치자 무엇인가 쨍그랑하고 깨지는 소리가 났다. 찬장 위에 있던 기름병이 바닥에 떨어져 깨졌고 기름이 흩어져 붉은 벽돌 위에 퍼져나갔다.

동생 요한이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고 요셉이 쏜살같이 달려왔다. 벌어진 일을 보고 그는 손을 입에 갖다 대었다.

오늘 저녁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겠어.”

그들은 어떻게 해보려고 노력하면서 빗자루를 집어 들었다. 귀여운 아이들은 기름을 쓸어 담으려고 하였지만 기름이 번진 자국은 항상 거기에 남아 있었고 무서움만큼이나 퍼져나갔다.

요한은 아무 소리 없이 반시간 가량을 보내고 나서 작은 주머니칼을 꺼내어 싸리 울타리로 가 잘 휘어지는 가지를 잘라 다듬기 시작하였다. 머릿속은 엄마에게 해야 할 말을 궁리하고 있었다.